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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l 18. 2023

아스피린에 대한 가벼운 찬사 (상)

찌릿한 통증이 뇌 안쪽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편두통이 또 시작되었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예고도 없이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고 찾아온 두통은 인기척 없이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선 침입자와도 같았다. 핏줄이 수축돼서인지, 근육이 당겨서 그런 건지, 어금니가 잘못 자리하여 신경을 건드리는 건지, 혹은 정말로 뇌에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통증으로 인해 무력함을 넘어선 일종의 패배감으로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직업은 프리랜서 기자 겸 칼럼니스트였다. 원고 마감은 바로 오늘 오후 4시까지. 그런데 마지막 교정을 손보려던 찰나 또다시 편두통이 도져서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에 가장 큰 고민도 바로 이것이었다. 작은 페니스도, 평균보다 마른 체구도,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도 아닌 편두통. 관자놀이 부근에서 핏줄이 욱신거리며 펄떡 뛰는 게 느껴졌다. 고통에 그대로 책상에 고갤 처박은 남자는 이내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놀란 가정부가 남자의 서재로 들어왔다. 작업 중이었다면 욕을 지껄이며 내쫓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남자는 두통처럼 갑자기 침입한 낯선 기척에 대해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두통은 일반적인 편두통과는 조금 달랐다. 분명 군 복무를 할 때까지 만해도 가벼운 증상이었다. 아니, 가볍게 여겼던 증상이었다. 만인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 그중에서 유달리 극성인 몇몇 이들에겐 더 치명적이지만- 병중의 하나.

그냥 아스피린 하나 먹으면 낫는 가벼운 증상.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의 편두통은 일반적인 통증의 범위를 넘어섰다. 왼쪽 뇌 쪽으로 찌릿한 증상이 번개 맞은 느낌처럼 스쳐갔고 이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남자를 뒤덮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수백 개의 바늘로 뇌를 찌르는 느낌. 따끔거리는 증상은 아니었다. 칼로 후벼 파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어지간한 비유는 씨알도 안 먹힐 만큼 큰 고통이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남자는 그냥 침대에 쓰러져 끙끙 앓아야 했다. 심지어 그 시간은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이젠 한 번 시작된 두통이 멈추려면 꼬박 하루는 소비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어쩌면 하루 그 이상의 시간을 갱신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스피린. 간신히 이를 악물며 내뱉을 말은 용케도 알아들은 가정부는 아스피린과 물 한 잔을 들고 왔다. 남자는 간신히 실눈을 뜨고 흰 아스피린 한 알이 담긴 접시를 바라보았다. 더. 네? 가정부가 짧게 읊조린 남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더 갖고 와! 남자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가정부는 허겁지겁 약통을 들고 왔다. 한 알만 복용하라고 나와 있던걸요. 한 알은 무슨, 다 털어 넣어도 망할 두통이 낫지 않을 거 같은데.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스피린 한 움큼을 털어 입에 쳐 넣었다. 물 한 컵을 털어내도 약을 다 삼키기는 어려웠다. 머리가 핑핑 돌고 눈앞이 흐릿했다가 선명해졌다를 반복했다. 일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게 느껴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턱 막혀온 가슴은 더 이상 산소가 폐부로 들어오기를 거부하며 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놀란 가정부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두통과 함께 느껴지는 등의 통증에 남자는 가정부가 자신의 등을 때리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약력이 센 걸? 함부로 이 여자를 화나게 했다간 뼈도 못 추릴지 모르겠군. 이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슬리퍼 아래로 역류한 약간의 위액과 약들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약을 미처 삼키지 못해 뱉어낸 것이었다. 미처 녹지 못 한, 반쯤 부식된 것 같은 아스피린들이 마룻바닥에 굴렀다. 염병할. 그래도 약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가 뱉어서 그런지 기준치보다 많이 복용했기 때문에 통증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가정부는 눈치껏 물 한 컵을 더 가져왔다. 후두가 바쁘게 위아래로 꿀떡였다. 서재의 전화벨이 울렸다. 시끄럽고 짜증 나는 소리였다. 남자가 눈썹을 찡그리며 전화코드를 뽑으려 하자 가정부가 재빠르게 전화를 받고 몇 마디 하더니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뭐 하는 짓이야! 마감 담당자님이 전화하셨는데요 두통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늦어도 오늘 6시 안에만 보내 주시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남자가 눈알을 굴리며 시계를 찾았다. 여섯 시 안에 이 두통이 나을 리가. 숨이 조금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숨이 찬 남자가 헉헉거리며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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