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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l 06. 2023

날개

3장

사람들이 날개를 자신의 PR수단으로 막 활용하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점차 날개 코스튬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날개에 색을 입히고, 타투를 하고, 액세서리로 날개를 꾸미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자기만의 색다른 PR을 날개로 할 수 있게 된 시대. 성년의 날이 지난 호도 날개 코스튬을 위해 코스튬가게로 향했다.

개성의 시대였으며 몰개성의 시대이기도 했다. 유행은 급속도로 퍼져 너도나도 날개에 코스튬을 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자기 PR의 의미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날개는 더 무거워졌고 사람들의 등은 날이 갈수록 더 굽어질 수밖에 없었다. 등이 굽은 사람들은 점점 날개 아래로 파묻혔고 이따금 날개의 무게에 압사당해 죽은 사람들의 소식도 들려왔다.


패션계에서 어필하던 코스튬이 시들해질 무렵, 의학계에선 날개제거수술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며 기사를 냈다. 그러자 이번엔 하나 둘 날개를 절제하기 위한 성형을 하기 시작했다.


날개를 잘라내는 데엔 그만큼 고통이 뒤따랐다. 날개를 절제한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그들은 갑자기 가벼워진 몸에 적응하지 못했고 속도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아이러니하게도 교통사고 사망자가 늘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부작용이 발생한 사람들도 생겨났다. 과다출혈이라던지 쇼크사.


이제 막 실험을 마친 날개제거수술은 생각보다 위험했고 날개를 제거한 이보다 제거하지 않은 이가 여전히 많은 세상이었다. .  

.

.

<날개의 새로운 활용방안>에 관한 리포트를 써야 하는 학생 호는 굳이 나누자면 날개를 제거하자는 입장이었다. 미리 받은 20살의 생일선물은 날개제거수술비용이었으니까. 아직 어린데 벌써 날개를 제거할 필요가 있냐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호는 충분히 힘들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수술을 결심했다. 또래들보다 호의 날개가 유독 무거운 편에 속했기 때문에.


그런 그의 20번째 생일날 아침, 호는 날개가 조금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늘 느끼던 무게감과 다르다는 생각에 위화감마저 들 정도였다. 익숙해져서 가볍게 느껴지는 건지 정말로 날개의 무게가 줄어든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체감상 분명히 날개는 가벼워진 상태였다. 아무도 날개의 무게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에 호도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순간임에도 그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호에게 날개의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건 홀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인류에겐 없는 현상이 자신에게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며칠 동안 각종 서적과 연구기록, 웹사이트, 심지어 엔젤윙신드롬의 시초였던 큐들의 원인을 담아둔 고전 보고서에서도 날개의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게가 줄어들었다고 느낀 그날 이후 호는 수시로 거울로 날개를 살펴보았지만 육안으로는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쓸모없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등에 붙어있었다. 사흘간 고민하다 그는 성형외과로 향했다. 어차피 없앨 날개인데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날개제거수술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짧게 끝났다.


여태껏 이 가벼움을 두고 왜 그렇게 무겁게 살아야만 했는지. 유년기 이후 처음으로 호는 등을 쫙 펴고 바깥으로 허리를 꺾으며 기지개를 할 수 있었다. 척추를 따라 양 날갯죽지를 타고 개운함이 몰려왔다. 날개를 잘라낸 부분은 흉으로 남게 될 테고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날개가 있을 때만큼은 아니기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의학기술은 계속 좋아졌고 절제된 날개들은 날갯죽지에 날개가 돋아나지 않은 이들에게 이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날개를 잘라낸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누구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잘라버리는 날개를 어째서 돈을 내고 붙이려고 하는 걸까. 이 무게를 날개 없던 이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상황이었다. 날개가 없던 이들은 돌연변이 취급을 당하다가 날개가 생겼다며 즐거워했고 날개를 절제한 이들은 덜어버린 무게감에 만족해하며 행복했다.

절제수술 후 두 달 뒤, 호의 날개가 코드번호 A1993408번에게 이식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냉동상태로 보관해두고 있다가 피부이식 적합자를 찾은 것이다.  A1993408번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영양실조로 날개뼈에 날개가 돋아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곳은 찬바람이 심해 날개로 추위를 견뎌내야 했는데 날개가 없던 A1993408에겐 날개는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었다고 했다. 한 달 여 뒤 이식센터에서 A1993408에게 받았다는 선물꾸러미를 받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짧은 카드였는데 통역사는 감사하다는 의미라고 말해주었다. 어쩐지 호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일반적인 기증은 원칙상 기증자의 신원이 비공개인데 날개이식은 반대로 날개기증자의 신원은 모두 공개되고 날개이식자의 신원이 비공개처리가 되는 방식이었다.


호가 느꼈던 위화감은 착각이 아니었던 건지 반년 후, 이식센터에서 A1993408의 날개가 줄어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연변이 중의 돌연변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호의 날개에 대한 소식이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호의 날개를 연구에 활용하고 싶다며 날개의 필요성이 무의미해 연구를 중단하겠다던 연구원들이 A1993408에게,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호에게도 연락을 취했고 A1993408은 날개가 축소되어 다시금 날개절제를 하고 새로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날개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호도 뉴스를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끝내 A1993408이 날개이식을 새로 받기 전에 날개제거수술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언젠가 공부했던  『21세기 진화론』 속 <날개학>의 q의 사례가 떠올랐다.


호는 이식자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며 무심코 어깻죽지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물었지만 여전히 날개가 있었다는 흔적이 등 뒤에 남아있었다. 그 후, 호의 날개는 조각조각 잘려서 세계 각 곳의 연구소로 넘어갔다. 날개에 대한 호의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나마 기증된 날개로 추위를 이겨냈을 A1993408의 이식부작용과 사망을 다룬 기사보다 돌연변이 날개연구 진척에 대한 기사만 하루에 수십 개씩 뜨곤 했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이식자가 죽었는데도 언제나 그래왔듯 기대한 적 없는 세계의 태도는 냉담했다. 날개는 무의미하다,는 명제를 깨부수는 일이 되었지만


그렇기에 날개를 자르지 않은 사람들은 거짓으로 자신의 날개도 돌연변이라는 신고를 하곤 했다. 호의 날개가 비싼 값에 거래됐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A1993408은 고아였기에 사망 후 날개는 그쪽 국가에 귀속되었다고 했다. 여태껏 그런 선례가 없었지만 원칙상 날개는 다시 호가 있는 국가의 이식센터로 왔어야 했다. 그렇기에 양국 간의 싸움도 연일 화제였다. 물론 그런 다툼 이전에 호의 날개에 대한 호의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고 A1993408의 수술부작용에 대한, A1993408의 사망으로 인한 보상이라던지, 날개권리에 대한 대가 등 그런 시시콜콜한 일들은 언제나 세계가 돌아갔던 상황대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호의 경우엔  날개가 국가로 귀속된 상태라 국가와 국가 간의 거래였기에 금전적인 것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생각했다. 그중 얼마가 A1993408의 장례비로 돌아간 걸까. 호의 부모님도 언론에서 연신 떠들어대던 돌연변이 날개의 원 주인이 호였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이 하찮던 날개로 큰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였는데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으니까.


별 볼일 없는 소형 매스컴에서만 딱 한 번 c국가에 살고 있는 10대 H 씨의 날개였다, 고만 보도했기에 사실상 대부분 아니, 호의 가족이나 그의 친구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그 날개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대형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내용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소수의 말을 잘 믿지 않으니까. 단지 자신의 날개도 돈벌이가 될까, 혹은 자신의 날개도 돌연변이라면 미리 제거해 두어야 수술리스크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에 몰두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날개가 돋아난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방사능 노출에 의한 돌연변이이기에. 인류 모두가 돌연변이인 세상에서 더 돌연변이가 될까 봐 걱정하는 상황이라니. 호는 연일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만 다뤄 되는 매체를 꺼버리곤, 습관처럼 어깻죽지를 만졌다. 본디 뼈라면 부러지지 않는 이상 줄어들 리가 없는데 호는 자신의 날개처럼 날개뿌리뼈도 조금 줄어든 느낌을 받았다. 툭 튀어나와 날개제거의 흉터흔이 남아있어야 하는 자리가 움푹 꺼진 느낌.  이전에도 이런 위화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호가 아닌 호의 날개에 관심이 있었고 호의 날개뼈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이번엔 날개뼈 때문에 난리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호는 매일 거울을 보며 날개뿌리의 상태를 체크했다. 주변의 날개제거수술을 한 이들은 모두 여전히 튀어나온 날개뿌리가 보였는데 호의 것은 점점 줄어들어 어느 날엔가 상처가 아예 녹아 없어지기라도 한 듯 태어났을 때 마냥 혹이 사라지고, 등엔 날개가 돋아났던 자국만 희미하게 남았다.

등에 날개의 뿌리조차 없는 호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은 여전했으나 호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돌연변이 그리고 소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개성과 몰개성이 공존하는 시대에서 마침내 호는 돌연변이 중의 돌연변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호는 결혼을 했고 아내는 아기를 낳았다. 날개의 뿌리뼈가 선천적으로 없는 아기. 후천적으로 날개를 제거했음에도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선천적으로 날개가 돋아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던 시점이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후손을 위해 점차 더 이른 시기에 날개를 제거했고 기록상 마지막으로 태어난 R지역의 송이라는 아기 이후 공식적으로 집계된 날개가 돋아나는 인류는 없었다.

날개는 언제나 그렇듯 존재의 의미가 없었다. 날개가 없자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사람들은 활발하게 활동했고 이전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날개가 있으나 없으나 세계는 별 반 달라진 게 없었지만 사람들은 날개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일에 몰두했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또 다른 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날개의 존재는 패닉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대응을 예견하고자 하는 신의 마지막 실험이다.”


왜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학자가 되었냐 하면 이 말 역시도 인류의 역사에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가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은 몇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 또한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날개가 있든 없든 간에 인류는 계속 진화했고, 날개로 인한 길고 길었던 해프닝은 그 속에서 티끌만 한 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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