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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23. 2023

정혜씨 이야기 (상)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젖무덤을 파헤치며 입 안 가득 채웠던 모유의 맛. 그때의 포근함과 안정감 그리고 젖내음으로 기억되었던 엄마는 이제 없다. L에게 있어서 단 하나의 소원은 엄마를 만나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난 십칠 년간 단 한 번도 엄마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기억 속에선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힘겨운 열 달을 채우고 태어났을 적에 (처음으로 탯줄이 아닌 폐로 호흡하며 첫 숨과 울음을 내뱉던 그때) 그녀 곁엔 엄마가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L은 그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자라나며 과거의 기억은 하나 둘 묻어둔 채 현재를 따라잡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의 엄마는 이제 막 탯줄이 떨어진 그녀를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속싸개 한 장으로 감싸놓은 채 고아원 바닥에 두고 떠났다고 한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던 갓난쟁이는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와 식어버린 온기를 감지하곤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 바람에 새벽잠에서 깬 원장은 L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 했다.


L이 어느 정도 자란 뒤, 엄마를 궁금해하자 원장은 L을 발견했던 그날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작은 아기가 쌓여있던 포대기 속엔 급하게 휘갈긴 글씨체로 ‘잘 부탁드린다’는 쪽지 한 장만이 남겨져 있었다고. L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에 낡고 바랜 쪽지를 전해준 원장은 그게 그녀의 엄마에 대한 유일한 흔적이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쉽지는 않겠지만.


L도 알고는 있었다. 고작 글씨체 하나로 사람은 찾는다는 건 모래사장 속에서 바늘 찾는 일 보다도 어려운 것이라는 걸. 같은 하늘 아래 있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로 낯선 엄마의 존재는 L에게 있어서 애증이 되었다. 이따금 꿈속에서 엄마를 마주할 때면 물에 번진 듯 일그러진 실루엣이 다가와 손을 내미는 내용이 반복되곤 했었다. L이 그 손을 잡으면 꿈은 끝나고 천장을 향해 허공에 뻗어있는 자신의 손만 발견하게 되고 빈주먹을 움켜쥘 뿐, 그뿐이었다. 남들은 다 부르는 엄마,라는 그 호칭이 L에겐 낯간지럽고 생경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L은 고아라며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의자를 던졌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몸부림이었다. 고아라는 놀림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모욕하는 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애증은 그렇게 지독한 것이었다. 가슴에 풀리지 않을 응어리처럼 남아있는 엄마라는 존재지만 다른 이들의 입에서 모욕적이게 받아들여지는 건 원치 않았으므로. 던진 의자에 한 친구가 머리를 맞고 피를 흘려 응급실에 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고아인 데다가 미치기까지 했다며 수군거렸고 온전히 부모님이 다 있는 아이들 사이 보호받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학교 선생님들조차 그녀‘만’을 문제 취급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한바탕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고 고아원 원장이 대신 참석하여 용서를 구한 끝에 극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후 교내에선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소문은 빠르게 번졌고 고등학생이 되도록 L은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그녀 입장에선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하루가 멀다 하고 무단결석을 하던 L이 불현듯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을 때 원장은 그녀를 만류했다.      


-저 엄마를 찾으러 갈래요.      


단호한 L의 모습에 원장은 조용히 캐비닛을 열곤 서류봉투 하날 건네주었다. 봉투 안에는 낡은 기록지가 담겨있었는데 모 산부인과에서 발급한 L의 출생기록이 담긴 서류였다.      


-언젠가는 네가 이럴 줄 알았어. 다들 그런단다, 밉든 좋든 결국엔 혈육이니까 궁금해서 만나보고 싶어해. 모친의 생사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부딪혀보고 오렴. 아가야, 나는 단지 네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     


원장은 L의 손을 감싸 쥐며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엄마...     


입술 끝에 맴돌던 속삭임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눈에서도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녀를 돌봐온 세월만큼 주름이 깊게 파인 원장의 얼굴에서 모성애를 읽은 L은 그녀를 껴안았다. L은 처음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해 준 엄마만이 ‘엄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옆에서 언제나 묵묵히 지켜주는 또 하나의 엄마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십칠 년의 시간이 지나 이 고아원에 남은 아이들은 L을 포함해서 고작 여섯이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독립하거나 입양되어 떠났다.

점점 고아원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L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에 재능조차 없는 아이들 여섯. 한때는 후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먼 과거가 되었고 이제는 후원이 끊겨서 최소한으로 생계유지를 해야 한다고 선생님과 원장이 그런 대화를 나눴던 게 생각났다.

어쩌면 고아원은 조만간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L이 원장실 문을 닫기 전 한 번 더 원장을 돌아보았다. 오랜 눈 맞춤 끝에 L은 등을 돌려 고아원을 나왔다.

언제까지고 L을 기다리겠다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그 눈빛에.     


 원장은 당시 고아원 근처의 산부인과는 두 곳뿐이었는데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걸 보면 타지에서 온 게 아니라 이 근처에서 몸을 풀었던 걸로 생각되어 바로 인근 산부인과를 찾아갔다고 했다.

운 좋게 첫 번째 산부인과의 간호사에게 몰래 돈을 쥐어주자 그곳에서 칠일 전 여아 하나를 받았는데 산모가 미혼모였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그 간호사는 산후조리원으로 간 여자가 해산을 하고 한 밤중에 신생아실에서 몰래 아이를 데려가 도망쳤다는 말도 했다.

정보를 준 간호사는 그 여자를 아냐고 물으며 밀린 수납비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고 원장은 당시에 돈을 더 쥐어주고 출생기록부를 얻었노라고 말했다.


엄마. 그 여자의 이름은 이정혜라고 했다. 겨우 스무 살이던 여자는 홀몸으로 만삭이 되어 무슨 생각을 하며 L을 낳았던 걸까.

아직 그때의 정혜보다 어린 L은 그 심정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버렸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정혜의 행위를 납득하긴 했다.

 출생기록부에 적어놓은 곳은 이미 십 년도 더 지난 주소지였지만 찾아가 보기로 했다. L은 몇 푼 없는 돈을 털어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달동네였다. 달과 가장 가깝게 맞닿는 동네란 의미였지만 실제론 그만큼 도심에서 멀어져 벼랑 끝까지 몰린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집이 철거되어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인 듯 냉기가 가득했다.

좁은 골목길은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틈이 있었다. 판자촌이 모여 있는 곳 아래로는 제법 사는 듯 기와집이나 벽돌집이 보였다. 산꼭대기까지 몰린 듯 더 이상 피할 곳 없어 보이는 아슬한 판자촌 끝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저만치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판자 집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지친 기색의 여자 하나가 보였다.      


-저기요, 뭐 좀 여쭤볼게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눈을 마주쳤지만 여자의 얼굴에선 그 어떤 기색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여자의 얼굴에 파인 주름을 보며 엄마도 이런 모습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L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꾸 없이 빨랫감을 하나 집어 들곤 탁탁 펴서 너는 동작을 반복했다. L이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이정혜라고 거의 십칠 년 전에 여기서 살던 분인데 뭐 아시는 게 있나요?      


여자가 잠깐 움찔하며 일정하게 반복하던 동작을 멈췄다.


-이정혜라고?


되묻는 말이었는지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L은 단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정. 혜?      


여자는 한 음절 한 음절을 끊어 읽듯이 L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여자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L을 훑어보았다.      


-뭐, 네가 그년 딸이라도 되냐?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달동네를 갈랐다. 빨래를 겨우 널 정도로 지쳐 보이던 여자였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건지 여자는 우악스럽게 빨랫감을 집어던지곤 L의 어깨를 잡아 흔들어댔다. 당황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금기어라도 내뱉은 듯 L은 무섭게 일그러지는 여자의 얼굴에 당황해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여자가 흔드는 만큼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 썅년. 내 돈 이백만 원을 들고 도망갔어!       


한순간에 늙은 노파 같은 모습에서 악에 받친 미친 여자로 변한 여자는 제 스스로 화를 이기지 못하고 헉헉대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굴었다. 여자는 화를 삭이려는 듯 미친년, 개 같은 년, 지옥에 떨어질 년 등의 온갖 비속어를 내뱉다가 색 바랜 월남치마 안쪽을 뒤져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 와중에도 왜 주머니를 밖이 아닌 속에 만들었는지 궁금했지만 L은 잠자코 여자가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입 다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의 한숨만큼 길고 뿌연 담배연기가 치솟았다. 문득 L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자신이 내뱉는 한숨의 길이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담배 두 개비를 연신 펴댄 후 여자는 돌계단에 주저앉아 또다시 세 번째 담배를 손에 물고 이정혜를 왜 찾는지 물었다. 자신을 고아원에 버리고 떠난 엄마라고 대답하니 역시 독해 보여서 모성도 없을 것 같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염병할. 역시 미혼모였구먼.      


툭 던져진 말이 L에겐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엄마에게 주홍글씨처럼 평생 낙인찍힌 수식어. 미혼모. 자신에게 던진 말도 아닌데 L은 어쩐지 가슴이 욱신거렸다.      

-나도 남편이랑 이혼하고 딸 하나 데리고 와서 여기에 터 잡았어.      


여자는 두서없이 자신의 긴 신세한탄을 늘어놓을 것 작정으로 첫마디를 꺼냈다.      


-이 달동네로 기어 들어와서 반드시 십 년 안에 이 동네를 벗어나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지. 악착같이 벌었어. 바람피운 건 남편인데 오히려 내가 죄인이 되어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쫓겨나듯 여기로 들어왔어. 그때 친구들도 가족들도 모두 의절한 채로 딸 하나 바라보고 살자고 다짐했지. 나는 이렇게 살아도 내 딸은 절대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몸 파는 거 빼곤 뭐든 다 했어. 아등바등 벌어서 모은 돈이 이백이었어. 그래도 도시 외곽에 조그마한 반지하에서 세 들어 살 돈은 되었기에 이제 끝났구나 싶었지. 일단 여길 벗어나는 게 내 목표였으니까.      


여자는 말을 마치고 다시 긴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그런데 어느 날 판자촌에 웬 여자 하나가 들어왔어. 아니,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어. 본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 스무 가구가 사는 곳인데 외간 여자가 돌아다니는 걸 본 집이 한 두 집 정도 되었으려나. 그러다가 또 기척 없이 사라져 버렸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일주일쯤 지나서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왔더라고. 문 앞에 쓰러져있는 걸 보고 그 여자구나 싶었지. 딱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게 행색이 남루해서 가출했나 보다 짐작하곤 며칠 돌봐주었어. 그동안 전기랑 물도 안 나오는 빈 집에서 살고 있었나 보더라고. 며칠이 지나서야 언니하고 말을 걸더라. 내가 일하는 동안 딸도 잘 돌봐 주기에 입에 풀칠할 형편은 되니 며칠정도 돌봐주자 라는 생각으로 이사 갈 방을 계약하기 전까진 같이 있기로 했지. 일 년 정도 같이 살았어. 그런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서 계약준비를 하러 간다고 말한 다음 날 정혜가 보이지 않더라고. 얘가 갈 곳도 없는데 어딜 간 거야, 하고 마냥 기다렸지. 그날 저녁이 다 지나도록 오지 않았어. 우스운 건 그래도 걔가 지 살길을 찾았나 보다 싶어서 그냥 놔뒀다는 거지. 이사 갈 돈을 싹 들고 사라져 버렸는데 말이야. 그년이 몰래 내가 돈 모으던 곳을 알아냈던 거야. 그렇게 사라졌어. 그 씨발년.     


 여자는 낮게 욕을 읊조리며 침을 뱉고는 담배를 그 위에 비벼 껐다. 푹 꺼진 눈동자로 L을 바라보던 여자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다시 돈을 버느라 이곳을 떠날 수 없었고 내 딸은 그해 독감에 걸려서 죽었지. 모은 돈 전부를 가져가서 병원비 댈 돈조차 없었거든. 여기 사는 사람들 다 자기 살기도 바쁜데 돈 빌려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그년은 살인자야. 알겠니?


L은 그새 더 늙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찾는 이정혜 씨가 어떤 사람이든 지금의 저에겐 상관없지만 그 사람을 찾으면 돈은 꼭 갚으라고 할게요. 제가 엄말 찾으면 그 후에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뭐든지 아주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L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정혜 씨를 찾는 이유를. 이야기를 다 들은 여자는 눈을 치켜뜨고는 잠깐 기다리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이내 성냥갑 하날 L에게 던졌다. 오래된 성냥갑 겉엔 ‘레드’라고 적혀있었다. 그나마도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듯 빛바래서 문자도 거의 지워지고 없었다.      


-그 년이 떠나기 전 두고 간 거야. 거기 가보던가.      


전화번호 마지막 자리가 흐려서 숫자 8인지 9인지 0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동전은 많았다. 한 번씩 다 전화해 보면 그만인 일이었다.      


-걔가 일하던 곳이었어. 가서 그 년이 어떤 사람인지 더 듣고 그만 찾았으면 하는구나. 그 년은 지옥엘 가야 하니 아마 죽었겠지만 살아있다고 해도 네가 마주해서 좋을 일 없을 거다. 생때같은 애를 갖다 버린 지 엄마가 뭐라고.     


여자는 아까보단 측은한 표정으로 L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상처는 받을 만큼 받았는걸요. 어쨌든 돈은 꼭 갚으라고 할게요.      


L이 여자에게 확신을 주듯 다시 한번 말했다.      


-내 딸이 살아있었더라면 너 정도 만할 텐데.      


여자는 중얼거리듯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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