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뜻밖의 장소들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뜻밖의 장소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가누지도, 물 밖으로 숨을 쉬기도 힘든 상태. 나의 폐소공포증은 이와 비슷하다.
10년 전쯤, 처음 증상이 발현되었다. 약 2시간이 소요되는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 버스가 출발한 지 15분 만에 갑자기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버스에서 내려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가빠지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고속도로에 이미 진입한 버스를 세울 순 없었다. 당장 버스를 세우라고 미친 여자처럼 소릴 지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안 죽어. 아무것도 아니야.'
증상이 점차 가라앉긴 했지만 도착할 때까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당시에는 그게 정확히 뭔지 몰랐다. 지금처럼 공황장애 등 각종 정신건강과 관련한 것들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지 않을 때라 더욱 그랬다. 그 후로 5년쯤 더 지났을 무렵 두 번째 증상이 발현되었는데 그때는 전보다 더 심각했다.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증상이 나타났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답이 없는 상황이라 최대한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계속해서 심호흡을 했고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을 때마다 다른 것에 집중하려 애썼다. 비행기에 비치된 잡지를 읽거나 종이를 꺼내 의미 없는 그림을 그렸다. 옆자리 승객은 아마 내가 굉장히 산만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나는 어디든 집중하기 위해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되도록이면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지 않으려 했지만 이대로는 생활이 불가능할 거란 판단에서였다. 당연히 폐소공포증이란 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 처방받기 시작했다. 폐소공포의 원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내 생각으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상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바닥끝까지 나를 가뒀던 때가 너무 길었던 게 아닐까.
어쨌건 나의 폐소공포는 TV에서 보던,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뭐 그런 게 아니다. 엘리베이터는 탄다. 물론 고장 나서 갇히면 숨이 막혀 오겠지만 어차피 곧 문이 열리는 거란 생각에 증상이 나타나진 않는다. 하지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위의 배,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입실한 시험장, 절대 무섭지 않은 놀이 기구,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서도 증상이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심할 땐 별것 아닌 것에도 증상이 발현되었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 안, 내가 운전하고 있지만 차가 밀려 앞뒤로 갇힌 도로 위... 가 그것이다. 내가 겪는 폐소공포는 좁은 공간이 핵심이 아니라'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포인트다.
사방이 트인 바다지만 육지까지는 바다에 발이 묶인 상태이고 자격증 시험장은 넓은 교실이지만 시험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놀이 기구가 무섭진 않지만 끝날 때까지 안전바에 몸이 묶여 있고 내가 운전하는 차라도 앞뒤가 막혀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니 갇혀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폐소공포 증상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인지행동 치료, 노출요법, 약물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있긴 해도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괜찮다가도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서 완치의 개념을 가지자면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아야 가능한데 현대사회에서 그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스트레스에 강한 뇌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 보자. 꾸준한 운동,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일과 생활을 분리해 나의 속도와 패턴에 맞는 일상을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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