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알아차림

by lyla

오직 깊은 주의만이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시키고 “제멋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연의 손을 묶어둘”수 있는 집중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사색적 집중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면 시선은 그저 불안하게 헤매기만 할 뿐, 아무것도 표현해내지 못할 것이다.

[피로사회]_한병철


책을 펼쳐 위의 문장을 읽었을 때, 하릴없이 바쁘게 지나간 하루와 아름다운 것들이 나만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던 여러 날들이 생각났다. “하는 것도 별거 없었는데 바쁘다.”라고 이야기했던 날들, 분주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상들은 깊은 주의가 생략되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우선적으로 스스로를 집중 상태에 가져다 놓는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창조적 두뇌를 가동하며 새로운 것을 그리는 것을 상상하겠지만,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일상의 사물들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취미미술 수업을 할 때면 늘 그림에 집중하는 상태에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다. 이젤 앞에 나란히 앉아 형태와 구조, 색을 찾는 법에 대한 방식을 자세히 알려드린다. 좋은 시연은 보고 듣는 사람이 연필을 들고 색을 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솟아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솟아난 마음이 느껴졌을 때 나는 시범을 멈추고 그림 도구를 그리려는 사람의 손에 맡긴 뒤 조금 멀어진 곳에서 작업자를 바라본다. 그때 비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은 마치 몰입의 정점에 있는 것 같다.

화실에서의 하루가 다른 날보다 선명하다고 느껴진다면,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시선을 외부에 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명상과도 닮아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그리려는 대상이 비치고, 그걸 응시하는 눈빛은 선명한 초점을 향해있다. 다음 단계로, 더 깊고 아름다운 선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도 함께 살아있다.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께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지를 드린 적이 있다. 해방된 기분과 나를 자유롭게 하는 그림, 느리게 살게 하는 것들을 그리고 싶다는 등의 답을 들었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답변들은,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경험에서 나온 답이었다.

분주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성과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무언가를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서 ‘나’로 존재함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유하는 힘이 강해질수록 정신적 탈진 상태가 적어짐을 여러 차례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결국 뚜렷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치유의 행동일 것이다. 조금은 서툰 결과물의 그림 일지라도 깊이 응시하는 시선과 알아차린 마음으로 그렸다는 것이 그려진 모든 흔적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림을 전공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작업실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그림 그리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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