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듯이

by lyla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은 흥얼거리기만 해도 음악이 되잖아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도 그런 것 같아요. 흥얼거리듯 그림을 그리는데 작품이 되는…” ‘흥얼거리듯’ 그림을 그린다. 라는 말이 마음을 콕 찔렀다. 뒤이어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왔다는 말도 편안한 허밍처럼 들려왔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목을 풀고 운동을 할 때에도 몸을 부드럽게 하듯이, 그림을 그릴 때에도 힘을 빼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서 힘을 뺀다는 건 힘없이 축 늘어지는 게 아니라 리듬감 있는 호흡으로 그림 도구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처음 연필을 쥐었을 때 선을 긋는다는 표현이 그림을 조금 딱딱하게 만드는 것 같다면 선을 닿게 한다는 말로 바꾸어보면 좋다. 러프한 스케치를 할 때에는 선이 스치듯 닿게 하고, 강약을 줄 때에는 조금 더 섬세하고 진한 선으로 닿게 한다. ‘닿는다’는 것은 어쩌면 리듬감이 느껴지는 말처럼 느껴진다. 손을 포물선을 그리듯 움직이고 연필이 종이에 닿기 전 조심스럽게 닿아도 될지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리듬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다 보면 뭉친 근육이 풀어지듯 굳어진 마음도 풀린다. 나는 그림 위로 손을 움직이며 이완하는 삶을 느낀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다. 좋은 그림이 꼭 완벽한 테크닉에서 나온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경험에서는 꼭 그려보고야 싶었던 것을 그린 그림이 좋았다. 그립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초상화, 첫사랑의 기억이 남아있는 어느 한 공간, 위로를 받았던 어느 한낮의 빛과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깨달음과 깊이 내재된 감각들이 동반된 이미지들은 이미 그림이 되기도 전에 그림으로 존재한다. 모양이 갖춰지고 톤이 채워지며 작품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과정부터가 하나의 리듬으로 구성된다. 나의 감정과 경험으로부터 수집한 것들로 그린 그림은 울림이 있다. 감정에 몰입한다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의 감각을 알아차렸을 때 시작된다.

나의 화실에 찾아오는 이유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였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며 그림을 걸고, 오래 머물며 바라보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공을 들인 만큼 누군가에게도 공명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싶은 것들을 흥얼거리고, 손을 리듬에 맞춰 춤추듯 움직이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 울림을 함께 나누는 상상을 하면 기쁜 감정이 차오른다.

그림 앞에서 고요해 보이지만 춤추듯 생동하는 내면의 울림을 가진 사람들. 그런 여행자가 모인 화실을 꿈꾼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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