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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Sep 17. 2016

김지운 X 송강호의 하드캐리 <밀정>

나는 당신이 우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은 '예민하고 부지런한 사람'(그의 글 '예민하고 게으른 족속들에게'에 반하여)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혀있는 영화계에서 그 만큼 꾸준하고, 도전적이며, 상업과 예술의 줄타기를 잘 해내고 있는 감독이 또 누가 있던가. 특히나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이 흥행과 크리틱 양쪽의 관점에서 평타 이상의 작품들임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달콤한 인생>에서 정점을 찍었던 세련된 영상미, 심플하지만 탄탄한 스토리, 간간히 터지는 유머, 무엇보다도 절대 과한 법이 없는 김지운만의 밸런스는 한국 느와르의 또다른 거장 류승완 감독과도 완전히 다른 결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까지 일제강점기를 다뤘던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담담한 의외성이야말로 <밀정>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각 인물들의 내외적 갈등 뿐 아니라 유머와 진중함으로 주고받는 영화 전체의 감정선까지, <밀정>은 끊임없는 줄타기의 연속이다. 너무 밀정처럼 생긴 배우(스포일 것 같아서 이름은 명시하지 않는다. 하하.)가 밀정이었던 것만 빼고는 그 어떤 클리셰도 찾아볼 수 없다. 의리로라도 나올 줄 알았던 "대한독립만세!"도 없고, 김지운 특유의 폼나는 액션씬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모두의 예상을 예상했다는 듯이, 감독은 고집스럽게 인물에 집중하여 서사를 풀어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깨닫게 한 건 자꾸 목이 타서 들이킨 커피 때문에 가야했던 화장실 뿐, 지루할 틈은 없었다.


왜냐고? 송강호잖아.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작품을 해석하는 대사의 선이 배우를 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내게 있어, 송강호 보다 훌륭한 배우는 없다. 절대로 풀면 안 될 것 같은 장면(예: 공유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이 총독부 순사임을 밝히는 씬)에서 힘을 확 풀어제끼는 송강호만의 해석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정채산(이병헌 분)과의 만남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 숨막히는 만남에서 웃음 포인트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각본과 연출도 한 몫 했겠지만 그 씬은 정말이지 송강호여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끝까지 관객을 쥐었다 폈다하는 이정출의 최종 변론 씬. 영화의 엔딩까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슬퍼서 우는지, 억울해서 우는지. 그런데도 같이 울게 된다. <우아한 세계>의 라면 씬에서 그랬던 것 처럼.


역사를 재구성하는 모든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디에 힘을 둘 것인가 일 것이다. 팩트에 대한 고증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픽션화 할 것인가 역시 관건. 어줍잖게 계몽을 꿈꿨다가 산으로 간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 김지운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의 감정, 그 경계에 힘을 줌으로써 진부를 전면으로 거부했고 이에 성공했다. <밀정>은 굵직하지만 거칠지 않은 울림으로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끊임없는 실패 앞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옳은 길을 걸을 수 있는가.', '진정 옳은 길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의리와 배신은 그 단어만큼 간단한 문제인가.' '절대적인 선과 악이라는 것이 세상에 있는가.' '우리는 떳떳한가.' 등.


그 수많은 질문들 중,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내가 가장 묻고싶은 하나를 꼽아보았다.

"당신은 그 눈물의 이유를 알고 있나요?"



****

총평: 워너브라더스 라는 거물급 해외 투자사 제작의 첫 한국영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풀어나가는 인물으로서의 서사. 이병헌과 엄태구라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 아쉬웠던 공유의 연기. 그래도 이병헌+송강호+잘생긴놈 으로 성립된 김지운의 흥행 공식은 존중하는 바. 김지운 X 송강호 케미가 열일했다!


바람: 기왕 이리된 거 천만 찍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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