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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Sep 17. 2016

[트레바리 예술아] 베토벤, 그 삶과 음악

by 제러미 시프먼

1. 기타 선생님

연습 부족으로1년째 늘지 않는 기타를 여전히 상냥하고 꿋꿋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밥을 먹었다.


“새 앨범은 잘 되가요?”
“음. 요즘 잘 안나와요 음악이.”
“그래도 그때 들어보니까 좋든데. 세련되고.”
“이번에도 안 되면 접으려고요. 음악.”
“왜요?”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거든요.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는.”  


요즘의 인디씬에서 밴드가 성공한다는 건 7월의 서울에 눈이 오는 것과 같은 확률이다. 하지만 난 선생님의 음악을 좋아해서, 선생님이 음악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쌤 근데, 제가 요즘 베토벤에 대한 책을 읽는데요. 곡 발표하고 사람들 반응이 안 좋으면 걔가 뭐라했는지 알아요?”
“???”
“이 곡은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세를 위해 쓴 곡일세. 라고 했데요. 그리고 진짜 그렇게 믿었데요. 졸라 멋있죠?”


선생님은 욕을 했다. 그리고 많이 웃었다.
위로가 되었을까.


2. 오케스트라

일생을 바쳐서 하나의 악기를 연마한 사람들이 모여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잊혀지지 않은 곡을 함께 연주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케스트라 음악은 내게 매력적이었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조직은 오케스트라 하나 뿐이다. 일생을 바쳐 전문성을 쌓은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하는 다른 조직이 또 있나? 락밴드? 스타트업? 글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다시 태어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고 싶다.


3. 베토벤 = 닝겐

희생자로서의 자기 연민과 영웅으로서의 자기 찬미를 동시에 지닌 그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 지적 욕구, 음악적인 비젼은 인간이 지향할 수 있는 그것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본디 한낱 닝겐인 뿐인 것을. 스스로가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마다, 혹은 사람들이 그의 그 기준을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그는 좌절하고 괴팍해졌다. 비겁한 변명도 제법 했던 것 같다.


특히나 연애에 있어서는 자기 연민, 연애 감정, 그리고 도덕적 가치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찌질함과 비겁함이 그 절정을 찍었는데, 베토벤은 정말 그녀들을 사랑했을까? 아님 사랑에 빠진 자신이 필요했던 걸까?


내 친구였으면 등짝을 한 번 세게 후려쳐줬을 것 같기도 하고… 애처로운 마음에 토닥여줬을 것 같기도 하고.


4. 나 = 닝겐 = 베토벤?

얼레? 나랑 닮았네?’ 라고 생각한 게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수록 삶은 일렁일 수 밖에 없다. 이상과 현실의 챌린지는 정비례 하기 때문이다. 타협하면 조금 잠잠해 진다. 나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좀더 쉬운 길을 선택하면 땅에 발이 닿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나, 지금까지 나온 것들 보다 더 나은 작업물, 더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자기 꼬장이 그 악랄한 모습을 드러낸다.


독후감을 쓰다 말고 내 꼬장을 받아주는 몇안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5.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 (나 ≠ 베토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끝까지 철저하고 완벽하게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았다.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모차르트와 하이든에게 거의 빅엿을 먹이는 수준의 새롭고 뛰어나고 아름답고 압.도.적.인. 음악을 만들어냈고, 나중에는 ‘이것봐, 너네 이런 거 생각도 못해봤지? 게다가 나 귀머거리다.’ 라고 소리지르며 으스대는 듯한 음악까지 만들어내며 (운명을 들어보세요, 음악이 말을 함.), 전대와 후대의 모든 음악가들에게 의문의 1패를 선사했다.


감정의 과함에 대해 늘 경계하는 나 역시도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그 격한 감정에는 볼이 빨개질 정도로 마음이 달아오른다. 곡의 템포에 맞춰 심장이 뛰고, 객석에서는 45도 각도로 접혀서 공연을 본다. 뭔지는 잘 모르겠다. 멜로디는 사실 쇼팽이나 차이코프스키가 더 잘 썼고, 세련됨은 라벨이 훨씬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음악에는 사람을 휘어잡는 무언가가 있다


진정성이 없으면 마음의 구멍에서 새어나가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연주자들을 통해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갖가지 해석이 더해지지만, 베토벤의 음악 근저에는 처절한 외로움과 철저한 투쟁이 깔려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음악가로 자기 이름을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까지 떨치겠다는, 만약 내 친구였다면 ‘짜식 귀엽구먼’ 이라고 생각했을 법한 야망과 이상을 평생동안 꾸고, 이루어내고, 운명의 멱살까지 움켜쥐며 쟁취한 이 위대한 남자는 그런 의미에서 나와는 1도 닮지 않았다.


6.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시인 박노해)

신기술, 최첨단, 트렌드, 유행 뭐 이런저런 것들의 최전선에 있는 IT. 거기다가 그 모든 것들을 알아야만 하는 마케팅 일을 하다보면 내 숨의 템포보다도 빠른 듯한 세상의 변화가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지 못한 기분은 대부분의 변화가 너무 빤하고 뻔하게 보인다는 것.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장기적인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유행에 대해서만 논한다. 그래서 얕다. 그들이 만들어 온 것들의 깊이가.


나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오래된 노래, 역사가 있는 건축물, 쓰인지 백년은 된 책, 나의 어린시절을 보고 견뎌준 친구들. 시간을 견딘 것들은 견고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굳이 어떤 작업물이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빛나길 바란다.


일단, 몇십년 동안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려는 회사에서 나는 그 첫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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