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허브에서 논란이 된 AI를 위한 문서 작성
오랜만에 이메일을 살펴 보다가 Write the Docs 뉴스레터가 와 있길래 별 기대 없이 열어보았다.
평소에는 잘 안읽는데 오늘은 점심시간 10분을 투자해서 읽은 보람이 있었다. 덕분에 아주 재미있는 논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AI 친화적이면서 인간이 읽을 수 있는 개발 문서 작성하기라... '휴먼-리더블' 이라는 표현에 흥미가 가서 본문에 있는 깃허브 링크까지 눌러보았다. 인간이 읽을 수 있는 개발 문서라는 건 뭘까? 그럼 그 반대는 인간이 읽을 수 없는 개발 문서라는 뜻인가? 개발 문서가 개발 문서지 사람이 읽을 수 있고 없고가 무슨 의미일까?
링크를 눌러 들어가보니 PR 쓰레드다. PR이란 'Pull Request'의 약자로 코드 변경을 제안할 수 있는 곳인데, 이곳의 Comment 섹션은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제안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제공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문제가 된 것은 Microsoft의 WSL(Windows Subsystem for Linux)에 관련된 개발 문서. 한 개발자가 해당 문서의 도입부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테이블 형식으로 내용을 정리해서 수정을 제안했다. WSL에 관해서 1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알잘깔딱센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수정안이었다. 문제는 Microsoft 담당자의 대응이었다.
Thanks for the contribution here and appreciate your attention to detail. We have decided to keep as-is.. part of that decision is that more and more folks are using AI chat to access guidance and tables don't always translate well in that context.
제안은 고마운데 수정 안하고 그냥 둘게.. AI chat으로 개발 문서 내용 파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테이블 형태의 자료는 AI가 파악하기 어려운 이슈가 있기도 해서 말이지.
이 글을 쓰는 현 시각, 이 코멘트는 단 2개의 좋아요와 917개의 싫어요를 기록하고 있다. "나쁜 결정이다", "프로라면 LLM을 믿어서는 안된다.", "만우절 개그냐", "유저로서 읽기 쉬운 문서를 원하는 것이지 AI가 알려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놀랍다" 등의 코멘트가 줄줄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결국 개발자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Microsoft 담당자는 해당 PR을 수용했다. AI에 대한 내용은 수정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했던 이유 중 일부였을 뿐인데 왜 다들 여기서 이렇게 과민 반응하냐는 뒤끝 코멘트까지 남기고 갔다. ㅎㅎ
요즘 개발 문서 영문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번역 작업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1차로 AI 번역기를 사용해서 번역해둔 것을 내가 리뷰해서 수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엉망이라서 사실상 처음부터 번역하는게 나은 것 같다. AI 번역 퀄리티가 낮은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아무래도 AI가 국문 내용을 파악하기 쉽게 주어, 목적어, 동사 등을 명확하게 써주는게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번역도 클릭 몇 번으로 끝날텐데! AI 번역 퀄리티 향상을 위한 국문 작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계기로 생각이 좀 바뀌었다. AI가 번역하기 쉽도록 AI의 눈치(?)를 보면서 경직된 문장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한국어 특성상 주어와 목적어 생략을 했을 때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글이 나오기도 한다. 컴퓨터가 이해하기 쉽도록 인간의 언어에 새로운 제한(?)을 가하는 것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일까?
한편, 위 논란의 쓰레드에는 요즘 기업들이 앞서나가는 첨단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AI를 일부러 제품에 우겨넣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유저가 프로덕트 사용에 대한 질의를 하면 AI가 이용 가이드와 개발 문서를 브라우징해서 즉시 대답해주는 기능을 개발했다. 유저의 질의에 적절한 문서를 찾아주긴 하는데 약간 애매하달까? 지금은 고도화된 문서 서치 툴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유저가 문서를 직접 잘 검색할 수 있다면 특별한 효용이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쟁사가 모두 비슷한 기능을 낸 마당에 안 낼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AI 버블의 한 가운데를 살고 있는 것일까?
논란의 쓰레드에서 읽은 것 중 아래 글귀가 가장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Any fool can write code that a computer can understand. Good programmers write code that humans can understand.
- Martin Fowler, Refacto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