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다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육아와 직장생활로 바빠 자주 볼 수 없었던지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제 막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까지 함께해 시끌벅적한 자리였습니다.
자연스레 어린이집과 유치원 생활 아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모두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영유 안보내?"
저는 오히려 "너는 왜 영유 보내?"라고 물었습니다.
친구들은 영어만 잘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며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필수로 가르쳐야한다며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파했습니다. 영유 숙제를 하기 위해 영어 과외 선생님을 시간당 7만원씩 주고 일주일에 두번씩 과외를 하고 있다는 둥, 영유 숙제 하느라고 주말에 축구 교실와 댄스 교실을 모두 끊었다는 둥. 자기가 영어를 못해서 숙제를 못 봐주는게 속상하고 안타깝다는 푸념까지.
실제로 영어로 밥 벌어먹고 사는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영어 잘하면 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주고 아이가 커서 그 분야 일을 해도 굶어죽지 않습니다. 왜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줄 생각은 안하고 영어라도 해서 밥벌이하라는 식으로 5살부터 책상에 앉혀놓고 하기 싫은 공부를 시켜야하나요?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면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좋겠지만 유치원생에게 오로지 영어 공부만 강요하는 모습이 굉장히 기형적으로 느껴집니다. 만 6세짜리가 영어로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 것이 정상적일까요? 미국의 6살짜리도 마틴 루터 킹을 잘 모를 뿐더러 책을 읽거나 그에 대한 에세이를 쓰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6살 아이가 마틴 루터 킹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끝을 모르는 사회적 지위 상승 욕구와 열등 의식이 강하게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가정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지위 상승 욕구은 훌륭한 내적 외적 성장을 견인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휘될 수도 있지만, 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모들이 많을수록 대체로 불필요하고 의미없는 교육비 지출에 아이들만 고생시키고 경쟁 속에서 언제나 불안에 떨며 남 눈치를 보고 사는 그런 젊은이들을 길러내게 됩니다. "영어만 잘하면 밥벌어먹고 산다"와 같은 점점 시대와 동떨어진 잘못된 믿음을 맹신하면서요. 영어를 잘하면 알게 됩니다. 영어만 잘해서는 절대 밥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영어는 단순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왜 영유 안보내?"
친구들이 정말 신기한 눈초리로 걱정된다는 듯이 얼른 영어 공부 시작해야하지 않냐며 다시 물어봤습니다.
우리 아들은 책상에 앉아있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그냥 쭉 놀게 시킬거라고 그렇게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제 친구들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사는 세상이 더욱 좋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