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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May 08. 2024

뭘 하고 있다는 착각

애는 저절로 큰다 

하루 종일 바쁩니다. 회사 일하랴, 가정 대소사 챙기랴, 뉴스 보랴, 장 보고 밥 하랴, 청소하랴, 애랑 놀아주랴, 24시간이 부족합니다. 하루를 꽉꽉 채워 보내면서 뿌듯한 날도 있지만, 오늘 하루 내가 마음 먹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날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 목표는 나만의 생각을 뾰족하게 다듬어서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은 글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어떤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지만, 거의 몇 주간 그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될 만한 아티클을 모으기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실망했습니다.  


물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인풋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담긴 글을 자꾸 훔쳐봤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들킨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나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준비만으로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하기로 하는데 각종 운동 기구나 기능성 의류를 알아보고 쇼핑을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실 그냥 운동화만 신고 나가면 운동인데 말이죠. 


죽이되는 밥이되든 일단 쓰기 시작해야되는데, 참고 자료를 더 많이 살펴보겠다는 핑계로, 일하는 엄마라 바쁘다는 핑계로 도망쳤습니다. 






엄마라는 핑계.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 어렵고 힘든 일은 세상에 없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 내가 뭘 했다고 착각하기 쉬운 일도 또 없다고. 


아이는 내가 만든 화분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이지, 내가 뭘 해서 자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널 키우느라 이렇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다 바쳤다 따위의 말은 넌센스입니다. 사실 뭘 할 것도 딱히 없습니다. 제때 물을 주고 햇빛을 보게 해주는 것 말고는 말이죠. 


젖병을 빨던 아이가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먹을 만큼 컸습니다. 아이가 이만큼 크기 위해 내가 정말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착각일 겁니다. 아이를 위해 화분을 관리하는 일 말고 더 많은 일을 했다면 그건 그저 본인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벌인 일이었을 겁니다. 애는 저절로 컸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결국 진짜 나만의 일을 해야합니다. 아이가 컸다고 마치 내가 대단한 뭔가를 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아이는 훌쩍 컸지만, 내가 성장했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세운 나만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뭔가를 했다는 착각 속에서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입니다. 


육아만으로 시간을 다 보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또 없습니다. 내가 뭘 대단한 일을 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아아이를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만들어낸 결과물로 착각합니다. 그 결과물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고 소유를 하고 싶어집니다. 아이의 인생을 평가하고 간섭하게 됩니다. 우리 엄마 세대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정신이 번뜩 들어서 아이와 함께 누워있다가 아이가 잠든 후 다시 일어나 어두운 서재에 불을 켰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글을 써보았습니다. 밀린 번역도 했습니다. 내일은 정말 쓰기로 마음 먹었던 글을 몇 문장이라도 써보기 시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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