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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een Dec 20. 2023

영혼의 무게는 무엇으로 잴까요

티베트 여행에서 만난 사람


영혼의 무게는 무엇으로 잴까요 - 티베트 여행기

멀고도 먼 길, 두 번의 비행기와 2박 3일간의 기차

상투적인 말이지만, 티베트 라싸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멀다” 를 두 번 반복하는 정도로는 모자랄 만큼 멀었다. 일단, 조건이 까다로웠다. 중국 관광 비자는 물론, 티베트는 특별구역이라 별도의 허가가 필요했는데, 꼼꼼히 준비해 여행 허가를 받더라도 자유여행은 불가능하고,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반드시 동행하는 조건으로만 티베트자치구역 내를 여행할 수 있다. 


물리적인 거리도 멀었다. 서울에서 베이징北京을 거쳐 청두成都로, 청두에서 티베트의 중심도시인 라싸拉薩로. 베이징까지는 마냥 설렜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청두까지 갔을 때도, 영화 ‘호우시절'의 무대가 된 청두 시내를 둘러보고 쓰촨四川성의 상징인 판다공원에 갔을 때도 즐겁기만 했다. 청두역에서 칭짱 열차青藏鐵路의 침대칸에 탔을 때는 끝없는 지평선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러나 왠걸, 곧 지겨워졌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바깥은 똑같았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를 지나가니 귀는 멍멍하고 머리는 띵한데, 다음날도 거짓말처럼 똑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땅이 이렇게 넓다니.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과 석산, 제멋대로 흐르는 얕은 강, 끝없는 지평선. ‘거대한 없음'이었다.


서울-베이징-청두, 그리고 칭짱열차를 타고 시안을 경유하여 라싸까지
청두에서 라싸로 가는 열차


‘거대한 없음’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3시간이면 족한 나라에 살다보니, 긴 기차여행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나보다. 50시간, 3,400km의 대이동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개념이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티벳 여행 이후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로망은 지웠다ㅠㅜ)


해발 4,500미터 티베트 고원의 도시 라싸

기차가 해발 5,000미터 루트를 지나갈 때는 기압이 급속히 낮아졌다. 귀가 먹먹한 건 그렇다치고, 기차 타기 전에 산 과자와 빵 봉지는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중국인 아저씨는, 청두에서 풍선을 반만 불어 놔도 티베트에 가면 빵빵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컵라면을 먹을 때는 조리법 보다 훨씬 오래 익혀야 한다고도 가르쳐주었다. 


빵빵해진 빵봉지
침대칸에는 2층 침대가 2개. 4명이 2박3일을 함께.

청두에서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면 2시간만에 라싸에 갈 수 있지만, 그런 여행객 대부분이 고산병에 시달려 산소통을 여행가방처럼 끌고 다닌다. 기차를 선택한 건 천천히 고원지대로 올라가야 고산병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2박3일의 기차여정은 고도에 조금씩 몸을 적응시키는 시간이기도 했다. 칭짱열차의 침대칸에 누우면, 얼굴 바로 옆 벽에 투명한 호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숨이 가빠지면 이 호스를 코에 꽂아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 나는 고산증세를 예방한다는 약을 사흘 전부터 미리 먹어서 그런지, 티베트 여행하는 내내 한번도 고산병으로 힘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라싸의 호텔로비에 준비된 산소통
라싸 역에 도착했다.

    

눈을 씻은 것처럼 새파란 라싸의 하늘

라싸는 모든 것이 선명한 곳이었다. 밤에는 비가 오고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았다. 하늘은 파랗지 않고 새파랬고, 꽃들은 빨갛지 않고 새빨갰다. TV광고에 나오는 고해상도 화면처럼 모든 것이 선명해서, 시력이 좋아졌나 착각마저 들었다. 원시 그대로의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 사실 “자연 그대로"라는 말은 사람이 오염시키지 않은 태초의 경이로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풀밭에 개똥과 소똥, 사람똥이 한꺼번에 뒹군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싸에서 서너시간 떨어진 시가체로 놀러 나갔던 날, 화장실이 어디에요? 라는 질문에 가이드 아저씨는 초원 한가운데의 큰 나무를 가리켰고, 그래서 처음 며칠은 변비에 걸렸더랬다.   

라싸 시내 

라싸의 상징 포탈라 궁전

대대로 환생한다고 믿는 달라이 라마(현존하는 달라이 라마는 14번째 환생자)가 생활했던 포탈라 궁전은 눈부시게 하얀 벽으로도 유명하다. 이 벽은 1년에 한번 보수공사를 하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야크젖과 설탕등을 섞어 벽에 바른다. 벽이 희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도시의 불교 신자들은 궁전에 우유와 설탕등을 바친다. 


조캉 사원

       

라싸에서 한시간 거리인 예르파에는 깎아지른 절벽에 티베트 승려 수백명이 은둔 수행을 하던 동굴이 있다. 가이드분이 예르파에서 축제가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놀러간 곳. 산등성이와 산의 눈이 녹아 내리는 계곡이 있을 뿐인 곳이었다. 그 절벽에 작은 동굴들이 여러개 있고, 그곳이 지금은 사원이 되었다. 티베트의 초대 국왕이었던 송첸캄포도 이곳에서 명상을 했다고 한다. 

이날은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보여 전통 공연도 보고 음식도 나눠 먹었다.


날파리와 야크, 생명의 크기는 무엇으로 잴까요?

불교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티베트에서는 전통적으로 야크고기를 먹는다고 한다(블랙야크, 의 그 야크이다). 식당에도 야크 메뉴를 팔기에, 밥과 함께 나오는 스튜를 시켰다. 한참을 푹 끓여 나온 스튜인데도 야크 고기가 얼마나 질긴지 잘 씹히지 않았고 냄새도 났다. 그동안 내가 먹은 부드러운 고기들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사육된 것이었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먹이가 되려고 태어나는 짐승이 어디있을까.

야크는 이렇게 생겼다.

사실 라싸 시내의 정육점에는 돼지, 닭, 양고기도 팔고 있었고, 서울시 크기의 3배나 되는 얌드록쵸 호수를 비롯, 거대한 호수가 여러개 있어서 물고기도 많이 산다고 했다. 하지만 신실한 불교신자인 가이드 아저씨는 야크 고기 이 외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왜 생선이나 다른 고기는 먹지 않고 야크를 먹나요? 야크를 키우려면 힘들고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닭을 키우면 계란도 먹을 수 있잖아요"라고 물었더니, 가이드 아저씨는 돼지나 닭, 양고기는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 온 한족들이 많이 먹는다고 알려주었다. 티베트의 원주민인 좡족들은 생선도 먹지 않고 오직 야크만을 먹는다고 했다.


“야크도 한 생명이고, 물고기도 한 생명이야. 야크 한 마리의 목숨으로 수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잖아. 하나의 생명으로 마을 전체가 배부르다고. 생선은 여러 마리를 먹어도 아이 한 명의 배도 차지 않아. 왜 우리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많은 영혼을 죽여야 하지?” 

승려가 된 아들을 방문한 부모
마니차 앞에서 웨딩촬영중인 신혼부부
길에서 만난 꼬맹이들

티베트에 다녀온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사실 닭이나 생선은 안 먹어도 야크를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불교 신자라면서 그 큰 야크를 죽이다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래미 한 마리의 목숨과 야크 한 마리의 목숨은 같은 건데. 날파리의 목숨은 작고, 야크의 목숨은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나도 모르게 동물의 목숨은 가볍고 인간의 목숨은 무겁다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렇다고 그 이후로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건 아니지만, 가끔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때, 잔멸치 볶음을 먹을 때, 무심결에 탁! 모기를 잡을 때마다 티베트의 가이드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야크를 키우는 유목민과 핸드폰 결제가 공존하는 티베트

티베트의 사원에서는 초 대신 야크 버터로 불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은 버터를 공양물로 올린다고 한다. 나쁜 버터는 그을음이 많이 나와 절 내부의 그림(탱화)를 망치기 때문에 좋은 버터여야 한다고. 어디서 가장 좋은 버터를 살 수 있을지 물었더니, 일반 가정에서 야크 젖으로 직접 만드는 게 제일 좋다고 하셔서, 가이드 아저씨의 친척인 유목민 아주머니를 소개받아 직접 만든 버터와 야크 치즈를 샀다. 


야크버터와 치즈를 가져다 주셨다.


유목민 아주머니가 키우시던 야크들

아주머니는 계절마다 야크떼를 몰고 이동하면서 생활하시는데, 절에 바치기도 하고 가족들이 먹을 용도로 버터와 치즈를 조금씩 만드신다고 했다. 버터는 고소하고 치즈는 찐해서 정말 맛있었다. 가끔 야크털이 한 두 개씩 섞여있기도 했지만,,,, 그런 건 뭐 애교로 넘어가자. 불도 안 들어 오는 곳에서 어떻게 사시나 했는데, 아주머니의 텐트 앞에는 손바닥 두어개 만한 태양광 패널이 있어 그걸로 전기를 충전하시는 것 같았다. 버터와 치즈 값은 핸드폰으로 송금을 해드렸다. 


조캉사원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천에 기도문을 써서 걸어두면 바람이 멀리까지 전해준다고 믿는다

        

과일가게에서도, 동네 빵집이나 야식을 파는 트럭에서도, 모든 결제는 큐알코드로 이루어졌다. 하긴, 커피숍에 앉아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는 젊은이 옆으로, 조캉사원까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지나가는 곳이 라싸이다. 한발 앞으로 걸어가서 온 몸을 땅에 붙이고 엎드려 손을 높이 든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한발. 온 몸을 땅에 붙였다 일어나 한발씩 전진하는 고행을 하며 몇 천 킬로미터를 걷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야크 유목민과 큐알코드, 오체투지 승려와 아이폰. 과거와 미래가 한꺼번에 뒤섞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 어디와도 다른 곳

티베트에서 10일을 보냈다. 외부 자본이 많이 밀려들어와 티베트도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여기저기가 공사중이었다.) 티베트 원주민(좡족)인 가이드 아저씨와 운전기사 아저씨들은 우리를 안내하러 절에 가면 설명보다 먼저 기도를 올리시던 신실한 불교신자들이셨지만, 젊은이들은 종교에 관심이 없다고도 하셨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주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티베트 문자와 말,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우려, 때로 불만도 보였다. 실제로도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티베트어로 대화를 하지만, 젊은이들은 모두 중국어(보통화)로만 말한다. 대도시로 나가서 직업을 얻으려면 중국어를 해야한다고. 학교에서도 티베트어 수업은 적어지고 중국어 수업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와 외국어로(영어로) 대화를 할 때 조차도 누구도 큰 소리로 불만을 말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마음껏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달라이 라마나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해 물으면, 티베트 사람들은 급히 주변을 살피며 문 부터 닫으라고 했다. 인도로 망명한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금기어같았다. 


길거리 중간중간에는 공항에서나 보던 짐 검사대가 있어서, 그냥 걸어가는 것 뿐인데도 하루에 대여섯번씩 모든 소지품을 기계에 넣고 검사를 받아야 길을 갈 수 있었다. 어딜가나 공안들이 많이 보였다. '프리 티베트'라든가, 시위라든가 하는 것들은 원천차단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무서운 사회 속에서야 그럴 수 밖에.


그동안 내가 쉽게 말해왔던 것들, 신장 위구르 지역이나 티베트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것들인지 생각했다. 책상다리 빼고 모든 것을 다 먹는다는 한족과, 하나의 생명이라도 덜 죽이기 위해 야크만을 먹는 좡족이 함께 사는 곳. 티베트 불교의 중심인 조캉사원과 무슬림들이 모여 생활하는 모스크가 같이 있는 곳. 유목생활과 최신 아이폰이 공존하는 곳. 라싸는 세상의 어디와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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