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크루즈 댄스배틀

'26.1 카리브 海 MSC 우승

by 이용만
MSC 선상, 댄스경연

일국의 대통령이 졸지에 체포되니 카리브 해역이 수상쩍다. 리의 크루즈항로가 베네수엘라해역과는 꽤 어졌지만 미사일라도 쏘아대면 운항할 수 없다. 승선 당일까지출항여부마조마하다. 하지만 28년 만의 북극한파로 공항이 폐쇄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선샤인 주(州)라는 플로리다에 눈이 내리고 나무 위 이구아나가 기절해 툭툭 떨어져 도로에 널브러졌다. 24시간 내 보호받지 못하 이구아나는 동사다고 TV 외쳐댔다.

항공편 10,000개가 단칼에 취소되었다. 폐쇄된 달라스공항 여파로 인근 애틀랜타에 승객이 몰려드니 단체팀은 분산되고 LA공항으로 우회하였다. 배가 비행기를 기다려주는 법은 없다. 36시간의 강행군 끝에 마이애미항구 크루즈에 승선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누적된 수면부족에 결국 혈뇨까지 비치고 항생제로 겨우 증상은 가라앉았다. 에메랄드빛 카리브의 초록은 산호가 만든 아름다운 모래 때문이지만 풍랑은 만만치 않다. 크루즈에서 배멀미하는 사람이 있다니... 사흘째 되어서야 안정을 찾는다.

선장의 환영 인사말이 있는 저녁이다. 캡틴은 가능한 여러 나라 언어로 인사하기에 여념이 없다. 곳곳에서 환호가 터지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어 고맙고 말해줘 기쁜 ' 자국 언어에 대한 반가움이다. 크루즈에서 만나는 다국적 특징들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종이로 된 선내 행사일정은 받아보질 못했다. 요청해야 제공된다고? 디지털을 넘어 AI시대인지라 앱(application)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선내 인트라넷 연결에 도움을 준 승무원을 만나고서야 선내일정이 겨우 들어온다. 인터넷으로도 소통이 끊기면 언어소통보다 몇 배 더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선내 유료인터넷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일행은 살사 댄스경연에 참가한다. 댄스화와 무도복도 준비해 왔으나 아내의 컨디션회복까지 댄스라는 말을 꺼낼 형편이 아니었다. 그저 함께 모여 응원할 생각이었다. 선내 무도장에 도착해 보니 곧 있을 이벤트 상황을 짐작할만했다. 눈이 번쩍! 댄스경연 출전선수들의 등번호가 눈에 띄었다. 엇? 저것을 붙인다고? 백넘버(back number) 아닌가? 전국체전을 방불케 하는 등번호이다. 댄스동호인들에게 익숙한 등번호. 영국 웨스트엔드에 있는 블랙풀은 볼룸댄스의 성지이다. 선수는 물론, 마니아들은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 나의 생애 머스트고(must go)이기도 하다. 첫 라운드에 탈락하기도 하고 동양인 프로선수는 16강에 들어도 자랑스러운 블랙풀이다. 등을 다 덮을 만큼 넓은 등번호에는 막중한 책임감이 서려있다. 무도장을 둘러 선 심사위원들에게도 선명하게 보인다. 만면에 웃음을 띤 얼굴로 세미 파이널을 거쳐 우승자가 탄생한다.

국가,선수 소개

"등번호 어디서 받아요?" "저분에게 말하세요." 즉시 그에게 출전의사를 밝혔다. 마이클과 아녜스, from 코리아, 리스트에 적어 넣었다. 큼지막한 5번 등번호가 머리로부터 씌워진다. 그런데 파트너는 어디 있느냐고 불안한 눈으로 스태프가 묻는다. "my wife? 무대 건너편에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선수들은 바로 지금 이곳에 와 있어야 한다며 나의 손을 끌고 무대 안으로 들어섰다. 진행자는 6개 팀 경연을 선언하고 있었다. 바로 시작이다. 느닷없이 등번호를 붙이고 선 내 옆에서 아내는 댄스슈즈는커녕 볼멘소리조차 꺼낼 형편이 아님에 당혹해한다. 스태프가 이끄는 대로 에스코트받으며 엔트리 국가와 선수소개를 마쳤다. 아내의 컨디션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백넘버까지 붙인 경연대회니만큼 미소와 긴장이 교차한다. “아마 탱고 경연인가 봐. 하던 대로 춤추면 돼요”아무 말이나 안심시키려 꺼다. 요란한 여성 사회자는 다섯 개 종목을 줄 거라며 심사위원석 여성 2명도 쏼라쏼라 소개하였다.

첫 곡으로 비에니즈 왈츠가 선언되었다. 엇! 왈츠도 아니고. 몸도 풀리지 않은 상태인데, 비에니즈 왈츠를 첫 번째로 추라고? 꽤 수준 있어 보이는 사회자의 감각이 남 달라 보였다. 허스키한 그녀는 크루즈 전체 댄스운영프로그램의 헤드코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비에니즈 음악은 저절로 춤이 나올 듯 익숙한 곡이었다. 파티 때 한 번씩은 연습 삼아 추던 춤이다. 게다가 마침 학원에서 수업 중인 종목이다. 빠른 비에니즈왈츠에서 슬로 왈츠 때의 나의 약점을 찾아낼 수도 있다. 래 개념정립은 비슷한 말보다 반대말에서 더 명료해진다. 여성을 제대로 리드하기에 공부가 많이 되는 춤이다. 자신감이 충만했고 심사와 경연 진행 상황은 바라던 바다. 다행히 아내가 미소를 잃지 않는 것도 청신호다. 비에니즈 왈츠의 작은 원을 그리며 내추럴턴과 리버스턴이라도 또박또박 구사한다. 춤을 추면서 환호성과 응원박수를 듣는다. 힐끗 다른 선수들을 보았으나, 엉겨 붙고 라틴을 추는 것처럼 정신없어 보인다. 비에니즈 음악은 1분 남짓으로 짧겠지만 운동화를 신은 상태로서는 한량없이 길게 느껴진다. 사회자의 비에니즈 왈츠 추임새가 안타깝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사회자가 등번호 순으로 출신국가와 이름을 소개하면 심사위원 2명의 스코어보드가 올라온다. 1번 선수 9& 8.... 4번 8&8. 지켜보니 하단 최하점은 8점씩은 준다. Next! 내 차례다. Back number 'Five'. 마이클 & 아녜스! From South Korea! 10&10 스코어는 만점이 올라왔고 장내에 환호성이 터졌다. 나는 모자를 벗어 관중과 심사위원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진행자의 특별 소개 속에 두 번째 종목은 차차차. 여유도 생겼다.

Chacha 루틴은 익숙하므로, 플로어가 기우뚱 한쪽으로 쏠려도 요령껏 균형을 잡는다. 두 번째 라운드도 만점 통과다. 탱고와 예습해 온 살사까지 그런대로 추었고, 마지막 자이브는 기본 동작들을 정확히 리드하려 애썼다. 종합 우승은 이미 정해졌다. 축하포옹과 무대에서 인사하는 법도 충분히 배운 바 있다. 댄스시범을 보이던 때 ‘공연은 입장과 퇴장까지가 전체 춤의 과정’이란 말을 수 없이 되뇌었지 않았던가. 마치 블랙풀 경기에 참여한 것 같았다. 가이드도 이렇게 백넘버를 달고 심사까지 하는 댄스경연을 처음 경험했다며 유럽인들로서 동양인에게 우승상을 주기까지는 쉬운 결정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함께 응원단이 되어준 동료들과 무대가 떠들썩하였으니 MSC 선상에서 나름 유명인사가 되어 뷔페식사 때는 표정도 씩씩하게 다녔다. K-pop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곳 카리브에서는 우리를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으로만 안다. 국위선양!

1st round, 비에니즈 왈츠 경연

대형 크루즈선인데도 미세한 울렁거림이 지속되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지 않으면 편치 않다. 15년 전 크루즈때와 다를 바 없이 인터넷을 쓰는 조건이 까다롭고 비싸다. 남은 일정 전체를 구입하는 식의 180달러를 지불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남은 여정은 마이애미에 도착해서 키웨스트와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가보는 거다. 헤밍웨이처럼 2 백번씩 글을 고칠 인내심은 없다. 16명이 각자 여행기를 한 꼭지씩 쓰고 책을 출간하려던 처음 계획대로 댄스를 주제로 써낸 것으로 만족하자. 불만을 토로할 시간에 댄스 우승을 떠올리기로 했다. 상품으로 받은 MSC 모형 배 한 척을 바라보면 다시 크루즈를 찾을 것이다.

2nd round 차차차

30분짜리 다양한 댄스 종목별 수업들이 내게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4-5가지 베이식동작으로 해결되는 메렝게 바차타 레게 파소도블레 룸바 삼바레슨은 경이로웠다. 살사가 라틴음악에서는 베이식 같은 것임도 알았다. 십수 년의 레슨을 통해 댄스를 한 줄로 꿸만하니 보이는 현상이기는 할 것이다. 기대만큼 즐기는 것이 크루즈라면 댄스 외에도 기항지 풍경이거나 음악 미술 요가 공예 음식맛보기도 좋을 것이다. 다음 크루즈에서는 영어를 좀 더 알아듣고 기항 프로그램을 줄여 여유 있기를 고대해 본다.

샴페인으로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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