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흡하며 왈츠 음악에 맞춰 제1보를 내딛는다. 파트너와 호흡이 잘 맞으면 구름 위를 나는 듯 가볍다. 커플댄스의 기본은 왈츠에서 시작된다. 왈츠에는 댄스 용어, 기본적인 홀딩과 균형에 대한 사항들이 집약되어 있어서다. 댄스 용어 속에 동작 있다는 말이 그럴듯하다.
CBM (Contrary Body Movement)은 전진 또는 후진하는 발과 반대 측의 상체 반면을 발의 방향으로 전진하는 움직임이다. 처음 춤을 배울 때 ‘보디를 열고 닫는다’는 댄스 강사의 CBM 설명은 어려웠다. 원리는 모르겠는데도 샤세 동작은 몸이 저절로 진행하므로 쉬워 보였다. 샤세(Chasse)는 '추격하다'라는 프랑스어로 3보의 스텝에서 발을 벌리고, 모으고, 벌리는 연속 동작이다. 어린아이가 사뿐사뿐 걷는 느낌이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샤세는 춤을 정겹게 만들기도 한다. 무도회장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춤을 진행하며 이동하기에 유용한 동작이다.
샤세 프롬 피피(Chasse from PP)는 커플이 V자 모양으로 좌측으로 진행하는 동작이다. 피피 PP는 프롬나드 포지션 Promenade Position을 줄인 표현이다. 홀딩한 채 산보하는 느낌으로 걷는다고나 할까. 가장 기본이 되는 왈츠인 경우에는 춤추는 사람들이 많아 혼잡하다. 샤세 두세 번을 연속으로 하면 플로어에서 혼잡구간을 요령 있게 이동할 방법으로만 여겼다. 많은 파티에서 샤세를 하면서도 ‘보디를 열고 닫는’ 일은 생각도 못 했다.
잃어버린 피겨를 복습하고자 레슨을 받는 중에 샤세동작에서 ‘여성을 잘 리드하지 못한다’는 강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쉬운 동작으로만 여겼던 샤세 동작에 모르고 있던 춤의 원리가 숨어 있었다. 파트너가 알아서 맞는 동작을 해버린 것이었다. 여성 파트너의 몸이 클로즈드 포지션이 될 만큼 남성이 파트너를 닫도록 리드해야 했다. 닫힌 상태라야 후속 피겨인 ‘내추럴 턴’등의 올바른 리드가 여성에게 전달된다. 그동안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휘젓고 다닌 셈이었다.
눈과 귀가 먼 여섯 살의 헬렌 켈러가 생각났다. 물컵을 떨어뜨리며 말과 글을 깨친 일이었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water’라고 적고 펌프로 퍼 올린 물을 느끼게 한 것과 같은 놀라운 순간이었다. ‘스핀 턴’에서 고급 수준의 춤에 익숙한 여성인데도 남성의 회전량에 따라 인사이드가 아닌 아웃사이드로 받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열고 닫는’ 반성을 통해 탱고에서 CBM(꼬인 보디라고 제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보았다)으로 제대로 쳐주는 ‘탱고 맛이 나는 스냅’도 가능했다.
여는 동작에 맞는 피겨들이 있고, 닫는 동작에 맞는 피겨가 있다. ‘오픈 내추럴 턴’ ‘아웃사이드 체인지’등 왈츠 리드의 오묘함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디 ‘샤세 프롬 피피’ 한 동작뿐이랴. 잘못된 리드를 모르고 파트너인 아내에게 틀렸다고 우겨댄 시간의 무게가 천근 같았다. 많은 스승이 있었음에도 오류를 바로잡지 못했다. 레슨 없이 고급기술을 굳이 가르치기에는 바쁜 세상이다. 볼륨댄스인 경우에는 파트너가 있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끝이 없다. 혼자 치는 골프 샷에서도 힘을 뺄 때와 줄 때가 다르다.
댄스 15년 만에 눈이 띄었다니... 부끄러움이 겸손하게 만들었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모처럼 새벽 미사 때 만난 이웃 여성 교우가 ‘새벽 미사에 오면 떡이 나온다’라고 내게 툭 던졌다. 새벽 미사에도 나오다니 ‘잘했어요. 복 받을 거야’라는 뜻이다. 그녀처럼 오랜 간병 끝에 가슴 흉선을 제거한 남편을 회복시킨 귀한 체험은 말이 짧았다. 신부님의 강론 복음 말씀도 쏙쏙 들어왔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이제 아버지께 갑니다”라는 복음말씀이었다. 부활의 신비대로 육신의 예수는 죽어야 부활할 것이다. 한 생을 닫고 영생을 여는 일이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는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와 대비되었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라는 구절에서처럼 ‘열고 닫는’ 일이 새로웠다. 열고 닫는 ‘샤세 프롬 피피’처럼 들렸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성경 구절처럼 그때에는 들을 귀가 없었나 보다. 미사 중에 옆자리 앉은 남성 분은 내게 악수도 청하였다. 먼저 악수를 청하는 열린 마음이 나는 왜 안되는지 부끄러웠다.
고수들의 인생살이에서 숨어있는 지혜를 본받고 싶지만 깨우치기까지는 험난한 일이다. 자신 있게 리드를 해낼 수 있는 ‘샤세 프롬 피피’로 만족하자. 들을 귀가 없었음도, 내게 가르칠 시기를 놓친 스승과 연이 닿지 않았음도 어쩌면 나의 복이었다. 인연이 맞는 때가 필요했다. 인생을 열어가는 후학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좋은 스승으로 기억되어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무언가 깨친 것 같아 나의 눈앞에 시야가 탁 트여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