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윤'과 라운딩

by 이용만

골퍼라면 해외 LPGA경기 화면을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TV를 보면서도 출중한 선수들의 기량을 배운다. 골퍼가 아니더라도 TV화면에서 잘 다듬어진 초록의 골프코스를 보기만 해도 좋다는 분들도 많다. 여성 프로골퍼들의 화려한 복장과 섬세한 숏게임, 부드러운 샷과 표정등이 볼거리로는 더 좋다. 여성프로 선수들 중 제시카 코다는 상위권 선수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고, 덩달아 동생 넬리 코다도 언니를 보며 꿈을 키워왔을 것이다. 요즈음은 동생 넬리가 언니 제시카를 능가한다. 가문을 빛내는 ‘코다’라는 자매의 성이 재미있다.

음악용어로 코다는 클래식음악의 마지막 악장의 끝 부분으로 절정으로 치닫는 휘날레부분이다. 흥분의 도가니요 클라이막스 그게 코다이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넬리 코다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샷은 그녀의 미니스카트와 미모마저 함께 날려버릴 정도다.

오늘은 아내와 둘 만의 라운딩을 갖는다. 95세 시모를 여의고 아내는 50일간의 연미사를 끝냈다. 그동안 수고한 아내를 위로하고 싶었다. 20여년 전 장인과 장모님을 먼저 여읠 때 아내를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싶다. 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던 아내를 위해 비행기티켓 값이 어떻든 급히 떠난 곳이 호치민의 골프장이었다. 밤 12시에 도착한 공항에서 택시로 골프장을 찾아가는데, 운전사가 바뀌면서 길을 찾는 게 거의 납치되는 줄 알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의 우울감은 그렇게 나아졌다. 누구나 심각해지는 때가 있으려니. 이제는 좀 알 듯 하다.

한국에서 골프는 늘 4명이 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코로나로 해외로 못나가는 요즘, 골프장은 백년만의 호황이다. 4인 값의 카트 비용과 캐디 피fee를 지불하며 둘이 치기는 낭비이거나 사치일 것이다.

애인과의 골프라면 둘만이 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애인이 될 듯 말듯 노력하면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사실 허풍장이나 바람끼도 감정과 이성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다가, 마지막 지푸라기가 한 개 얹어지면 그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인생이다. 돌이켜보면 용기가 부족한 게 나를 살렸고 미남이 아닌 게 다행이다.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나의 속마음을 들키거나 말거나 내색도 하지 말자. 무엇이든 비우면 편하다. 다시금 아내의 기를 살리려 아내와의 라운딩이 무엇보다 귀중하다고 어렴풋이 느끼면서 왕복 4시간 운전도 즐겁다. 내가 생각해도 유연해져 천만다행이다. 돌 잡이 손녀하고 놀아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까? 어떤 연유인지는 잘 모른다.

아내 이름은 순자이다. 윤순자! 딸 다섯인 집에 막내 딸. 처녀시절 아내는 이름이 뭐냐고 묻는 남성들에게는 ‘순자’라고는 절대 안하고 그냥 '윤 이에요' 라고만 했다. 우리 두 딸들도 깔깔대던 오래 된 에피소드이다. 순자라는 이름은 큰 언니 정희와 비교해도 촌스럽다. 한때는 “영부인이네”라고 놀리던 때가 잠시 있었지만 허허롭다. 아마도 장인 어른은 내리 딸 다섯에 이름을 ‘순자’라고 지으면서 순리를 따르기로 하고 아들을 포기하셨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큰 언니를 ‘정희’라고 예쁘게 지으신 감각이 어디로 사라졌겠느냐고 나는 묻고 싶었다.


둘이서 떠나는 라운딩에 들뜬 아내는 컨디션까지 좋다. 호사다마, 이런 날에는 경험상 왠지 조심해야 한다. 아내는 자신감이 넘쳐나 캐디의 조언을 응용해가며 멋진 원거리 퍼팅을 해낸다. 기가 막힌 어프로치는 깃대에 척척 붙는다. 이럴 수가!!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남편따라 골프를 하나 둘 배워오고, 띄엄띄엄 가르쳐온 세월이 대견하다. 아내에게 자긍심을 넣어 줄 기회를 찾는다. 별명을 지어주고 싶다.

어제 LPGA 경기중 하이라이트를 반복해 보게 된 장면이 떠오른다. 늘씬한 미녀 골퍼에 '넬리 코다'는 인기가 많다. 팬들을 위해 그녀의 원거리 퍼팅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예쁜 처녀의 뒷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그게 팬서비스인지 모른다. 어쨋든 오늘 순자여사의 퍼트는 넬리 코다를 능가했고, 자신감이 붙은 어프로치 샷은 프로처럼 당당했다. 그렇다! '넬리 윤!' 하며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내에게 붙여준 애칭이 '넬리 윤'이다.

‘넬리 윤’ 듣고보니 나쁘지 않은 눈치다. 나도 이 참에 아내에 대해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사르트르가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노래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나는 아내를 넬리처럼 여기리라, 순자여사가 아닌 귀여운 넬리가 나와 함께 라운딩중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부부만이 하는 라운딩. 지루할지 모르겠다던 나의 우려는 기우였다. 첫 홀을 마친 캐디는 나 대신 아내를 얼마나 잘 지도하는지 레슨비를 지불해야 할 정도인 데, 언행과 품성도 훌륭했다. 칭찬의 말로 "골프레슨을 해도 좋겠다"고 넌지시 던지니 그렇잖아도 겨울시즌에는 스키 강습이 본업이란다. ‘밸런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들뜬 아내는 컨디션도 좋다. 기가 막힌 어프로치는 깃대에 척척 붙는다. 캐디의 조언으로 멋진 원거리 퍼팅도 홀인 해낸다. 이럴 수가! 남편따라 골프를 하나 둘 배워, 띄엄띄엄 가르쳐온 세월이 신통하고대견하다. 아내에게 자긍심을 넣어 줄 기회를 찾는다. 별명이라도 지어주고 싶다. 어제 LPGA 경기 중 하이라이트 장면이 떠올랐다. 늘씬한 미녀 골퍼 '넬리 코다'의 원거리 퍼팅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예쁜 처녀의 뒷 모습이 먼저 보인다. 그게 팬 서비스인지 모른다.

오늘 아내의 퍼트는 넬리 코다를 능가했고, 자신감이 붙은 어프로치 샷은 프로처럼 당당하다. 그렇다! 나는 큰 소리로 '넬리 윤!' 하며 외쳤다.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눈치다. 그렇게 '넬리 윤'이 아내의 애칭이 되었다. 이 참에 아내를 애인으로 보기로 했다. 사르트르가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시인 김춘수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꽃>에서 노래했다. 나는 아내를 넬리처럼 여기리라, 순자 여사가 아닌 넬리가 나와 함께 라운딩을 함께 한다. 꿈인가! 생시인가! 굳게 믿으면 그리 되리라.

캐디 덕에 나는 시간 여유가 많았다. 페어웨이에서 3번우드 대신 드라이버로 온 그린on green까지 연습해 볼 절호의 기회였다. 탄도와 굴러서 가는 거리 차이를 실감해본다. 티tee도 안 꼽은 드라이버 샷은 치기 어렵다. ‘모 아니면 도’ 다. 근력이 줄수록 비거리는 절실하다. 성공 확률이 낮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는가? 드라이버 샷이 쌔~앵하고 B29 화물 수송기처럼 낮게 날아간다. 빨랫줄같은 탄도로 떨어진 공은 잘도 구른다. 동반자들에게 폼 잡기에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내기가 걸린 때라면 승부를 걸 수도 있다. '서늘한 공포의 드라이버 연습 샷’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코로나는 부부간 말싸움보다, 서로 돌아보며 위로할 시간마저 그리 녹록치 않음을 일깨웠다. 어느날 갑자기 유리벽을 통해 만날 수 밖에 없음을 TV에서 보았다. 천년을 살 것처럼 자로 재어가며, 완벽을 추구하던 단견을 반성하게 했다. ‘황혼이혼’이라던 말은 뚝 사라졌다. 아직도 아내의 뇌리에는 "왜 이게 안돼? 고개를 들었잖아! 방향을 잘 못 섰지!" 그러나 꾸중도 격려도 흔적은 남는 법. 무수한 남편의 말 조각들이 맴도나 보다.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 훌훌 털고 축배를 들자. 버디를 낚는 올 버디(All Birdy)로 건배한다. 올해도 버팀목과 디딤돌이 되자'는 취지다. '오올’하면 ‘버디’! 손녀에게도 아내에게도 올 버디! ‘코로나19’는 부리나케 사랑할 용기를 내게도 불어 넣고 있었다.


《내 삶의 한 순간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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