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댄스파티는 의미가 크다. 코로나로 3년여 동안 닫혀있는 무대를 다시 여는 봄 파티다. 몸으로 익힌 동작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지만 난이도가 제법 있는 피겨와 루틴은 쉽게 기억나지 않는다. 댄스 클럽의 회원들은 근력만큼 마음도 무기력해졌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려는 나도 그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늘 쓰게 된 볼성사나운 마스크는 댄스산업을 초토화시켰다. 엄혹한 시기 얼결에 회장을 맡았다. 정신이 번쩍났다. 붐을 일으키기 위해 참여 인원부터 늘려야 하는데 댄스파티의 초대에는 복잡한 문제가 많다. 우선 춤을 출수 있는지, 부정적 편견이 없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오래 전 한국사회에서 사교춤의 문제점을 익히 들어온 터이다. 춤의 종류도 문제다. 끼와 흥이 넘쳐 추어대는 막춤은 자연스럽지만 무질서하다. 지터벅은 흥은 있어도 음악은 뽕짝이라는 말처럼 품위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댄스의 기초를 다지며 공을 들여하는 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인생에서 한바탕 춤을 추고 싶은 어느날이 있었으면 합니다. 언제라도 인터넷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파티가 유행인 것 같습니다. 90에도 꼿꼿한 자세로 아내와 함께 찾을 수 있는 곳이 ‘파라클럽’이면 좋겠습니다. 몸치도 세월이 흘러 댄스를 하게 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춤을 추게 하면 좋겠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여행모임에서 10년전 우리 부부의 탱고 영상까지 보여주며 파라 댄스 클럽을 소개하였다.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박수와 환호로 관심을 표하며 파티 초대에 동참해 주었다. 부인또는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파티에 오면 더욱 좋지만 우선 혼자라도 올 것도 약속했다. 초청장을 받을 주소를 받아적고 게스트 초대비용도 적었다. 파티가 임박한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단체에서는 한 두사람의 취소로도 분위기가 급변한다. 공짜 저녁이나 먹으며 구경만 하려는데 돈을 쓰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당황스럽지만 무료초대에 익숙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틀렸을까? 경험많은 이들에게 고충도 털어놓고 취소하는 이들의 본심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확정통보한 뒤라 다른 이들을 찾아야했다. 이벤트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무료초대를 기대하는 심리도 있으리라. 거절이유를 요령껏 대느라고 갈등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참가 금액을 보고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무료초대라고 행사 인원 채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바쁜 세상에 서로의 관계도에 따라 응하거나 무료라도 가지 않는 게 맞다.
세상에 믿을 건 돈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이었다. 확실한 것은 입금된 때였다. 말은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없던 약속도 만들게 한다. 약속을 뒤 엎어야 하는 논리와 언변이 변화무쌍했다. 결심이 선 사람은 입금이 빠르다. 돈은 많은 말을 함축하고 있지 않느냐. 침묵은 금이라 했지만 돈은 오가는 여러 말들을 침묵시킨다. 속도가 세상을 지휘하는 시대에 돈이 말하게 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게도 한다. 여러 건의 공과금을 모아 일정한 날에 낼 때와는 다르다. 입금의 시기가 갈등의 시간을 계속 말하고 있었다. 즉시 말로만 그럴 듯하게 답하는 말은 믿을 게 못되었고, 오히려 말없이 빠르게 입금한 이들은 결단이 빠르다는 존경심까지 얻는다.
너도나도 말이 쉬웠던 이들의 갈등은 길었나 보다. 응답이 늦은 이들의 갈등의 시간은 서로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커플 댄스 파티를 연상하며 싱글로 앉아있을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취소를 말하기도 어려웠을 법하였다. 속마음을 거친 방식으로 내보였다면, 약속에 대한 괴로운 심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돈이 말하게 되는 법이었다. 관계가 깊은 사이일수록 초대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 카드로 남겨둔 것이었을까? 사정도 뻔히 알고 취향도 잘 알므로 오고가야 할 말이 필요없다. 입을 연 순간 상대는 안다. 무료초대 라면 시간을 꼭 내어 달라는 거다. 나는 시간과 돈을 모두 말한 게 아니더냐. 취소인원이 늘어나 초조하고 실망한 나의 목소리와 태도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단지 나를 위해 결심하는 것을 본다. 결국 속마음을 교감한 이들로 채워졌고, 면면을 보니 아름답고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구석은 아직도 입금이 안되었다는 사실이다. 입을 떠난 말에 돈이 책임을 맡는다. 껌벅거리며 말없는 침묵 속에 담긴 속마음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아마 침묵하는 이들은 늘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침묵을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돈이 진입 장벽의 울타리 역할도 한다. 높은 가격을 매겨 놓으면 쳐다도 안 보게 되는 명품들도 같은 부류다. 이래저래 돈의 힘을 알 수 있었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도 많겠지만 그래도 믿을 건 입금이다. 돈이 말하게 해야 했다. 내 믿음의 한계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