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만 Nov 10. 2023

자유 시간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걷는 모임도 나의 자유 시간에 속한다. 단골 회원들은 자유 시간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들인 듯싶다. 육아전문가인 여성 회원 한 분이 '거안 실업 사장'에 관해 들려주었다. ‘거안 실업 사장’은 거실과 안방만 오가는 은퇴한 남편에 대한 은유였다. 거안 실업 사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분의 이야기에 실소를 멈출 수 없이 재미있었다. 아내의 공간에 자리 잡은 남편은 골칫거리였다. 아들딸들은 출가했어도 분명한 친자식이지만 남편은 의붓자식과도 같단 말도 들었다.  

 자유 시간은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었나 보다. 초콜릿 바에 ‘자유시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초콜릿의 달콤한 중독처럼 자유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양재천을 홀로 걷거나 새벽 미사를 하는 때도 나의 자유 시간이다. 아내와 함께 하기도 하지만 의무감이 더 많았다. 대체로 아내가 바쁜 시간은 나에게는 자유 시간이다. 남편 식사 걱정할 일이 없는 때가 주부의 자유 시간임을 뒤늦게 알았다. 비교적 저렴한 동남아 골프가 인기인 첫째 이유는 밥때 걱정이 없어서다.

 우리 부부의 취미생활인 댄스도 코로나 3년으로 달라졌다. 파티가 없던 3년은 자유 시간이었다. 댄스 수업 중 피겨를 틀릴 때마다 상대방 탓으로 여기곤 했다. 다시 파티가 열리면서 새로운 물꼬가 트였다.  댄스 클럽 회장을 맡고 회원 영입에 관심이 커졌다. 회장답게 춤도 잘 추어야 한다. 다시 시작한 댄스 수업에서 춤 동작의 원리도 깨닫게 된다. 연륜이 깊어졌는지 아내와 다툴 일도 없고 체인징 파트너도 자유로웠다. 파티에서는 수업에서 배운 루틴을 따르기 힘들다. 혼잡한 공간을 피해 가며 파트너의 기량에 맞춰 피겨를 선택하는 것이 남성의 몫이다. 리드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파티 댄스의 묘미이기도 하다.

 커플 댄스이므로 함께 배우고 연습한다. 무도회에서 시작과 끝에는 자신의 파트너와 춤을 추지만, 그 이외에는 마음에 맞는 다른 분들과 춤으로 교감하니 서로 자유 시간인 셈이다. 릴레이 댄스 때에는 남녀가 따로 줄을 서서 순서대로 파트너가 된다. 자유 시간을 강제로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기량을 높이는 원동력이며 낯선 파트너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게도 한다. 댄스파티에 ‘따로 함께’보다는 ‘함께 따로’라는 말이 여러 면에서 좋다. 따로 다니다가 우연히 파티장에서 커플이 만나면 그런 낭패도 없으리라.

 출가한 아이들이 놀러 올 것 같지 않은 휴일에는 원하는 과목을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는 영국문화원 영어수업도 좋다. 먼 곳에서 오고 가는 시간은 자유시간을 더 많이 주기도 한다. 수업을 위해 지방에서 오기도 한다. 배우자가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은 서로에게 자유 시간이다.

 웃음은 마음을 열게 한다. ‘삼식이’는 알죠? ‘종간나 세끼’도 있어요. 쫑긋했다. 하루 세끼 ‘삼식이’에 종종 간식까지 챙긴다는 '종간나 세끼'라는 우스갯말이었다. 시대를 반영하는 블랙 유머일수록 빠르게 진화한다. 어떻게 그런 상스러운 말을 여성이 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 남편과 가족을 돌보느라 익숙했던 부인일수록 공감하는 블랙 유머라고나 할까. 아내에게 그런 말 들어봤냐 물었던 나만 몰랐다.

 아내가 가끔은 ‘종간나 세끼’라고 머릿속에서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아내의 귀가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나가거나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는 내가 ‘거안 실업 사장’은 아니지만 자유 시간을 좇는 방랑자 같았다. ‘삼식이’도 ‘종간나 세끼’의 간식도 멀리하여 굵어진 허리둘레라도 다잡아가야겠다. 왠지 우리 집은 거꾸로인 거 같지만 서로의 자유 시간에는 그다지 문제는 없어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