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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Sep 14. 2023

카나페 와인 & 김치찌개

아내의 빈 곳 2

 동네 영어회화반에서 만난 분이 셰프였다. 영어 말하기 훈련에 가장  좋은 일은 생생한 경험이나 좋아하는 취미부터 말해보는 일이다.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아내를 돌보기 위해 그는 1년여 동안 셰프학교에서 요리를 배웠다. 가족이 캐나다에 있는 기러기 아빠로서의 애환도 들었다. 캐나다에 정착하는 사람들에게 요리등 직업교육을 시키는 데 빨리 취업하여 세금 내라는 취지란다. 1년 코스 중 10개월은 이론 실습을, 마지막은 현장에서 일하는 코업 200시간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다고 했다.

 점심식사 겸 나의 집에서 함께 요리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내가 집에 있다면 말을 꺼낼 일도 없겠지만, 마침 열흘 남짓 해외여행을 떠나 있던 차였다. 파스타에 캐비어를 곁들인 나만의 레시피를 해보려던 참이라는 것을 셰프도 잘 알고 있다. 캐비어를 사러 가기 전에 두 홀아비는 우선 어떤 음식재료들이 집에 있는지 냉장고부터 털기로 했다.

 세프가 와인 한 병을 갖고 와서는 와인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어놓은 것으로도 디캔딩(decanding)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홀로 해 먹는 데 익숙한 세프는 "김치찌개는 할 줄 아느냐"라고 물었다. 오래전 김치를 넣고 끓인 후 설탕을 넣었다가 실패한 이후 요리는 포기했다고 했다.

 딤채에서 김치통을 보여주었는데도 그는 고춧가루와 마늘부터 찾았다. 돼지고기를 찾지 못해 소고기를 쾌속해동시키고 통(tong)과 가위를 찾았다. 통은 집게를 말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안보였다. 통(tong)이라니 영어공부시간이기도 한 것인가. 아내도 없는 마당에 찾는 일은 나의 일이었다. 젓가락으로 집어도 될 일인데 하면서 한참만에 찾아냈지만 결국 마늘은 못 찾았다. 캐나다에서 요리는 가드닝처럼 중요한 취미라면서 그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도했다. 간장 양파도 준비했다. 김치통 가져오느냐고 또 물었지만 아직 멀었다. 

 돼지고기대신 소고기이므로 참기름을 넣고, 고기를 약간 익힌 후 뒤집을 것과,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끓여 스키밍(skimming) 국자로 기름과 불순물의 거품을 걷어내었다. 그때를 놓치면 불순물들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끓는 물속에서 동화되어버리고 만다니 그럴법하게 들렸다. 고기를 더 익히고 난 후에야 김치를 넉넉히 썰어 넣고 간장과 양파를 넣는다. 내가 생각한 순서와 정반대였다. 요리는 순서와 타이밍이 중요한 것임을 절감했다. 

 김치찌개가 익는 동안 캐나다로 떠나기 전 한국 요리학원 수료할 때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칼 잡는 법이 틀렸다는 것을 수료하는 날 들었다고 했다. 칼등을 눌러 잡는 것이 아니라 골프채 그립 잡듯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칼을 감싸야 칼이 튕겨나가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오래전 늙은 호박껍질을 벗기며 손을 다친 일도 생각났고, 막내딸아이가 칼이 빗나가 깊이 베인 상처도 떠올랐다. 캐나다에서는 칼을 쥔 요리사의 뒤를 지나가는 때에는 반드시 "비하인드(behind)"라고 말하며 지나간다고 했다. 칼을 든 손이 움직이다가 사고를 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청양고추 한 개도 송송 썰어놓으면서, 안에서 밖으로 밀어 자르는 게 원칙이라며 왼손 너클 nuckle에 칼을 대고 송송송 라운딩모션을 보여주었다. 칼을 놓쳤을 때 바로 피하는 게 우선이라는데 무슨 뜻인지 질문할 틈도 없다. 어깨와 손에 힘을 주고 탁탁 자르던 나의 방식과 모두 거꾸로인 점에 당황한 탓이리라. 무슨 일이든지 점문가에게 듣는 게 도움이 된다.

 식빵으로 카나페를 만들기로 했다. 파티 리셉션 때처럼 카나페는 와인에 어울릴 선택인 듯싶었다. 댄스파티 리셉션 때 앙증맞은 인 안줏거리인 카나페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반가운 눈치다. 토스트 테두리를 잘라내 버리고, 작은 정사각형으로 자르고 얇게 세로로도 잘랐다. 프라이팬에 구워 눅눅한 기운을 없애야 한다. 냉동새우도 껍질을 벗겨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서 적당히 익히고  마이야르(Maillard) 현상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단백질의 갈변현상과 굳는 정도를 감안한 최적의 새우를 구워냈다. 굽는 동안 지켜보며 알맞게 뒤집었다. 워크 스테이션을 정리하느라 수시로 설거지를 하는 것도 요리학교의 테스트항목이라고 했다. 카나페가 눅눅(소기soggy)해져서는 안 되므로 맨 마지막에 요리해 낸다. 치즈를 얹고 연어에 흰색의 타르타르소스와 케이퍼를 쓰려는데 없으므로 마요네즈에 블루베리를 얹었다.

 맛나게 먹는 중에 다진 마늘인 줄 알고 넣었던 것이 냉동두부인 것을 알고 크게 웃었는데, 아마 다진 마늘을 제대로 넣었더라면 둘이 먹다 죽어도 모를 김치찌개였다. 양념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필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어 요리비법을 터득한 것처럼 기뻤다.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찌개에 또 고춧가루와 마늘부터 찾던 일, 불순물거품을 없애야 깔끔한 맛이 난다거나, 카나페에 쓰는 마요네즈는 접착제처럼 쓰인다는 나의 말에 동의해 준 셰프가 고마웠다.

 냉동 불고기거리를 두툼하게 구워냈고 밥대신 식빵을 베이스로 한 카나페로 먹는 김치찌개는 맛이 그만이었다. 요리의 원리를 터득하게 해 준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셰프와 담소하면서, 그가 나의 친구인 고(故) 서신부님도 잘 알고 있어 반가웠다. 최고의 '군인 적성(適性)'으로 이름을 날렸다던 서신부의 사관 생도시절 이야기도 들어 감동이었다.

  김치찌개 만들 자신감이 생겼고 다양한 카나페에 캐비어까지 올린 멋진 식탁을 만들어 아내의 귀환을 기념해 줄 생각이다. 아내의 빈 곳을 친구 셰프가 훌륭하게 메꾸어주고 있었다. 아내가 오기 전 냉장고를 한번 더 털어내기로 약속했다. 카나페에 캐비어를 모양까지 낼 작정이기도 하고 양념통이나 조리기구 위치를 잘 알게 될 것이다. 이미 한 개의 레시피는 훌륭하게 해 낸 셈이었다. 이름하여 '카나페 와인 & 김치찌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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