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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Sep 08. 2023

Oh my fit!

아내의 빈 곳 1

 옷을 사러 간 건 아니었다. 글쓰기 앱인 '브런치 스토리'에서 안내한 대로 2022년도 대상 수상자 10 인의 책전시회를 보는 게 목적이었다. 잠실 롯데월드 쇼핑몰 4층으로 향하면서 눈에 띈 매장이 유니클로였다. 한 때 쇼핑 보이콧 대상이기도 했던 곳이지 않았던가. 점포위치는 눈에 확 띄는 곳이었다. 유니(uni)라는 뜻대로 남녀공용이지 않을까 물었더니 남성의류는 2층에 따로 있다. 내려올 때 들러보자. 홀로 다니면 아무 때고 샛길로 빠질 수도 있고, 종종 재미있는 뭔가가 있다. 호기심이란 게 늘 그렇구나 싶다.

 서점이 맞긴 하는데  어린이용품도 있고 직소퍼즐도 보았고 베이커리 겸 커피숍인 아티제도 있다. 브런치 수상작을 둘러보는 곳은 넓지 않다. 여성 시니어 작가의 수상 산문집을 뒤적이며 용기를 얻었다. 오히려 같은 공간에 있는 '아크 앤'이 궁금했다. 커피숍에 앉아 빵으로 요기하면서 열린 공간을 둘러보니 요즘 트렌드는 복합공간이구나 하고 끄덕여졌다.  '아크 앤'에 붙어있는 옆 가게 '데스커'와는 매장의 경계도 없어 자연스럽게 돌아본다. 책상높낮이가 조절되는 모션책상(Motion Desk)이 사고 싶을 정도였다. 외근이 많은 영업직에서 컴퓨터 등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핫 데스크(Hot Desk)' 같은 기능으로 거실에서도 사용하기에 좋아 보였다. 영어회화 모임에서 모션 데스크를 소개했더니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 남자는 이미 사용 중이고 좋다고 열을 올리고 있는 중에 원어민 강사는 어드져스터블 하이트 테이블(adjustable height table)이라고 고쳐준다. 처음 모션 데스크라고 들었던 때 콩글리시 같은 느낌이 딱 맞았다. 알기 쉬우라고 그렇게 이름 붙인 걸까. 말에도 통용되는 관습 같은 게 있어 자유롭게 일탈해서는 어색하다.

 폭염의 날씨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얇은 흰색바지가 어울릴 것 같았다. 여름 골프장에서는 흰색바지와 삼색줄이 선명한 흰 벨트를 유니폼처럼 즐겨 입었는데 골프장에 가지 않으니 흰 바지를 입을 일이 없다. 연두색과 흰색이 시원해 보이는 깃이 있는 옷이 눈에 띄었다. 가족 단톡방에 의견을 구하려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다들 바쁜지 답이 없다.

 수십여 년 동안 아내와 두 딸이 골라주는 옷만 입었다. 여인 셋 중 한 사람만 반대해도 입지 않게 되면서 옷 쇼핑의 자유를 완전히 잃었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어딜 찾아가기 힘든 현실과 같은 기분이었다. 쇼핑몰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단톡에는 열어본 흔적도 없다. 몇만 원짜리 옷 하나에 더 기다릴 수도 없다. 할인행사 품목이기도 했다. 구입 결단을 감행했다. 흰색 운동화에도 어울려 보인다. 스스로 결정한 게 대견스러웠다.

 집에 도착해 다시 입어보고 거울을 보는데 양 어깨선이 축 늘어졌고 겨드랑이 부분이 부자유스럽다. 역시 옷 사는 일은 서툴렀나? 하며 아내의 반응을 살폈다. 아내는 덤덤했다. 위로인지는 몰라도 그런 스타일이 젊은 사람들의 패션이라고 했다. 마치 '역시 내감각이 옳았어'하는 말로 들렸다. 흰 바지에 어울릴 만큼 밝은 연두색이 굴곡져있어 시원해 보였다. 티셔츠에 단추를 열어놓고 다녀도 좋고, 청바지와 입어도 좋을 것이라고 딸이 조언도 해주었다.

 센스 있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벌써 서넛 되었다. 남 보기도 시원하다니 내가 옳은 선택을 했다. 흰 바지만 몇 개인데 골프 칠 때만 입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억울했던가. 흰 바지와 같이 입고 내 안의 나는 벌써 '쇼핑의 자유를 찾은 기념' 유니폼처럼 여긴다. 손빨래도 직접해 널고 마르면 또 입는다. 다림질도 해본다. 오 마이 갓! 그동안 얼마나 나를 잊고 살았나 싶었다. 오 마이 핏! 나답게 입고 살리라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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