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비카리는 소설『브론테 이야기』에서 브론테 자녀들의 재능 그리고 삶과 죽음의 모습을 들려준다. 브론테가(家)에 엄습한 죽음이 처연했음을 본다. 『제인 에어』의 샬롯 브론테와 자매들, 그리고 아버지 패트릭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보내고 홀로 남아 브론테가(家)의 숙명을 돌아보고 있다. 하워드의 폭풍의 언덕과 ‘브론테 퍼스니지 뮤지엄’이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있는 이유이다.
아일랜드 출신 성직자인 패트릭 브론테는 영국 남부의 두 칸짜리 오두막에서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교회에서 교사를 맡는 행운으로 겨우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학식 있는 여성이었던 아내 마리아를 만나 여섯 자녀를 둔 브론테가(家)의 일상은 성직자 가족인 점 외에는 마을 주민들과 비슷했다. 1820년 패트릭이 요크셔 주 하워드에서 종신직을 얻고 가족은 거친 황야가 내려다보이는 사제관으로 이주하였다. 마차에서 내려 눈이 쌓인 언덕길을 아이들은 뛰어 올라갔다. 어린 두 딸은 어머니의 양손을 잡고 막내는 아버지에게 안겨 교회까지 올랐다. 2층집에 부모와 여섯 형제, 그리고 붙박이 하인 두 명까지 총 열 명이 복닥거렸다. 칠흑 같은 밤에는 다양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형제들은 저마다 기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깨알같이 기록하였다. 세 자매는 함께 작은 문집을 만들며 놀았다. 지어낸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대며 서로 용기와 영감을 불어넣었다. 글쓰기를 스스로 가르치며 하워드의 길고 긴 황야의 겨울밤을 그렇게 지냈다.
몸이 약한 아내는 이주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패트릭은 어린 자녀들이 엄마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도록 성직자 다운 평안함으로 위로하였다. 결혼하지 않은 이모가 아이들을 돌보며 가르쳤다. 자매들은 입주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작가를 꿈꾸었다. 외아들 브란웰은 세 자매 그림을 남긴 화가 지망생이었다. 자신도 그려 넣었으나 말년에 자신의 얼굴은 지웠다. 브론테의 자녀들은 교회 묘지에 묻히는 죽음을 지척에서 목도했다. 젊은 나이에도 폐결핵 같은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일은 재능 있는 브론테 자매들만이 아니었다.
세 자매는 기숙학교의 숨 막힐 듯한 규율이 싫었다. 학교에서 추위와 질병에 고통을 겪는 시절들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 패트릭은 이미 열 살 즈음의 두 아이를 잃었다. 기숙학교에서 병든 자녀들을 뒤늦게 집으로 돌아오게 한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몇 년간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브란웰은 유부녀와의 잘못된 사랑에 폐인이 되어갔고 성직자인 페트릭은 절망조차 할 수 없었다.
『제인 에어』는 패트릭이 안과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던 그날부터 집필된 책이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로서는 한계를 아는 샬롯이 '커러 벨'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발간한 이후 형제자매들은 모두 '벨'이라는 성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곧 에밀리와 막내 앤도 책을 발간할 것이라는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패트릭은 아들 브란웰이 마약 진통제와 알코올 중독자로 죽는 모습에 허탈했다. 그동안 6형제와 패트릭을 돌보던 엘리자베스 이모마저 죽었다.
강인한 성격인 에밀리는 하워드의 들판을 애견 키퍼와 함께 산책하면서 소설을 구상하였다. 생생한 욕망과 악마 같은 잔인함이 깃든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어느 날 키퍼는 에밀리의 원고를 심하게 손상한 죄로 에밀리로부터 흠씬 얻어맞았다. 침울한 키퍼의 초상은 에밀리가 그렸다. 에밀리에게마저 운명같이 다가온 죽음을 패트릭은 지켜보아야만 했다. 더 이상의 시련은 없게 해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의 장례미사는 마을 사람들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잦은 기침으로 막내 앤은 이미 죽음을 예감했다. 막내딸 앤에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대 곁을 지켜주는 일뿐이었다.『아그네스 그레이』의 작가 앤 브론테는 언니들처럼 걸작을 펴내고 싶었다. 앤은 머릿속에 써야 할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아버지에게 토로하며 죽을 수 없다고 울었다. 샬롯은 막냇동생을 위해 그녀가 동경하던 요크셔 북부 해안가 스카보로 마을로 데려갔으나 보름 남짓 머무는 게 전부였다. 29세가 되던 봄, 앤은 가족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그곳에 묻혔다.
브론테가(家)의 운명은 혹독했다. 신의 뜻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샬롯마저 아버지를 돕던 수도성직자인 벨 니콜스와 결혼하고 임신하지만 1854년 39세 나이에 패트릭의 곁을 떠났다. 샬롯을 사제관 옆 교회 묘지에 묻고 돌아온 패트릭은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지 모른다. 사제관에서 84세로 임종할 때까지 어떻게 견뎌냈을지 상상해 본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성공회 신부이기도 했던 조너선 스위프트가 100여 년 전에 출간한『걸리버 여행기』를 잘 알고 있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운명으로 태어난 그곳 섬사람 러그지안처럼 ‘죽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이야기를 수없이 떠올렸으리라.
그림과 글쓰기의 재능은 어디서 오는가? 브론테 가문의 특별한 재능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림과 글쓰기를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재능은 신에게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신은 브론테 가문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후대에 말해두고 싶었나 보다.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요, 인간에게는 견뎌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