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 영화 '그린 북'

by 이용만




토니에게 편지쓰는 법을 설명하는 장면


영화 ‘그린 북’

영화는 1960년대 미국 남부지방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타이틀은 ‘그린 북’이란 여행 안내 책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역사적 사건들을 먼저 살펴보자.

1865년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났어도 차별은 계속되었다. 남부 여러 장소를 여행해야만 하는 흑인에게는 먹고 잘 곳이 여전히 불안했다. 흑인 집배원 ‘빅터 휴고 그린’은 흑인에게 호의적인 숙소,식당, 주유소를 기록하므로서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린 북’이라고 발간하였다. 1930년대 흑인에게는 필수적인 여행 가이드북으로 널리 쓰여지게 된 책이었다.

당시 남부 사회는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점점 더 불거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1962년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발생한 ‘로자 파크스 사건’이 발생하였다. 흑인 여성 로자는 버스에서 흑인 전용칸으로 옮기기를 거부하여 체포되었다. 사건은 흑백 인종차별에 대한 미국 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어서 마틴 루터 킹목사의 암살까지 크고 작은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영화감독은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관습에 따른 편견과 선입견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편견을 깨고, 다름을 이해하는 여정’을 통해 성숙해가는 보편적 인류애를 표현한다. 그런데 주인공에 대한 일반적인 설정이 예상밖이다. 즉 백인 운전사가 흑인에게 고용되어 함께 여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천재 피아니스트 ‘셜리’박사는 40대 초반의 흑인이다. 박사는 백인 ‘떠벌이 토니’를 고용하여 남부 공연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남부투어가 성공해야 전국적인 명성에 걸맞는 일이다. 셜리와 그의 재즈밴드는 위험한 두달 간의 여정을 위해 추천받은 ‘떠벌이 토니’를 고용한다. 하지만 이태리계 백인인 토니 역시 흑인에게 심한 편견을 갖고 있다. 자칭 ‘떠버리’라는 토니에게 박사는 “떠버리로 불리는 게 자랑이예요?”라고 힐난섞인 질문을 던지자, 토니는 “이번 운전일도 그렇게 땄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다.

남부 여행 중 켄터키주에 들어서며 프라이드치킨 가게를 발견하고, 토니는 ‘다시 없을 기회’라며 사 들고 온다. 포크없이 못 먹는다는 셜리에게 토니는 “개소리” 라고 내지르며 박사를 압박한다. 백인보다도 훨씬 더 나은 교육을 받았지만, 고상한 흑인 셜리박사는 정체성에 늘 우울하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이방인같은 셜리에 대해 경악하는 남부 흑인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투어차량의 라디에이터가 과열되어 들판의 도로에 멈춰선 것이다. 백인 토니가 분주히 물을 보충하는 동안, 쫘악 빼 입은 흑인 셜리는 차 밖에서 휴식을 취한다. 도로 건너편 흑인 노동자들이 어안이 벙벙한 채 일손을 멈춘다. 서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남부 깊숙히 들어갈수록 차별은 더욱 심해가는데, 두 사람의 대응은 사뭇 다르다. 토니는 공연일정에 집중할 뿐이지만, 셜리는 정체성 혼란에 생각이 깊어지며 괴로워한다. 백인사회는 셜리에게 프라이드 치킨을 일부러 제안하며, 마당에 있는 흑인전용 화장실을 권한다. 물론 관습은 법령 하나로 쉽게 바꿔질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 셜리는 공연을 연기하고 자신의 숙소 화장실까지 다녀 오겠다고 주장한다. 토니는 “이런 일로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온 들판이 화장실인데..”라고 툴툴댄다. 그래도 토니는 셜리의 품위와 인내심에 내심 존경심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박사도 토니가 부인에게 품위있고 사랑스러운 글을 쓸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돕는다.


미시시피주 잭슨을 지나면서 여행은 대단원을 치닫는다. 교통경찰이 어디선가 제보를 받았는지 흑인의 야간 통행을 검문한다. “왜 백인인 네가 흑인을 위해 운전하는가?”라고 묻는 중에 토니가 이태리 사람인 것을 알아 챈 경찰이 “하긴 네 놈도 반은 검둥이니까” 라는 말에 토니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날린다. 경찰을 향해 폭력을 행사한 댓가는 유치장에 갇히는 것 뿐이다. 1930년대 남부 수 천 개의 도시에서 ‘일몰이후 흑인 통행금지’를 선포하였다. 30여 년이 더 흘렀지만 여전히 흑인은 해가 진 뒤에 돌아 다녀서는 안 되었다.

변호사를 부르겠다는 셜리에게 돌아 오는 것은 경찰들의 빈정거림 뿐, 언제 풀려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불현듯 “변호사 불러달라는 말이 맞는 말이긴 해요”라고 중얼거리며 경찰들도 혼란스럽다. ‘명문화된 법과 내키지 않는 관습법’이 흑백 인종간 내재되어 충돌하는 당시 사회상을 잘 드러낸다.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연방군을 투입한다고 윽박지르고 나서야 둘은 풀려난다.

툭하면 성질대로 주먹부터 날리는 토니에게 셜리는 충고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안 된다고 하면서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긴다’는 교훈을 넌지시 던진다. 하지만 토니의 자존심은 기어코 자신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퍼붓는다.

“흑인인 당신이 백인인 나보다 더 백인스럽다”는 말에 셜리는 온몸으로 전율한다. 폭우가 퍼 붓는 데에도 차문을 박차고 나와 외친다.

“콘서트에서는 박수를 받겠지만, 연주가 끝나면 다시 흑인일 뿐인 나를 백인스럽다고?”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으면.. 나는 대체 뭐요?” 라고 울분을 토한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드디어 대반전이 벌어진다. 자동차는 VIP구역에 주차했지만 흑인 셜리는 창고에서 대기해야 한다. 식사는 근처 흑인 식당을 이용하거나 대기실에서 따로 하라 한다. 하지만 셜리는 이제 백인전통을 고수하겠다는 식당에서 자신이 결정해야 할 일을 안다. 마침내 셜리 박사는 “내가 식사를 못 해야 한다면, 나의 연주도 없다”고 선언한다. 놀란 지배인이 토니를 통해 회유해보지만, 토니는 박사를 말 없이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흑인식당으로 향한다.

흑인전용식당에 느닷없이 들어온 백인 토니와 빼입은 흑인 셜리는 충분히 시선을 끌 만하다.

셜리는 무대에 올라 비로소 꿈꾸던 쇼팽을 환호속에 연주한다. 둘은 제 대로 할 일을 마무리지은 뿌듯함을 만끽하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셜리 재즈밴드의 백인 첼리스트가 토니에게 독백처럼 말을 건넨다.

“이런 투어를 왜 하냐고 물었죠?”

“천재성만으론 부족하거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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