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 타이틀이 주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6.25 사변, 한국전쟁과 다른 어감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에서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적 기초가 없었다면 남한은 총 한번 못 쏘고 북한, 중국, 소련에 의해 적화통일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박 회장은 친소(親疎)가 아니라 이념으로 투표해야 한다고 했다. 정확한 지적에 공감한다. 그만큼 좌편향이 우려되는 국가상황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늘어나는 것도 민망했다. 송현동 부지에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라는 말을 빼내려는 정치세력은 북한도 민주주의라는 간교한 생각을 국민에게 끊임없이 심어왔다. 말없는 보수들은 오랫동안 방관한 채 암세포처럼 커가는 좌익세력을 인지하지 못했다. 보다 못해 크리스천 연합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건국전쟁'이다.
'건국전쟁'은 얼마 전 잠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서울의 봄'과 판이했다. '서울의 봄' 제작 감독자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허구일 수도 있다는 해괴한 말로 사실관계를 뒤섞은 영화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미디어는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바른 생각을 전해야 한다. 지루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영화에 담았다. 픽션으로 흥행을 올리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던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의 결단이 돋보였다.
영화는 남북한의 야간 전등 불빛이 대조를 이루는 사진으로 시작한다. 위성에서 찍은 휴전선 이남은 휘황하고 이북은 시커멓다. 체제와 지도자가 누구였는가를 웅변하고 있었다.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을 하야했던 선각자에 대한 인터뷰를 서술형식으로 보여주었다. 야당 후보자인 조병옥의 서거로 대통령은 이승만으로 확정되었다. 부통령을 뽑는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4.19 청년들이 국가에 물었고, 이승만은 국민 앞에 하야로 답했다. 권력욕은 없었다. 선각자는 국민에게 자유민주를 제대로 가르쳐 낸 그것으로 만족했다. 공과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DMZ를 서(西)에서 동(東)으로 구간을 이어 걷는다. 휴전 70년이 던지는 역사적, 환경적 메시지를 몸으로 느끼기 위함이다. 이 지구상에 자유와 평화의 산교육장으로서 '한반도 DMZ 70년' 만한 곳이 없다. 평화의 댐 구간을 지나며 일행을 위해 인문해설도 맡았다. 중공군 오랑캐를 물리쳐 '파로호'로 개명한 이승만대통령을 떠올렸다. 휴전협정조인을 목전에 두고 파로호 전투는 치열했다. 27,000명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의 자유에 대한 신념과 막바지 휴전회담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념은 이미 잊은 채 생사의 전투만 있음을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자유를 위해 왜 죽기로 싸워야 하는지를 어린 학도병들도 아는 듯 산화했다. '건국전쟁' 영화가 상영관도 적고 포스터도 없다는 지경까지 온 것은 전쟁을 보고 겪지 않았다고 무심한 탓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생애를 걸고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분임을 반세기가 넘어서야 실감한다.
1950.6.25 새벽 남침이 있기 5년 전 미소공동위원회 때부터 스탈린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당연시했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편의상 38선을 남북으로 나누었다. 소련은 곧 남한 측 철도와 도로를 끊었고 철원 민통선 안에 노동당사라는 이념의 선전장을 두었다. 전쟁은 시작은 있지만 끝나지 않는다. 1953.3 스탈린사망, 아이젠하워의 6.25 종전 선거공약등의 세계정세 변화로 53.4.16 회담이 재개되고 7월 22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남의 힘으로 겨우 독립한 대한민국은 이념을 다룰 형편도 아닌 절대 빈곤 사회였다. 외교만이 힘없는 국가의 미래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승만의 기본 이념은 반공과 자유민주주의였으며, 남한만이라도 민주주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김구가 추구한 허황한 통일 정부 수립과 대립되었다. 반공포로 석방은 한국의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의 침략에 대한 분명한 억지력이자 민주 동맹국을 방어하겠다는 신호였다. 외교의 힘을 활용한 선각자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DMZ 70년이라는 반쪽짜리 평화마저 위태했을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한반도의 이념적, 지정학적 역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모델로 부상하는 것을 촉진했다. 이승만의 사상과 정책은 한반도와 더 넓은 지역의 정치, 경제, 안보 역학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국전쟁을 이끈 이승만 대통령은 당신이 만든 자유민주주의라는 캔버스에 직관과 창의력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선각자였다. 건국전쟁 영화를 통해 '전쟁은 예술이다'라는 낯선 말이 다소나마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