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만 Jul 17. 2023

역 사열

이런. 결항이라고? 인천공항 폴란드행 탑승구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곧 탑승하면 바르샤바를 경유하고 스웨덴 스톡홀름 도착까지 15시간쯤 걸릴 터였다.  딸을 보러 간다. 느닷없이 “출항이 지연되고 있으며 추후 여정을 확인 중입니다”라는 방송이 남의 이야기처럼 허공을 울리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직원들 모습에서 일이 꼬이고 있는가 싶었다. 오늘 뜰 수 있는지? 새가 부딪쳐 조종석 유리창이 깨졌는지 아직… 깨진 건지 금만 간 건지 궁금한데 공식적으로는 항공기 결함이라고만 말해준다. 비행기에 부딪치는 새가 무섭다. 안전을 위해 대포를 허공에 쏘는 데 이미 이 방식으로는 새를 쫓을 수 없다. 요즘은 저격수가 준비되어 직접 쏘아 떨어뜨린다고도 했다.

 항공 대란이라던데 운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었다. 오랫동안 일이 없던 공항에서는 부품과 인력이 역부족이었나 보다. 법대로 해야 했다. 6시간 이상 이륙을 연기할 수 없다. ‘결항’이 확정되었고 구입한 면세품부터 환불하라고 하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내일 다시 가는 데도 환불해야 해? 면세품에 관한 법이 그러했다. 다른 항공편으로 대체되더라도 다른 터미널로 이동해야 하는 등 변수가 많아서다. 일단 공항 밖으로 나가야 하며 호텔에서 대기하란다. 우선 도착지 호텔부터 취소했다.

 출국하듯 39 탑승구를 지나고는 국내 입국 하듯이 수하물도 찾았다. ‘역사열’이라고 쓴 스티커를 견장처럼 어깨에 붙였다.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거꾸로 줄지어 나선다는 표식이다. ‘역 사열’이란 말이 새삼 재미있고 궁금했지만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왕의 행차도 아닌 ‘역 사열’이 거창했다. 여직원들은 짐을 찾은 승객 30여 명씩을 익숙한 듯 앞장서 인솔했다. 모두들 스티커를 보이며 휴대품 신고서 제출 없이 당당하게 나왔다. 빨간색 버스가 대기해 있었고 일행은 운서역(驛) 앞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쉬엄쉬엄 쉬어가면 건강에는 좋을 것이다. 사실 여행이란 게 준비과정이 신경 쓰이고 긴장될 뿐, 일단 떠나면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출장 가는 중이라던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하루 늦게 출발하니 나쁠 것도 없다고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쉬엄쉬엄 가는 기분이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지 않느냐. 그도 그렇다고 씩 웃었다. 이튿날 아침 모닝 콜로 6시 30분까지 버스에 탑승하라고 알린다. 미리 알려주지 이게 뭐냐. 군대 내무반인가 5분 대기조 같다. 왠지 비상 점호나 사열받는 모양새다. 

 이동하면서 활주로 쪽 항공기 조종석을 자세히 보았다. 비행기의 전면에는 창이 4개인데 공기의 저항을 줄이려는지 볼록한 W 자(字) 모양이다. 동체에 비해 자동차 앞 유리만큼 작아 놀라웠다. 왼쪽 두 번째 창문에만 금속 프레임을 덧대었다. 비행기가 왼쪽 눈에 흰색 안대를 끼고 있는 듯했다. 안대를 끼고 있는 외눈박이 비행기라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인천공항을 떠나는 데 직원이 “바르샤바에서 환승 편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라며 다시 주의를 준다. 우선 떠나는 게 급선무였다.

 경유지인 폴란드 공항에 도착하여 환승하려는데 현지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2백여 명 역사열 승객들은 행선지가 제각각이었다. 일일이 승객들의 항공편을 연결하기에 급급했다. 비어있는 좌석이 있는 경우에만 탑승권인 보딩패스가 쥐어졌다. 스태프들이 안내장을 나눠준다. ‘항공 결항-지연 보상받는 방법(항공 보상 규정)’이라고 적혀있다. 받아 들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분위기다. 직원으로부터 통보받은 티켓을 따질 일도 아니었다. 택시, 식당, 호텔 바우처 묶음을 바삐 내어준다. 'Yes'만 연발하고 그저 마음속으로 하필이면 폴란드 경유였나 싶었다. 아마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처럼 독일 군인이 스탬프를 쾅하고 찍으면 생사가 정해져서였을까. 하루를 더 묵어야 했고 수하물을 찾아 다시 ‘역 사열’을 했다. 두 번째 역사열이다. 전 날 해본 일이라 쉬웠다.

 여정에서 만나는 이들의 사정들이 다양했다. 아침 보딩 수속 때  50대 여인은 우크라이나를 떠나 'USA'로 간다고 했다. “오, 우크라이나! 푸틴 나쁜 놈” 하니 그녀는 양손으로 후추통을 갈아버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침묵 속에 그녀의 얼굴과 양손에 증오가 가득했다. 미국에서 산다는 브라더(brother)가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왜 홀로 떠나는지를 더 물을 수 없다. 시선을 둘 곳 없어 내 짐가방을 내려보았다. 분실 걱정에 ‘도착지 Stockholm’이라고 큼직하게 붙여 놓았던 게 부끄러웠다. 그녀는 가족을 잃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행운을 빈다고 말해주었다. 비행기는 또 1시간 연기되고 게이트도 수시로 바뀌었다. 일정이 어긋났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잖는가. 오히려 폴란드에서 하루 더 머물면 아우슈비츠까지 가보고 싶었다.

 코로나19 후유증일까. 절반은 죽을 각오로 여행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넉 달 전 코비드 양성 확진을 받은 바 있어 입국 시 PCR 검사 양성이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입원치료에 대비하여 영문으로 된 증명과 여행자 보험도 들었다. 보험내용 중에 시신 운구 운운하던 부분도 스쳐 읽었다. 다시는 티켓 금액에 연연하지 말자거나 직항 아닌 곳에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꼭 그래야 할 것도 아니다. 일정에 큰 구애를 받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번 여행이 무모했나? 딸을 만나보러 가기 위한 여행이었고 준비도 꽤나 철저히 했다. 미루지 않았던 것도 잘한 일로 치자.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실감하고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거꾸로 가는 줄에 어쩔 수 없이 서기도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두 번이나 겪은 ‘역 사열’은 즐거운 추억이었다. 이틀 뒤 딸을 만나 포옹이 길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여행의 시작일 뿐이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