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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Jul 15. 2023

선마을 가는 길

 강원도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은 치유의 숲으로 힐링을 목적을 찾는 곳이다. 마침 손녀를 돌보는 아내에게는 휴식이 필요했고 딸네 부부는 효도와 여행을 겸하고 싶은 차였다. 몇 년 전 다녀온 적이 있는 나는 그곳이 젊은이들에게는 얼마나 심심할지를 말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노인과 암 환자들이 많이 온다는 풍문을 들어서 일 것이다. 가는 길에 손녀가 좋아할 만한  알파카를 구경도 하고, 들러 볼 맛집도 이미 정해 놓았다. 알파카는 손바닥에 놓인 먹이를 얌전히 먹는 순한 동물이지만, 먹이를 담은 종이컵 째 뺏어 제 주둥이에 걸고는 도망간다.  알파카 중에도 별난 놈들이 간혹 있어 침을 뱉는 녀석도 있는데, 침이 멀리까지 튀니 근처에 갈 엄두도 안 든다. 침을 뱉다니 인간만 뱉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은 새롭다. 한국판 미슐랭 격인 ‘블루리본’이 많이 달린 ‘길매’라는 음식점을 스마트폰에서 리뷰를 읽고 찾는다. 메뉴는 두부전골이었다. 잣을 듬뿍 넣은 두부는 부드러웠다. 간장종지에도 잣이 떠 있다. 정성이 가득한 나물에 황태구이까지 덤이다. 동홍천 IC 근처 조금 외진 곳임에도 훌륭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밖을 둘러보다 팻말의 글이 눈에 확 뜨였다. “모든 메뉴는 한식 밑반찬과 함께 준비되므로, 반드시 2인 이상 주문해야 합니다. 막국수 추가 1인분은  안됩니다. 추가 1인분마저 안된다니 언뜻 매정하다 싶어, 또박또박 다시 읽으니 식당 주인의 자부심으로도 읽혔다.

 시골과 도심의 물리적 경계는 허물어진 지 오래다. 시골 식당의 소소한 메뉴에서도 사회관계망과 스마트폰의 위력을 실감하며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식당 메뉴에 등급이 매겨지는 ‘블루리본’ 같은 시스템이 세대 간의 장벽으로 다가왔다. 사회관계망에 빠르게 적응하길 원하는 지금 스마트폰을 잊고자 선마을로 향한다. 쳇 지피티라는 AI가 쓰나미처럼 오고 있다.   

 선마을 주차장에서 숙소를 배정받을 곳까지는 언덕을 걸어 올라야 한다. 이곳의 철학이 ‘불편함’인 것도 알고 있으므로 묵묵히 오른다. 그나마 짐가방들을 조그만 화물 카트로 운반해 주어 다행이다. (도로 위에 하얀 실오라기 같은 뱀인지 지렁이인지 모를 한 마리가 선명하게 꿈틀대고 있다. 그들의 터전에 침입자가 된 느낌이다.) 숨을 크게 몰아쉬며 웰컴센터에 도착해서 키를 받아 들고, 와이파이가 잡히는 유일한 곳이 이곳뿐인지 되물었다. 식당과 편의시설 맵을 받고 설명을 듣고는 있지만, 웰컴센터 3층 카페마저 설마 통신이 안 잡힐까 하는 의구심뿐이었다.

 숙소에 TV와 냉장고는 없다. 희뿌연 하늘이 보이는 천정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저녁나절 빛으로는 스위치를 켜도 거실은 흐릿했다. 평소 LED 조명에 익숙한 탓이다. 천장에 달린 환기용 팬이 천천히 돌아가는 게 ‘느린 마을’에 온 실감이 났다. 실내에는 중정을 두어 풀과 나무가 자연 그대로 보이니 일기예보도 필요 없을 듯하다. 흐린 밤이라 별은 못 볼 터이고, 대신 함박눈이라도 쌓이기를 바랐다.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불편함’도 설계되어 있다. 숨이 찰 만한 가파른 계단에는 나무 팻말에 계단아 반갑다!라고 걷기 운동의 효과를 수치로 적었다. 비움과 채움의 머리글을 딴 '비채레스토랑'에서는 꼭꼭 씹어 천천히 먹기를 권한다. 식탁에는 30분짜리 모래시계가 놓여 있는 데 천천히 먹을 것을 상기시킨다. 한 번 뒤집어보고는 사우나의 모래시계보다 훨씬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세 안다. 야채와 육류를 균형 있게 차린 식탁은 건강하지만, 소식 다동小食多動이라고 쓰인 그릇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고 말하는데 적게 먹는 일이 쉽지 않다. 머리를 쉬어 보려고 온 이번 3박 4일에 식습관마저 바뀐다면 대만족이다.

 1시간 남짓 땀이 날 정도로 숲 테라피 강사와 함께 숲 산책을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잘 쓰지 않던 근육들을 자극하는 운동 체험을 익힌다. 샤워까지 마치니 네댓 시간 만에 건강을 되찾은 기분이다. 5명 모두 잠을 푹 잤다.

이른 아침 아래쪽을 걸어 내려가며 이곳저곳을 걷는다. 도로 옆 숲에서 ‘어흥’ 하며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낮은 포효는 공포심을 자아낸다. 갑자기 산 속임을 실감한다. 마침 지나던 두 여인이 가던 길을 멈추더니 멧돼지가 숲에 있는가 보다라며 긴가민가한다. 나는 음성 녹음해 둔 센서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대명천지에 웬 호랑이? 라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저 호랑이 숲이라고 쓰여있던 팻말로서 호랑이로 알고 있었다니… 멧돼지 소리로만 들었던 두 여인이 사실 더 그럴듯하다. 완만한 곳을 빙 돌아 한적한 3층 카페로 오른다. 카페에서 젊은이들은 전망 좋은 앞산을 바라보다가도 스마트폰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와이파이가 잡히는 아래쪽 웰컴센터로 모인다. 소통을 하는 것이다.  

 좀 더 비탈길을 올라가면 명상실이 있다. 작은 에밀레종을 울리며 사색에 잠겨도 좋지만, 카페에서 오전 내내 가지고 온 책을 읽기로 한다. 앞산 전망이 탁 트인 데다 안락의자는 반쯤 누울 수도 있다. 외손녀가 돌아다니다 옆 의자에 따라 누워도 될 만큼 넉넉하고 자유롭다. 실내 왼편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여린 불꽃을 피우고 있다. 디지털 불꽃의 호텔 로비들과도 전혀 다르다. 왠지 진짜와 실제 공간임이 기쁘다. 오른편 통유리 창밖에 고구마를 구워내는 장작난로에서도 상큼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까운 겨울나무들은 작대기를 꽂아 놓은 듯하고, 먼 곳 나무들은 한줄기 내리그은 선이다. 줄기만으로 산을 회색빛으로 채우는데 중학생 시절 스포츠머리 마냥 짧고 가지런하다. 겨울이 물러난 2월 말 잔설도 없는 양지바른 계곡과 능선이 뚜렷해서 산 전체가 몽실몽실 포개어진 덩어리들이다. 이곳에서는 한눈에 선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설 명절을 나누는 문자 인사에 일일이 답하지 않아도 미안한 마음이 덜하다. 고요한 나만의 사치를 누리려고 굳이 답하지 않는다. 스마트 폰을 쓰지 않으려고 온 선마을인 만큼 응답하지 않을 만하다. 명절은 역시 어린 시절에나 좋았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듯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안부를 묻기도 어색할 정도로 사회관계망이 널려있는 만큼 소통의 전성시대다. 굳이 덕담을 준비하고 격식을 차리려니 더 어색하다. 안부를 물어야 하는 이도, 말해야 하는 이도 부담스럽다. 만나면 묻지 않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와이파이가 잡히는 웰컴 센터를 지나친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에는 모든 문자 메시지가 이미 와 있다. 찍어 내듯 비슷한 글과 그래픽 그림들로 가득하다. 그룹으로 일괄 송출도 가능하고 식상한 복제된 답을 보내거나 구하면서 실망한다. 차분한 고립을 찾아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면 스마트폰을 떠나 있거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절해고도에 머물러야 한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종도 생겼다. 잊힐 권리가 중요해졌다. 사회관계망 속 기록의 흔적이 무한히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불쾌할 수도 있겠다. 사후에도 기억되기를 바란다던 말이 언제 이야기인가? 고요한 단절이 나에게만 절실한가 반문하게 된다. 우울증 환자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고 되뇌고 있다.

 '함께 그리고 따로'라는 말에 공감한다. 스마트폰이 안되니 나는 식사 때에 맞춰 가족들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하다. 궁금해할 일도 없다. 생체 시간이 필수 불가결한 일들을 해결해 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따로 홀로인 듯 편안하고자 한다. 이곳에서는 ‘먹는 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 맘에 든다. 정보와 인맥을 좇던 일이 스마트한 폰으로 대체되어 비대면이 효율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더 고립과 단절을 찾는 이유인 것 같다. 명절 연휴이기도 하지만 와이파이 없어 불편하다고 여길 만한 이곳에 젊은이들이 더 많다.

 그렇더라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예약하며 우리는 교통 앱을 앞세우고 찾아왔다. 사실 LTE 기지국 통신망은 촘촘히 깔려있어 산을 멀리 도는 산책길에서 LTE 통신은 간간이 잡혔다. 하지만 불편함을 추구하는 선마을 내에서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통신을 따로 차단했음이 틀림없으리라. 인터넷에 스마트한 폰을 휴대하게 된 이후로 문자메시지 공해는 물론 보이스피싱 같은 신종 범죄까지 진화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생활에서 속도감이 떨어지면 뒤처지는데, 진실과 거짓을 빨리 판별해야 할 분주해진 머리는 터질 지경이었다. 차라리 세상과 단절되기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이다. 그 와중에 코로나19로 익숙해진 단절이 더 큰 단절을 원하게 하고 있다.

 다음 여행은 아예 스마트폰이 작동하지 않을 곳으로 가자. 먼바다 크루즈 이거나, 템플 스테이! 눈 내린 산사에서 묵어보자. 아내와 함께 가야 하니 때맞춰 식사만 제공되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여인은 밥 안 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고, 남편은 '하루 세끼 삼식이'로부터 면죄부를 얻는다. 피정의 집에서 식사 때 외에는 각자 따로 침묵 묵상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 그러면서도 한편 잘못된 길을 가는 듯 움츠려 들기는 한다. 비대면의 과도한 쏠림도 결국 새로운 부작용을 키울 것이다. 그저 이번처럼 딸네 부부와 외손주를 함께 돌보며, 과거와는 많이 다른 낯선 명절을 또다시 맞고 싶다. 마스크를 벗고 서로 대면하는 균형 있는 소통을 갈망할 때 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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