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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Oct 21. 2023

브리티시 카운슬

 어학원 직원에게서 뜻밖에 전화를 한통 받았다. 강사 한 분이 나를 중상급반으로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그 강사야말로 혹독한 평가로 승급을 포기하게 한 바로 그분인데. 어학원 내부의 반 편성 사정은 모르지만 추천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중상급반에 갈수 있었으면 했던 당초의 꿈이 6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6년 전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는 딸을 만나러 가서였다. 떠나기 전 TV에 인도 뉴스들이 많이 올라왔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선출되고 도약하는 인도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털털거리는 산골 버스 안에서 동행의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황당한 뉴스가 있었다. 델리같은 대도시에서는 천인공노할 성폭행범들을 사형집행하라며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었다. 대사관에서 근무한다니 걱정 말라며 인도로 떠났던 딸을 막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델리에서 딸의 안내로 아내와 나는 꽃피던 무굴제국의 영화가 깃든 무굴 가든을 방문했다. 인도 수상 과 오바마 둘만이 대화를 했다는 멋진 정원이었다. 기억에 남는 다른 한 곳인 간디 메모리얼에서는 헌화도 했다. 국빈들의 방문코스인지라 낯설기는 했으나 국빈이 된 듯 유쾌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여행자로서 느끼던 호기심은 곧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십수년전 한국에서도 그러했지만 델리 시내의 무질서한 세발 달린 택시 릭샤들, 끊임없는 클랙슨 소음, 안개 낀 듯한 스모그는 연일 TV에 보도된 대로였다.

 시내인데도 호텔까지 가는 택시 요금을 흥정해야 한다니, 그나마 딸이 없이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인도식 영어 발음은 단어조차 알아듣기 어려웠다.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 무거운 침묵만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카스트 제도 같은 낯선 문화에서 딸이 겪을지도 모를 애로가 새삼 걱정되었다. 곳곳에서 무슨 봉변을 당하더라도 일상같이 느껴질 모양새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언제라도 딸에게 급히 도움을 주러 와야할 것 같았다. 비상시에 응급 소통할 수 있는 영어 수준까지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쓰지 않으면 쉬 잊히는 게 언어다. 학창 시절 10년 영어를 배웠으니 다시 접하면 잘 할 수 있겠지 싶었다. 영어와 문화를 접하기에 좋은 곳으로 딸이 영국문화원을 추천했다. 듣고 싶은 주제를 원하는 시간과 강사를 선택할 수 있어 편리했다. 레벨 테스트결과 초중급반으로 배정되었다. 한 단계 높은 반을 올라가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다. 10회 강좌마다 강사의 평가가 있는데 늘 제자리였다. 공연히 중급반으로 옮겨 젊은이들에게 끼친 민폐가 컸다. 그저 한국식 영어교육 방법이 잘 못되었다는 세간의 말로 위로 삼았다. 수십 차례의 좌절을 겪은 뒤라 중상급반으로 올라가기는 포기했다.

 비상시를 대비하려고 영어공부를 하든, 직업을 구하기 위함이든, 외국에서 자란 손주들과 소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이어도 좋다. 다른 언어는 다른 시각으로 읽히게도 한다.  그들의 언어는 곧 그들의 문화이어서다.

 언어는 소통이 목적이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6년 전만 해도 종종 영어를 잘 구사하는 능력이 일종의 권력처럼 느껴졌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을 음식점의 메뉴에 갖다 대기만 해도 번역된다. 여행과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영어가 필수적이지만, 단순한 소통을 위한 의미는 퇴색하였다.  카카오 톡의 채널 추가 기능을 배웠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보여줄 수도 있고 원어민 소리로도 읽어준다. 신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데에 더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영어학원이 계속 운영될까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신기술을 숙달하여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되기에는 순발력에 한계가 있다. 또한 얼굴을 보며 눈을 맞 추는 느낌이 있어야 제대로 소통하는 맛이 있다.

 마음을 비우고 영어소설을 읽으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명작들을 쉽게 다시 쓴 영어소설을 골라 읽는다. 나만의 시각과 해석으로 창조하는 느낌마저 든다. 번역 앱과 비교해 보면서 잘 어울리는 의미를 찾게 된다. 그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의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영국문화원 수업을 계속하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읽듯 번역 앱과 읽어주는 기술에도 영어는 더 넓게 계속 쓰일 것이다. 구글번역 파파고번역등 신기술을 잘 결합해가며 언어를 통한 문화의 폭을 넓혀가면 족하다. 세계를 이해하며 여행하는 데에 영어공부는 필수이려니 여기면서 정말로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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