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의 무거움

by 이용만

아내의 성지순례 여정에 따라 나선다. 충청남도 다락골과 갈매못 성지를 다녀오면 111곳 성지순례 막을 내리는 날이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서소문 정하상 바오로 성지를 찾았다. 성지의 지하실을 돌아보는데 젊은 학생 몇몇이 ‘정하상 바오로’를 공연 연습 중이었다. 연습이지만 좀 더 지켜보자. 언제 다시 이 곳에 들를 일은 없을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어딜 가도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연습 장면 임에도 숨을 죽인 채 움직일 수 없었다. 6살 어린 나이에 정하상은 아버지 정약종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를 통해 듣고 또 들은 얘기는 직접 본 듯 똑같다. 하늘을 우러러 기쁨으로 칼을 받는 모습이다. 처형되던 날 정약종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하늘이 내게 살 자리를 만들어 주셨듯이 영광되게 죽을 자리 또한 만들어 주셨다'라는 대사다. 정하상은 조선교구를 설정하는 데에 교회사적 공로가 인정된다. 1837년 엥베르주교를 영입하고, 순교를 대비한 상재상소를 작성해 두었으며 1839년 9월22일 45세나이에 서소문밖에서 참수되었다.


고문은 견디기 어려워 대부분 배교하고 목숨을 구한다. 숙부인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 신앙을 철회하여 유배로 끝났다. 오롯이 믿는 이들에게 ‘죽음의 두려움’이 자리할 만한 배교背敎란 없다. 그들만이 순교자가 되었다. ‘안 믿겠다’ 한마디로 족했다. 불쌍한 부모와 자식에게 돌아가 그들을 돌보아야 하지 않느냐? 하느님은 그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으시겠느냐? 고 ‘안 믿겠다’는 말 한마디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전전긍긍했을 배교자를 떠올린다.

일가족 5명이 30여 년의 대를 이어 순교한 역사는 가톨릭 세계사에도 없다. 성지 벽면에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이 글을 적었다. ‘월락재천수상지진月落在天水上池盡: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라고.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요즈음 생각을 멈추기로 한 일들이 많아졌다. 옳고 그르다 할 만한 게 없다.

순례길은 무겁다. 우울한 기분을 떨치려 지상의 공원으로 올라섰다. 공원에는 풀과 나무를 심어놓아 산책하기에 좋았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한 노숙자가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다. 지난달 스톡홀름에서 새벽 산책중 보았던 노숙자가 떠올랐다. 노란색 슬리핑백을 뒤집어쓰고 커다란 나무 등걸에에 시체처럼 곧게 뻗어 있어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잠든 노숙인은 실물 같은 작품이었고, 티머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 청동 2013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25장 34-40절)을 묵상하며 제작되었고, 이곳에서 ‘소외되고 고난받는 이들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중학 1년생 시절 세례 받은 곳인 약현성당으로 향했다. 교리 공부하러 오갔던 길은 추웠지만 인생에서 제일 맑았던 시절이었다. 교리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였을 터인데 전교에서 1등을 했다. 나도 선생님도 놀랐던 당시의 추억은 지금도 주님의 선물로 믿고 있다. 아내는 데이트 시절 이곳에 자기를 데려왔고 내가 고해성사를 했다고… 전혀 기억도 못 하는 데 아내는 또렷이 기억들을 말한다. 정신이 번쩍 났다. 뭔 얘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원래 계획대로 다락골과 갈매못성지까지 길을 서두른다. 10년 전 가보았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순례 확인 도장을 받으려는 것이다. 아내의 긴 여정의 마무리를 도우면서 나도 새로 나온 순례 책자에 도장을 받아야겠다. 이제 방방곡곡 순례길은 나의 버킷리스트다. 그런데 매번 미루다가 지팡이를 들고 나선 데자뷰가 먼저 눈 앞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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