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바보 추기경

by 이용만
바보들의 무대(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공원)

추기경 김수환(1922~2009)이 애칭으로 '바보'라고 불리는 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바보가 아니라고 항변한 적도 없다. 바보를 자처하셨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추기경의 표어대로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밥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도 하셨다.

대구에 있는 기업체 탐방길에 군위에 있는 추기경의 생가(生家)를 들른다고 했다. 2018년 '사랑과 나눔'공원으로 개장했는데 처음 가보는 곳이기도 하여 모두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용인 천주교 묘역에 모신 부모님께 다녀올 때 추기경께도 기도를 올리곤 했다. 그곳은 금년 봄 내 친구 서유석 신부도 선종하셔서 '나의 살던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사랑과 나눔' 공원에는 추기경의 아호(雅號)인 '옹기’를 말해주듯 옹기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오물까지도 끌어안는다는 옹기이다. 천주교 역사에서 옹기만큼 상징적인 것이 또 있을까. 모진 박해 때마다 산속에 숨은 신도들은 생계를 위해 옹기를 구워 내다 팔았다. 옹기 하나씩을 끌어안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김 추기경의 조부(祖父)가 순교한 뒤로 대를 잇는 가난은 옹기 가마로 재현되어 있다. 초가삼간 생가로 이어진 길의 벽면에서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라는 추기경 말씀이 나를 콕 집는 듯했다. 공원에는 '십자가의 길' 14처(處)도 있는데, 공간이 작아서인가 1처와 14처가 붙어 있어 죽음이 곧 부활임을 상징하는 듯했다.

널찍한 직사각형 무대를 반원형으로 벽면을 세웠는데 왼쪽 상단에는 바보 추기경이 그려져 있고, 바보들의 무대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바보인 줄도 모르는 나와 함께 추기경이 바보라고 쓰인 무대에 함께 계신 게 반가웠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던 옛 유행가도 떠올랐다. 무대에서 연극하는 배우처럼 살다 보면 바보처럼 여겨지는 일이 부지기수 아닐까. 남의 밥이 되라는 말씀까지 하시다니 나를 두고 한 말 같아 위로가 되었다.

10여 년 전 아내가 성지 순례 111곳을 마무리할 무렵, 순례 인증 스탬프를 받아놓지 못한 10여 곳을 동행한 적이 있었다. 어느새 대장정을 마무리 지어 대주교의 축복장을 받을 거라고 했다. 인증 도장만 받아두지 못했지 사실 잘 알려진 순례지여서 이전에 함께 다녔던 곳이다. 무릎도 약해진 아내를 위해 차를 운전하면서 순례 마무리에 동참하는 의미도 컸다. 감사와 은총을 얻은 감동에 순례 이야기를 공동 문집에 싣고 지인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었다. 클럽 회원 한 분이 아내에게 성지 순례에 대한 짧은 소감을 발표해 달라고 청했다. 불교 신자이지만 듣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5년여에 걸친 111곳 성지를 완주한 아내의 일에 가족들조차 당연히 여겼음이 부끄러웠다. 마치 늘 익숙한 공기의 가치를 잊고 산 것과도 같았다. 추기경 말씀처럼 '위대하신 하느님을 말로는 하면서도 그 사랑을 마음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바보'였다. ‘뭣이 중한지’를 다른 이를 통해 알게 되다니 정말 나는 바보 맞지만, 너무 늦지 않게 일깨워주신 '바보' 추기경님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의 발자국 / 김수환


당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왜 한 사람의 발자국뿐입니까?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왜 저를 홀로 내버려 두셨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결코 너를 버려둔 적이 없다.

발자국이 하나인 것은 네가 고통스럽고 힘겨워할 때마다

내가 너를 업고 다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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