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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Feb 19. 2024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情)'

유니버설 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첫 공연이 '코리아 이모션 정(情)'이다. 문훈숙 발레단장의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던 터에 댄스클럽회장을 맡아 홍보를 겸하며 일행 15인과 함께 보았다. 유니버설아트센터는 기회가 없었는 아름다운 발레공연장이다. 선화예술 중고등학교도 붙어있어 유니버설발레단이 있는 광진구는 행복할 같았다.

 공연 전 문단장이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情)' 테마를 잘 요약해 주었다. 해외에서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던 글로벌 걸작품이다. 우리의 고전무용에서는 땅을 딛고 가슴을 모으는 한(恨)과 간절함이 부각되는 반면, 서양발레는 가슴을 젖히며 토(Toe)를 수직으로 치솟는다. 여성무용수를 머리 위로 추켜올리는 천상(天上)을 향한 몸짓이다. 동서양의 오버크로스 발레가 독특한 울림을 주었다.

 여성무용수는 말 그대로 참이슬만 먹고사는 요정처럼 가쁜했다. 우아함 속 각고의 훈련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볼룸댄스의 모던종목인 왈츠를 배우던 초보 때였다. 여성파트너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안전하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놓는 일이 남성의 역할이라고 농(弄)처럼 들었다. 옮기는 데 타이밍이 절묘해야 무겁지 않다.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고도 홀로 이동하는 것처럼 사뿐사뿐하다. 역시 볼룸댄스가 발레로부터 유래되었음을 입증하는 듯 열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음악에서도 '동해 랩소디(East Sea Rapsody)'로 흥을 돋우는 군무로부터 2 인무 파드되까지, 가야금과 전통악기 아쟁의 애를 끊는듯한 음조는 심장을 긁어 올리는 듯 절절했다. 이런 발레는 본 적이 없었다. 연인 형제 부부간의 죽음을 넘어 다솜(순우리말로 사랑을 뜻함)을 표현한 한국의 발레였다. '정선 아리랑'에서는 늦가을의 자연 풍경을 먼 배경에 두고 2열의 남녀무용수들이 다가올 때, 수천 년 아리랑의 정서가 장엄한 서사시로 관객을 압도했다. 아리랑(我理朗)에 대한 해석도 신선했다. 나를 다스려 고난을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즐거움이었다. 무대배경의 영상미는 춤, 음악으로 서로를 북돋았다.

 여성 발레리나의 현대의상인 튀튀를 볼 수 없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순백의 튀튀는 아름답다. 발레리나의 의상은 코코 샤넬의 코르셋 같은 실용적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  '카마르고' 이후로 '로맨틱 튀튀(tutu)(발목 개방), 세미 로맨틱 튀튀(무릎 개방), 클래식 튀튀(허벅지 개방)'로 치마가 짧아졌다. 남자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Vatslav Nizhinskii, 1890~1950,  우크라이나 태생의 러시아 무용수, 안무가)는 '앵포엥트(en pointe, 발끝으로 서는 것)', '도약(跳躍)'하며 춤추기, '타이즈(Tights)' 복장 착용으로 발레는 몸으로 만드는 디자인이요 건축이 되었다.

 '정(情)' 공연 내내 현대적 치마의상으로 표현된 발레는 한국적 정서를 흠씬 담아 미(美)의 정수(精髓)를 공감하게 했다. 남자무용수 복장도 허벅지와 엉덩이근육으로 기를 죽이던 검은색 타이츠가 아닌 헐렁한 저고리에 가까웠다. 여유와 자유가 물 흐르듯 공연 의상도 '정(情)'의 주제와 조화로웠다.

 '미운 정과 고운 정'은 함께 붙어사는 듯 기쁨에 허공을 뛰어도 애절함은 바닥에 닿았다. 4 개의 주제별로 조명이 꺼지는 암전(暗電) 사이사이 관객의 뜨거운 호응이 그치질 않는다. 75분 공연이 언제 지났는지 숨을 죽였다. 문단장께 감사를 표하니 사진촬영에 포즈를 잡아주신다. 발레와 볼룸댄스가 함께 하는 파티와 공연을 하고 싶다. 4개 주제 중의 하나라도 우리 클럽의 댄스파티에서 오프닝공연에 넣고 싶었다. 지원을 요청드리니 무슨 뜻이지 바로 알아챈 단장님은 '발레의 무대는 마루가 아닌 고무판'이라고 일러주신다.

 손유희 발레리나의 고별행사도 감동적이었다. 무용수의 발레 수명이 짧다. 발레는 축구와 비견될 정도로 에너지 소모량이 크다. 천직이지만  나이 마흔이면 은퇴할 만큼 고되다.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 현대 무용가)은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죽음은 무용수가 춤을 그만둘 때다. 그리고 이 죽음은 훨씬 고통스럽다"라고 했다. 후학(後學)을 기르는 선생님이 되기에는 은퇴의 아쉬움이 컸을지 모른다.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장과 함께한 오늘 감동의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情)'이 벌써 아련하다. '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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