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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월든호수의 소로처럼?

by 이용만

누구나 한 번쯤 자연인으로 사는 삶에 이끌리고 싶은 때가 있다. 자연인이라는 TV프로그램이 종종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숲에 들어온 이유는 다양하다. 병을 치료하거나 도시문명에 염증을 느낀 경우와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도 많으리라.

뻔한 이야기로 여기고 읽기를 미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을 어떻게 뻔한지 교만한 자세로 읽는다. 180여 년 전 월든 호수가 있는 콩코드는 미 동부 보스턴의 북서쪽으로 30km 떨어진 인구 2,200명 정도의 조그만 마을이다. 미국 독립 혁명의 발단이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며 사상가 에머슨의 초월주의 운동이 펼쳐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 존 소로에서 이름을 따 온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4세 때 외할머니집에서 윌든호수를 만났고 그의 작품들의 본향이 되었다. 이웃으로부터 1.6km 떨어져 외딴 월든호숫가에 수변로부터 60여 m 숲 속 한 칸짜리 검소한 오두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힐링장소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직접 가있는듯한 상상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책 속에 묘사된 일상이 마치 나의 것처럼 체화된 탓이다.

환경이나 도시문명과는 관련 없었을 것 같은 시대에 소로가 저술한 배경과 접근방식이 궁금했다. 심지굳은 그의 선택에 공감이 커질수록 44세에 폐결핵으로 낙엽처럼 스러진 소로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웠다. 그는 제2장에서 거기에서 산 이유를 친절하게 적어놓았다. 소로는 말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삶이 본질적인 사실만을 앞에 두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익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죽음을 맞았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면서 허위와 망상과 탐욕에 젖은 채 허우적거리며 사는 동시대인들을 질타했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소로는 이렇게 비유적으로 말한다 “이른바 자발적 가난이라는 우월한 시점에서 보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 생활의 공평하고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서로에게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허공에 있는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사고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운데 단순 소박하고 자족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 있다. 간소화하고 또 간소화하자. 경쟁과 시간에 쫓겨 스스로 되돌아볼 줄 모르는 우리에게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자유와 행복의 절대적 가치를 둔 소로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월든은 이 시대의 쉼표 같은 책이다.


자신의 삶이 너무나 소중해서,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소로만큼 우리는 단호한 용기가 없어서일까? 삶이 아닌 볼품없는 삶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우선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고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독신이던 소로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소로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노동가치가 평가절하 될까 두려워 기계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여지가 없다. 성장하려면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을 부단히 사용해야 하는 노동자가 어떻게 자신의 무지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이따금 무상으로 그에게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고 우리가 먹는 강장제로 기운을 되찾도록 해 주어야 한다. 우리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좋은 자질은 과일의 분(粉)과 같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레 다루어야만 보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을 그처럼 귀중하게 다루지 않는다.

어렵사리 바쁜 현대인의 일상만을 주장하고 싶은 나에게 180년 전 소로시대의 청춘들도 어려움이 많았으리라고 인정하더라도, 과일의 분粉 같은 인생의 소중한 면을 돌보는 일에 그와 일치점을 찾았다. 철학자인 소로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독창적인 해석과 자기반성이 요체임을 증명하듯 탄탄함이 글 전편에 배어 있다. 11km 길이의 콩밭 이랑을 오전 일찍 가꾸며 호수와 자연을 기록하고, 필수품만으로의 단순한 삶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은 검증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의 용기와 노력에 머리 숙이게 된다.

당시 인디언과도 조우하던 시대를 살았던 소로는 “안 사요? 우리를 굶겨 죽일 작정이냐”며 바구니를 팔러 온 인디언과 공존하는 바구니를 팔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사색했다. 자연 속에서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없겠는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소로 자신에게는 즉시 숲으로 향하는 일이 되었다. 그렇잖아도 마무리 짓고 싶었던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을 집필하기 위해서도 좋은 시기였으리라.


라틴어 아이스 알리에눔(aes alienum)은 타인의 놋쇠 즉 동전을 말하는데, 빚을 지면 남의 놋쇠에 묶인 채 살다 죽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간이 흔히 저지르듯이, 성취 또는 탐욕으로 인하여 흑인 노예제만큼이나 스스로 노예 감독관이 되는 일이 '삶다운 삶'에 실패하는 원인임을 소로는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자신의 행위로 얻은 평판, 즉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얽매이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스스로 가두어 온 일이 평생의 족쇄임을 알게 한다.

그런데 보라.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배고플 때 과일을 따 먹던 인간이 농부가 되었고 나무 아래를 피신처를 삼던 인간이 집을 돌보게 되었다. 땅 위에 정착한 뒤로 밤의 하늘을 잊어버렸다. 사실 문명인이란 단지 좀 더 경험이 많고 좀 더 현명해진 미개인일 뿐이다. 지상의 건축물이 사라지고 나서도 지하실의 흔적은 남는다. 집이란 그러고 보면 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현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자신이 살 집을 자기 손으로 짓는 것처럼 아주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재봉사만 하더라도 아홉 명이 한 사람 구실을 하는 게 아니다. 목사와 상인 농부도 마찬가지다. 이 노동 분업은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그리고 분업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날품팔이가 가장 독립적인 직업이요, 반면에 그의 고용주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느라 1년 열두 달 쉴 틈이 없다. 우리는 우리보다 1.5배쯤 똑똑한 사람들을 반편이 취급한다. 우리가 그들의 재능을 3분의 1밖에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고대인이나 심지어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에 비해 지적인 면에서 왜소하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도서 9장 4절 참고). 가장 큰 소인이 되려는 노력은 해 보지 않은 채 소인족으로 태어난 것이 불만이라고 그 가운데에서 목을 매달아야 할까. 우리 모두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고 각자 본분을 지키도록 노력하자. 굳이 우리 머리 위에 푸른색 유리로 된 천국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완성되더라도 그런 하늘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더 높은 곳에 있는 진짜 하늘을 가만히 바라볼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있다. 본성이 나약한 탓에 우리는 어떤 경우를 상정하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래서 동시에 두 가지 상황에 갇히는 꼴이 되고 빠져나오려면 두 배나 힘들다. 어떤 진실도 거짓보다 낫다. 교수대에 선 땜장이 톰 하이드(영미 소설에서 흔히 불량자나 노상강도로 등장한다)는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재봉사들에게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에 실에 매듭짓는 걸 잊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이 말에 그의 동료 사형수들은 신에게 기도하는 걸 잊어버렸다. 뼈에 가까울수록 살은 더 달콤한 법이다(뼈에 가까울수록 고기는 더 맛있다는 영국 속담을 빗댄 표현). 가난하기 때문에 오히려 경박한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남아도는 부로 살 수 있는 것은 없어도 되는 사치품뿐이다. 정신의 필수품을 사는 데에는 돈이 필요 없다.

내가 땅바닥에 깔린 솔잎 사이를 기어가며 내 시야에서 몸을 숨기려 애쓰는 벌레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은인이 될지도 모르고 그 종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도 있는 내게 왜 저렇게 겁을 먹고 도망가려 애쓰는 걸까? 저 위에서 더 위대한 은인이자 지적인 존재가 인간 본래인 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내 뇌리에 떠오른다. 정말로 우리는 심오한 사상가이자 야심 찬 피조물이다.

누구나 뉴잉글랜드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60년도 더 된 오래된 사과나무식탁에서 일어난 일이다. 알은 맨 처음 살아있는 푸른 나무의 백목질 속에 있었고 그 나무가 점차 말라서 무덤처럼 변하여 수많은 동심원으로 이루어진 나이테 속에 묻힌 채 오랫동안 죽은 듯 지냈을 것이다. 그러다 밖으로 나오려고 널판을 갉아 댔을 테고 수년 전부터 식탁에 둘러앉아 즐거운 식사를 해 오던 농부의 가족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으리라. 아름다운 날개 달린 생명체가 찬란한 여름 생을 즐기기 위해 가장 흔해 빠진 선물용 가구에서 갑자기 기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누가 이 이야기를 듣고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지 않겠는가

단순히 시간의 경과만으로 밝아 올 수 없는 것이 새벽이다.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깨어 있는 날이어야만 동트는 새벽이 찾아온다. 앞으로 더 많은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월든호수에서 소로처럼 살아가는 실험을 따라 해보고 싶은 충동이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15.4 초판발행 이후 보존서고함에 있던 책을 찾아내었다. 웰빙 에세이스트 김영권의 <월든:처럼(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숲으로 들어간 4년>이라는 산문집이다.

강원도 화천에서 그가 붙인 길 5곳 이름이 집다리길 해령길 만령길 화령길 물안길. 지난여름 나도 걸었던 비수구미길도 그의 거처였다. 강길 산길 들길 꽃길을 끌어모아 강산들꽃이라 이름 지었다. 마치 소로가 월든호수를 하늘의 물, 숲의 거울, 물의 들판, 대지의 눈이라 했던 것과 같이.

그도 물었다. 당신은 도시에서 정말 행복합니까? 지난시절의 관점에서 저자의 선택은 역주행 아닌가 잠시 갸웃했나 보다. 하지만 도시에서 생활하던 추억이야말로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역주행이었다. 어쩌자고 이 좋은 길을 제쳐두고 북새통길로 찾아들어 고달픈 역주행을 했는가라고 적었다.


월든 곁에서 사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과 천국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

나는 그 돌 놓인 호숫가이며

그 위를 지나는 산들바람이라네


내 빈 손에

그 호숫물과 모래가 담기고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사념 속에 드높이 자리하고 있다네

-소로의 詩-


소로의 다른 짤막한 작품들 중에 야생사과는 인류와 자연에 대한 사색이 돋보인다. 사과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신화 속 과일이기도 하다. 깊이 있는 관찰과 사유가 담긴 소로의 자연주의사상을 가슴에 담는다.

야생사과

-Apple of the eye 눈동자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의 가장 고귀한 부위에 속한다. 탄탈로스(기아와 갈증의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으로 눈앞의 과일에 닿지 못한다)가 딸 수 없던 과일 중에도 사과가 있다. 북유럽 '이둔'여신은 노년기를 느낄 때 보관해 둔 사과를 먹고 라그나뢰크(신들의 파멸 혹은 황혼 시기)까지 회춘한다.

-고슴도치보다 약간 큰 종인 호저豪猪가 사과나 포도 위를 굴러 등에 박힌 가시에 한수레 되도록 짊어지고, 입에도 한 개를 물고 집으로 가져간다. 도중에 한 개라도 떨어지면 모두 흔들어 떨구고 다시 뒹군다. 새끼들은 어미등의 가시에 박힌 먹이를 양껏 먹고 나머지는 남겨둔다.

-야생사과 이름 짓기에 대한 기술이 흥미롭다. 농땡이사과, 움푹 들판사과, 저장실 구멍 사과, 소요객 사과, 얼었다 녹은 사과...

같은 시기 장소에서 초월주의 자연사상가인 에머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하버드 우등생 클럽 회원 소로는 행동하는 철학자요 자연관찰자였다. 에머슨은 소로에게 일기 쓰기를 권하면서 자연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한 법이라고 말했다는데, 소로에게는 월든이라는 자연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맑은 정신으로 자유롭게 사는 법을 터득하려는 자기 탐구의 시간이었다.


월든의 자유사상을 잘 표현한 책으로 <시민의 불복종>도 찾아 겸손하게 읽는다. 그의 사상과 일치하는 행동을 기록으로 보여준 저서이다. 월든 호수에서 자연과 생태에 관심을 가진 것 못지않게, 우주를 생각하며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을 기록으로도 행동으로도 남겨두었다. 소로는 당시 100만 명에 달하는 매사추세츠주의 노예제도와 멕시코에 대한 영토확장 전쟁에 반대하면서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아 1846.7 징세보안관에게 체포되었다.

“나보다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나에게 강요할 수 있다” 는 소로는 하루 동안 감옥생활이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주변에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 좋은 이웃이나 친구로 믿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의 우정은 풍요로운 여름날에만 지속된다. 10월은 봄과 여름에 그가 한 일들이 열매를 맺는다."라고 적었다. 1857 캔자스주 노예제도 반대로 처형된 존 브라운 탄원 낭독을 하기도 했다.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을 발표하고 그의 사후에 <시민 불복종>으로 출간되어(1866)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등 전 세계 비폭력 저항운동의 바이블이 되었다.

시민의 불복종(소로의 본문에서 발췌)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에 있을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노예제도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월던 호숫가에서 자연회귀의 삶을 실험했던 데이비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매사추세츠 100만 노예해방과 멕시코침략전쟁반대를 위해 납세거부하여 투옥되었다.

자유의 피난처임을 자임해 오던 나라의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이고 또 한 나라의 전 국토가 외국 군대에게 짓밟히고 점령되어 군법에 지배하에 놓였을 때 정직한 사람들이 일어나 저항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 때라도 결코 이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의무가 더욱 시급한 것은 이 짓밟힌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니며 오히려 침입한 군대가 우리나라 군대라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날 이 미국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세일까?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부도덕은 무도덕이 되고 마는데 그것도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 된다 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과거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교회를 갈라놓으며 가족을 갈라놓는다. 심지어 그것은 한 개인 조차도 갈라놓는다. 즉 한 개인 속에 속해 있는 한 개인 속에 있는 ‘악마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정의가 자신들을 통해 승리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한 표 앞선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자기 이웃들보다 더 의롭다면 그는 이미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라는 말은 단 한 사람이라도 도덕적으로 우위이면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는 말로 19세기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자주 사용되던 어구이다.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제로 노예제도에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유일하게 가장 떳떳한 장소는 감옥이다. 격리되어 있으나 실은 더 자유롭고 더 명예스러운 곳이다.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의로운 사람을 모두 감옥에 잡아 가두든가 아니면 전쟁과 노예제도를 포기하든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주 정부는 어떤 일을 택할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올해 1천 명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폭력적이나 유월적인 처사는 아닐 것이다. 평화적인 혁명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한다면 당신 직책을 내놓으시오! 국민이 충성을 거부하고 공무원이 자기 자리를 내놓을 때 혁명은 완수되는 것이다. 이른바 수단이라는 것이 늘어갈수록 삶의 기회들은 줄어든다.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교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가 가난했을 때 품었던 계획을 실천해 옮기는 것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의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학교 교사는 목사의 생활비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데, 왜 목사는 학교 교사를 위해 세금을 내지 않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의 명상이야말로 정말로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나를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나의 육신을 처벌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나의 명상의 문에 열심히 자물쇠를 잠그는 것을 보고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의 명상은 허가나 방해를 받지 않으며 그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다시 나갔다.

한 알의 도토리와 한 알의 밤이 나란히 땅에 떨어졌을 때 둘 다 각자의 법칙에 따라 싹이 트고 자라서 커질 만큼 커지다가 어느 한 나무가 다른 나무를 그늘로 가려 죽게 만들고 말리라. 식물은 자신의 천성에 따라 살지 못하면 죽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 진보일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 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60.12.3 나이테 관찰 후 폐결핵이 악화되었고 1862년 봄 44세로 생을 마치며 “낙엽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라고 여동생 소피아에게 전했다. 에머슨이 조사를 낭독했다. 1906년 보스턴에서 소로 전집 20권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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