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전원경(2016.5 발간) 책 되짚어 읽기
22. 1.2차 세계대전
21. 20세기초의 예술
20. 예술 속의 제국주의
19. 미국과 러시아
18. 빅토리아시대
17. 예술산업의 성장
16. 인상주의 미술과 표제음악
15. 산업혁명
14. 이탈리아 통일과 오페라
13. 독일 음악과 낭만주의
12. 프랑스 대혁명
11. 18세기의 유럽
10. 로코코와 계몽주의
로코코라는 말의 어원은 '조가비 장식'에서 유래하듯 더 이상 왕실이 아닌 귀족과 시민들이 꽃피운 예술로 변화한다. 루이 14세, 엘리자베스 1세는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위엄 있는 궁중예절로 군주답게 만들었으나,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초상화에서 로코코 예술의 진로를 보여주었으며, 부유해진 영국은 대륙보다 앞선 정치를 이끈 시민계급을 그림에서는 1743년 윌리엄 호가스가 <요즘 결혼식> 연작으로 돈 주고 산 귀족신랑을 풍자하며, 음악에서는 헨델 하이든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다.
모차르트 플루트와 하프 협주곡 k299 1악장
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중 합창 추천
9. 절대왕정과 바로크
1616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선이 일본에 화승총을 전달하는 등 탐험시대로 포르투갈어로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경제사회정치환경에 따라 바로크 사조는 신교에 대한 반동으로 더욱 화려해진 가톨릭의 바로크, 루이 14세 프랑스 궁정 바로크, 네덜란드의 시민 바로크로 분화했다. 같은 네덜란드 화가이면서도 렘브란트와 달리 루벤스는 '화가들의 군주이자 군주의 화가'로 불릴 만큼 엇갈린 운명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구심점을 잃은 예술은 궁정화가 궁정악장만큼 예술후원의 뒷배가 더욱 절실하였다.
헨델의 수상음악
헨리 퍼셀의 <메리여왕을 위한 음악>중 비가 추천
8. 종교개혁-분열된 유럽
1503~1513년간 재위한 율리우스 2세 교황은 카이사르처럼 되고자 이름도 그렇게 지었고, 백반석 광산 수입으로 베드로 성당 증축과 벽화와 초상화를 그리게 하며 로마의 영광을 재건하고자 하였으나, 200년 십자군전쟁으로 이미 쇠락해진 가톨릭에 대해 1511년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에서 맹목의 민중과 부패한 성직자를 비꼬았을 정도였다.
마침 플랑베르지역(독일북부 벨기에 네덜란드)은 베네치아와의 무역을 북해로 이동하였고 상업으로 부유해진 군주들은 십일조를 교황에게 납부할 이유가 없었다. 1517년 면죄부판매가 확대되면서 루터의 공개질문 95개 조와 독일어성경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에 세勢를 얻었다. 영국에서도 헨리 8세는 앤 블린과 혼인하며 1533년 성공회를 세웠고, 교황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을 사주하여 반란을 시도하였으나 포로로 잡힌 메리는 1587년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되고 종교분열이 사라졌다.
1648년 군주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합의를 끌어낸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기까지, 역설적으로 독일은 삼십 년 전쟁에 휘말린 종교개혁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구교 쪽의 종교적 불안과 위기감에 스페인에서는 예수회가 창설되고 종교재판이 가열되었고 다시 중세풍의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경향을 띄었다.
신교 쪽에서는 프로탄트예술 즉 간소하게, 일상에 충실하게, 정물, 풍경, 초상화등 살기 위한 장르가 빠르게 정착되었다. 바흐는 코랄과 칸타타 수난곡등 교회음악의 새 장르를 열었다.
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리를 위한 미사>
바흐 마태수난곡, 멘델스존 교향곡 5번 종교개혁 4악장 추천.
7. 오페라와 연극, 발레의 시작
주요 국가에서 무대가 열린 배경을 살펴보자. 스페인에서는 1571년 오스만제국과의 레판토해전에서 한쪽 팔을 잃고 퇴역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1588년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시민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대 인기였다. 피렌체의 인문학모임 카메라타에서는 그리스신화 속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월계수가 된 요정이야기인 페리의 다프네가 오페라로서 최초공연되었다. 음악에 대본을 입힌 오페라의 어원은 일work을 뜻하는 Opus에서 파생했다. 프랑스에서는 15세 나이로 태양왕 아폴론 배역을 맡았던 루이 14세가 로열 댄스아카데미를 창설하는 등 16세기 유럽전역 르네상스가 꽃피울 무대가 활짝 열렸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중3막 혼례의 합창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1막 추천
6. 르네상스
노르망디와 플랑드르 양모산업의 지배권으로 시작된 프랑스와 영국 간 백년전쟁(1337~1453)은 잔다르크의 화형까지 루이 11세와 헨리 8세 왕권이 강화되고 봉건제가 힘을 잃었다.
피렌체로부터 르네상스의 기운이 로마 베네치아로 번져나갔다. 고대 유적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 중부로부터 '재생'의 의미를 갖는 르네상스의 어원은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조르조 바사리(1511~1574)가 처음 사용했다. 토스카나의 피렌체공국의 실질 통치자 코시모 데 메디치는 와해된 비잔틴제국 그리스정교 지식인을 환대했고,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2명의 교황을 배출하고 미켈란젤로를 양자로 후원하며 불을 지폈다. 신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돔으로 건축된 배경과 만테냐의 파르나소스, 보티첼리의 봄 비너스의 탄생 그림은 그리스 신화가에서 영감을 얻었고, 517cm 다비드동상은 로마교황인 골리앗에 맞선 피렌체인의 자긍심이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요청한 교황청 서명실의 세 벽을 장식한 라파엘로의 기독교의 삼위일체, 파르나소스, 아테네학당 그림은 르네상스인의 가치관이 중세 암흑시대와 달라졌음을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와 함께 웅변하고 있다.
5. 중세, 십자군과 고딕
500년부터 1500년까지는 신앙이라는 정신적 원동력이 워낙 뚜렷하여 '중세'라고 불린다. 로마제국시절 유럽인구는 6천만 명이었으나 3천만 명으로 줄고, 독일과 프랑스의 모태가 된 실권 없는 게르만족의 프랑크왕국은 왕밑에 봉건영주와 농노의 가난으로 헨젤과 그레텔 동화는 영아유기를 암시할 정도였다. 그림은 건축의 한 부분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둔중한 '닫힌 세계' 로마네스크양식의 프레스코벽을 이루거나 모자이크제작이 주를 이루었다. 1095년 성지수복의 십자군운동으로 직업군인인 기사와 시민계급이 출현하며 개인의 존재가 부각되었으나 페스트가 휩쓴 재앙으로 인구감소를 겪는다. 기병의 존재감을 높인 등자의 발명, 하멜룬의 피리 부는 사나이, 수수께끼 기독교로 치부된 몽골군대 같은 대변혁의 와중에도 기사문학의 발달과 익숙하게 받아들여진 죽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11세기 니벨룽겐의 노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가 악극형태 오페라로 완성했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열린 사회'를 맞을 태세를 갖추면서 중세후기 뾰족한 아치의 고딕양식이 출현하며 비로소 그리스로마 수준을 넘어서고, 단테(1265~1321) 신곡에서는 성모마리아가 아닌 베아트리체가 구원의 여신상으로 표현되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비전>,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2막 2 중창 <내려와 다오, 사랑의 밤이여> 추천.
https://youtu.be/UATbpR96KEs?si=BdQhwnlelP-2NoFy
4. 비잔틴과 콘스탄티노플
기원전 146년 그리스를 이어받은 로마도 게르만세력(고트족 훈족 반달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지배권을 넘겨야 했다. 476년 서로마와 1453년 동로마 멸망까지 1000년 비잔틴은 예이츠는 그의 詩 <비잔틴으로의 항해>를 쓸 만큼 서구에서도 미지의 세계였다.
로마로부터 보스포루스해협 콘스탄티노플로 이어지고 롬바르디아족의 침공으로 피난 온 아드리아해의 석호 베네치아까지 르네상스의 발원지로 문명 이동의 경로를 말해준다. 하우저의 비평에 의하면 아야 소피아 즉 소피아 성당은 로마의 바실리카구조에 40개의 창을 낸 관冠같은 돔을 올려놓음으로써 비민주적인 구조를 지향한다고 분석했다. 726년 에게해 한복판의 화산폭발로 성상숭배를 우상으로 보며 성화는 십자가로 대체되었다. 이미 692년 성상숭배를 인정한 서방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다. 비잔틴의 상징인 모자이크를 회반죽으로 덮기까지 하였으나, 비잔틴 제국의 제2의 서쪽 수도인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는 롬바르디아 세력권에 편입되어 있어 다행히도 보존되었다.
800년경의 지중해연안은 라틴계 기독교인 서부, 그리스계 기독교인 동부, 이슬람이 지배하는 남부로 나뉘었다. 지리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제국은 동서양 가교의 지점에서 632년 무함마드 사망 후 다마스쿠스 가자 예루살렘까지 정복한 이슬람의 800년 침략을 버텨가며 정교합일주의로 나아갔다. 반면에 이슬람은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로 세를 넓혀갔고, 콘스탄티노플은 1204년 제4차 십자군에 함락되었다.
1453년에 블루 모스크를 건축한 오스만제국의 침공에 동로마 마저 소멸되었으나,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교두보로 삼아 르네상스 문명이 싹을 틔었다.
3. 초대 기독교
기원전 597 바빌론의 느부갓네살1세 유대인포로들로 반세기동안 히브리아 노예가 되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과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배경이 되었다.
천년 구약은 모세 5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예언서 기타(시편 욥기 룻기 잠언 전도서) 삶의 지혜문학으로 3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유대인의 성경이기도 하다. 33세 예수는 새로운 국가가 아닌 새로운 도덕성의 시대를 설교하며 천국의 자격을 이야기한 혁명이었다. 당시 율법으로도 월권이었고 십자게에서 처형되고 부활하였다. 신약성경의 예수와 성모마리아는 완벽한 남성과 영원한 여성의 원형이다.
제우스나 아폴론 또는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으로부터 이미지를 끌어 온 아담과 이브요, 삼손과 사자의 싸움은 신화 속 헤라클레스와 사자의 그것으로 대치되었다. 그림은 무학자들의 성서로 장려되며 기독교예술(성화 렘브란트 이삭의 희생,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중3막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 강력한 전교의 도구였다.
2. 그리스와 로마
기원전 2000 ~1400 크레타 섬 북동부 미노아문명에서 그리스문명이 기원하다.
기원전 600년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이탈리아 반도 남쪽 끝 네오 폴리스가 현재 나폴리이고,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몸을 묶어 무사히 지나갔던 세이렌 전설은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섬 사이 좁은 해역의 이야깃거리로 세계에 회자된다. 그리스문화가 꽃피운 이유는 신들의 신화 속에 다른 종교적인 목적 없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 가능한 시대였다.
그리스는 기원전 146년에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더로 인하여 꽃 피운 헬레니즘 문화까지 흡수하는 로마에 멸망한다. 한니발 전쟁을 통해 전술을 익히고 팽창한 로마의 귀족민주주의인 원로원, 3두 정치, 악티움해전에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자살로 끝내게 한 옥타비아누스는 제1 시민 프린켑스 초대황제시대를 열었다. 로마의 호전적인 남자 영웅조각과 콜로세움은 이념선전의 극장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수단이다.
18세기초 5m나 쌓인 화산재아래 폼페이유적이 발굴되면서 붐을 일으킨 로마유적을 통해 개선문과 공동묘지인 팡테옹이 프랑스에 모방 건설되었고 본격적인 미술사도 연구되었다. 고고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1717~1768)은 '우리가 위대함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고대인을 모방하는 것'이라 했다. 피카소의 분신 미노타우로스와 르누아르 작품인 세 여신, 파리스의 심판, 그리고 베토벤이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과 같이 여긴 그의 음악동기를 영웅 3 번고향곡 마지막 악장에 다시 한번 사용할 만큼 예술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op43중 서곡)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중1악장,
리스트 피아노모음곡 순례의 해 3 편중 '빌라 데스테의 분수'를 추천한다.
1. 고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와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가장 오래되고 제일 큰 건축물. 미라의 내장은 카노푸스 항아리에 담기고, 함께 부장 된 파피루스에 그려진 사자의 서에 나타난 저승을 흐르는 강은 그리스신화 스틱스강의 원류이다. 63기 왕들의 계곡에서 나온 투탕카멘은 데스마스크(사람이 죽은 직후에 그 얼굴을 본떠만든 안면상)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조각이 관뚜껑에 있는 이치이며 찬란한 신앙이었다. 기원전 32년 악티움해전으로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한다. 이집트는 수에즈운하 개통을 기념해 베르디에게 오페라 아이다를 의뢰했다.
나폴레옹은 영국과 인도 무역로를 차단하려 이집트원정하면서 175명의 학자를 대동한 탐험이었다.
피라미드와 저승의 스틱스강을 건너던 배와 투탕카멘의 데스마스크를 쓰고 그의 내장은 카노푸스단지에 누천년을 염원하던 부활의 믿음은 언젠가는 납득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부활한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시공간을 연결시키려 제우스의 벼락을 끌어오기도 했다. 다시 5천 년의 세월 후에 인류의 믿음이 인공지능으로 향한다. 미라들은 신들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다시 신이 되고픈 열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후예들을 지켜보고 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저자, 전원경 2016.5)
외향적인 사람은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대문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삶에는 뾰족한 모서리들이 있다. 이런 모서리에 부딪쳤을 때 예술이든 종교이든 무언가를 찾는다. 저자는 예술의 전당등에서 강연한 자료들을 책으로 엮었다. 고대 이집트부터 제1,2차 세계대전까지 20개의 역사 속에서 예술을 이야기로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