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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by 이용만

https://youtu.be/u5WK5nU0-Dk?si=sgGfZpkcL9bVKOOP

버지니아 울프는 박인환 <목마와 숙녀> 시낭송 노래로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게을렀던 젊음은 학과 취업에 줄을 서기에 바빴다. 오르려던 성공 사다리에서 눈을 떼면 죽기라도 하는 듯 무지했던 세월만큼 아쉬움이 남더니 또 다른 집착을 낳는다. 경쟁도 성(性)도 흐릿해진 때를 알고서야, 지나간 시대와 예술, 문학도 눈에 보이는가.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지며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성정이 비슷한 분의 추천을 받은 책이어서인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냉철한 여류 지성인으로부터 안내받아서인가? 편안하고 끝까지 읽게 된다.

1928년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여성전용으로 설립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사색하고 정리한 강의 원고 같은 느낌이었다.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나'에 대해 울프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해밀턴>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상기시켰다. 197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인 '통기타' 시대, 가수 양희은이 <아름다운 것들>로 번안해 불렀고 기타 연습곡으로도 친숙했다. 아름답다던 번안곡의 가사가 우연히 들어본 원작에서는 그토록 처연한 것에 뜨아했었다.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금지곡'에 포함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뮤지션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데, 나의 지나간 청춘은 스피커소리와 보이는 것만 좆았던가 하는 자괴심에 괴로웠다.

저자가 글에서 '암시력'이 갖는 힘을 강조했듯이 16세기 '4명의 메리'를 통해 여성의 운명과 고난상징으로 삼았다. 아직도 가부장제의 흔적에서 발을 빼내지 못한 남성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픽션'을 통해 설파한 여성관을 보았다. 그녀의 강의 원고가 장편의 에세이가 되었다. 딸 둘에 외손녀를 둔 황혼의 남자가 그녀의 글에서 여류문학사와 성(性)을 새롭고 희망차게 이해하게 될 줄은 뜻밖이었다.

https://youtu.be/IoXaf4GfuI8?si=ukvawFWgYVwBkulD


자기만의 방

1928년 10월 어느 날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으로 추정되는 옥스브리지라는 가공의 대학 교정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강의를 준비하며 쓴 글이다. "주인공 나는 메리 비턴이나 메리 시턴, 또는 메리 카마이클, 아니면 여러분이 좋을 대로 아무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습니다"라고 영국의 <메리, 네 명의 발라드>를 꺼내었다.

대학 구내 잔디밭 위에서 부드럽게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는 꼬리 없는 짐승을 갑자기 보게 되자 어떤 잠재되어 있던 지성이 문득 발휘되며 나의 감정적인 시각도 변화되었습니다. 그 맨 섬 고양이(맹크스. 사람에게 길들여진 꼬리 없는 고양이 품종. 영국 맨 섬에서 왔다는 전설이 있다)를 바라보았을 때, 확실히 무엇인가 결핍된 느낌이 들었으며 무엇인가 달라 보였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3만 파운드를 모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학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식민지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고 또 남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데는 막대한 기금을 무척 쉽게 모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금액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교육받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상당한 액수입니다. - 레이디 스티븐, <에밀리 데이비스의 생애>에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었을까요? 기부를 할 만큼 큰 재산을 모으는 한편 시턴 부인이 13명의 아이를 낳는 것, 그것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우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홉 달이 걸립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러고 나면 아기를 먹이는데 서너 달이 소모됩니다. 아기에게 먹을 것을 공급한 후에는 아기와 함께 놀아 주는데 5년이 족히 흘러갑니다. 아이들을 길거리에서 뛰어다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을 테니까요. 시턴 부인이 자기 자신의 돈을 한 푼이라도 가질 수 있게 허용된 지 이제 겨우 48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영국에서 기혼 여성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 '기혼 여성 재산법'이 통과된 해는 1870년이다).

여성은 왜 가난한가? 이 물음은 마침내 쉰 개의 물음이 되었고, 그 쉰 개의 물음은 미친 듯 강물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휩쓸려 가버렸습니다. 세뮤얼 버틀러가 "현명한 남성은 여성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결코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포프는 이렇게 말했지요. "대부분의 여성은 성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라브뤼에르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성은 극단적이다. 그들은 남성보다 우월하거나 또는 저열하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예리한 관찰자들이 보여주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의견이지요. 나폴레옹은 여성이 교육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존슨 박사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남성은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장 나약하거나 가장 무지한 여성을 선택한다. 여성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이 가부장제의 지배하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교수님의 지배력을 간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력과 돈과 영향력은 그의 것입니다. 그는 그 신문의 소유자이고 편집장이며 부주필입니다. 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대학과 자선 단체에 수백만 파운드를 남겼습니다. 그는 여배우를 공중에 달아맸습니다. 안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화가 났습니다. 사실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가질 겁니다. 그것이 실상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겠지요. 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 왔습니다. 그것을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남성은 코카인을 빼앗긴 마약 중독자처럼 죽을 것입니다.

그전까지 나는 신문사에 잡다한 일자리를 구걸하고, 여기에다 원숭이 쇼를 기고하고 저기에다 결혼식 취재 기사를 쓰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부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조화를 만들고, 유치원 어린아이들에게 철자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몇 파운드를 벌었지요. 그러한 일이 1918년 이전의 여성들에게 개방된 주된 일거리였습니다. 원하지도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너무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 하나의 재능이 소멸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나 자신, 나의 영혼도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나무의 생명을 고갈시키며 봄날의 개화를 잠식하는 녹과 같았습니다.

운 좋게도 돌아가신 숙모님이 내게 매년 500파운드를 유산으로 지급하셨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계급이나 성을 뭉뚱그려서 비난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었지요. 그리고 1, 2년이 지나자 연민과 관용도 사라지고 가장 커다란 해방, 즉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겨났습니다. 진정 숙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의 베일을 벗겨 주었고, 밀턴이 우리에게 영원히 숭배하라고 천거한, 신사의 크고 위압적인 모습 대신 훤히 트인 하늘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교수님에게 여성에 관한 그의 논의에서 이것저것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요구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100년이 지나면 이 가치들은 완전히 변하겠지요. 더욱이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집 문 앞에 이르러 생각하건대,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힘든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아이 보는 여자는 석탄을 운반할 것이고 가게 주인 여자는 기관차를 운전할 것입니다.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에 근거를 둔 모든 가설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조지 트리벨리언 역사학자가 쓴 <영국사>를 뽑아 들었습니다. '여성의 지위'라는 항목을 발견하고 읽었습니다. 남성이라면 누구든지 노래와 소네타를 지울 수 있었던듯한 그 시대의 어떤 여성도 탁월한 문학작품을 단 한 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영원한 수수께끼입니다. 당시 여성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자문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자신은 문법 학교에 다녔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유산 상속인이었으니까요. 그동안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의 누이는 집에 남아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연극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대출입구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요. 남자들은 여자가 연기를 하는 것은 푸들이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내뱉고는 어떤 여자도 배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지요.

나는 과수원에 나뒹구는 얽은 자국이 있는 작은 사과들처럼, 런던의 중고 서점에 산재한 여성들의 소설을 생각했습니다. 그것들을 썩게 한 것은 중심에 존재하는 바로 그 흠집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경의를 표하여 자신의 가치를 변질시켰던 것입니다. 순전한 가부장제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그런 비판에 직면하여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이 본 그대로의 사물을 고집하는 일은 대단한 재능과 성실성을 요구했겠지요. 그 일을 해낸 것은 오직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성처럼 쓰지 않고 여성이 쓰듯이 썼습니다. 1828년에 이 모든 타박과 꾸짖음, 상의 약속 등을 무시하려면 무척 완강한 젊은 여성이어야 했을 겁니다. "나는 비록 당신이 교구 관리라 해도 나를 잔디밭에서 쫓아내도록 용인치 않겠소. 그러고 싶다면 당신의 도서관을 잠그라고. 그러나 당신은 내 자유로운 마음에 문이나 자물쇠, 빗장 따위를 달 수는 없어."

이제 여성은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예술로서 글을 쓰기 시작하겠지요. <생의 모험>인가 그 비슷한 제목의 소설로 메리 카마이클이 쓴 것이며 바로 이달 10월에 출판되었습니다. (마리 카마이클은 산아제한 운동가인 마리 스톡스의 필명이며, 그녀는 1928년 사랑의 창조라는 소설을 출판했고, 이 소설에는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울프는 이 작가의 이름을 메리로 바꿈으로써 화자의 이름 및 <메리 4명의 발라드>와 관련지어 여성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공통의 경험과 운명을 시사한다). 나는 그녀가 불이 붙지 않을 성냥을 그어대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지요.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 픽션의 모든 위대한 여성들이 다른 성의 눈으로 보였을 뿐 아니라, 다른 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보였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남성과의 관계는 여성의 삶에서 아주 자그마한 부분 밖에 차지하지 못하는데 말이지요.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 그들은 실험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

남성들이 얻은 것은 분명 자신들의 성이 제공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성만이 줄 수 있는 선물로서 어떤 자극이며 창조력의 부활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 여성이 방에 들어갑니다. 방들은 모두 전혀 다르지요. 고요할 수도 있고 우레 같은 소리가 어울릴 수도 있으며, 바다를 면하고 있을 수도, 아니면 정반대로 감옥의 뜰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빨래들이 널려 있을 수도 있고, 오팔 같은 보석과 실크로 화려하게 장식될 수도 있지요. 여성은 수백 년 동안 방 안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벽 자체에도 여성의 창조력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제는 팬과 화필, 사업, 정치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머리 뒤쪽에는 스스로 볼 수 없는 동전만 한 크기의 반점이 있습니다. 뒤통수의 그 동전만 한 크기의 반점을 묘사하는 것은 한 성이 다른 성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훌륭한 호의 중 하나입니다. 여성이 동전 크기의 반, 그 반점을 묘사한 후에야 비로소 남성의 진정한 초상화가 총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그녀의 책들은 틀림없이 10년이 지나면 출판업자들에 의해서 펄프로 환원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첫 번째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지요. 즉 그녀는 여성으로서, 그러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쓴 것입니다.

메리 카마이클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주고, 또한 그녀에게 100년을 더 주어야 합니다.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을 빼 버리도록 허용해 주자는 것입니다. 두 성이 협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이 그 명백한 이유이겠지요. 우리에게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최고의 만족과 가장 완벽한 행복을 이룬다는 이론을 선호하는, 비합리적일지라도 심오한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니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현대의 남성이 남성적인 면만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은 통탄해야 할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암시력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책에 암시력이 결핍되어 있을 때, 그것이 마음의 표면에 아무리 세게 부딪힌다 하더라도 내면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여성은 그저 200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합니다. 그리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여기 존 랭던 데이비스가 보낸 마지막 경고가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나이가 될 때, 여성도 전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라고 한 경고를 여러분은 기록해 두기 바랍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드릴 것이 있습니다. 1866년 이래 영국에는 여성을 위한 대학이 적어도 두 곳 존재해 왔으며, 1880년 이후에는 기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법적으로 허용되었고, 1919년 - 꼭 9년 전의 일인데 - 여성은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전문직이 여러분에게 개방된 지 대략 10년 정도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릴까요? 이 순간에도 연간 500파운드 이상을 벌 수 있는 여성이 2만여 명 있다는 사실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 던졌던 육체를 다시 걸치고 그녀가 출연하리라는 것과 비록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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