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들라크루아(1933년~)

by 이용만

이제는 백화점에서 식사하자는 아내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게 좋다. 노년의 시간이 도래하기 전에는 백화점 출입 자체가 꽤 오랫동안 스트레스였다. 큰 문제점이었던 쇼핑(아이쇼핑을 포함하여)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 턱수염도 기르며 중절모가 어울리게 되면서 백화점에서 빈둥거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없을 만큼 이미 청춘(?)은 멀리 떠나 있다. 오히려 젊은이들 다니는 식당에서 민폐로 비칠지 눈치 볼 일도 없다. 백화점 주차가 편리하고 매장 공간이 넉넉해서 여유로워 좋다. 메뉴선정에도 나쁘지 않다. 더군다나 매운 음식은 손사래를 칠 정도이니 체질에 맞는 식성도 살펴야 한다. 마침 그림 그리기 동호회에서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미셸 들라크루아 특별전도 열리고 있었으니 일거양득이 오래전부터 함께 볼 요량이었나 보다. 경로할인 켓을 끊는 대로 군말 없이 들라크루아 특별전을 본 것, 시라도 드라큘라라고 흰소리할 법할 만큼 그를 전혀 몰랐던 내게는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다. 94세라는 고령임에도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유지하는 데에 놀라웠다. 풍경에 과거의 회상을 담았는데 선명하고 정감 있는 화풍이 편안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단순한 삶 속에 인간으로서 따뜻함과 희망을 갖게 하는 전시였다.많은 정겨운 그림 중에 히 파리 근교의 겨울호수 스케이트장에서의 왈츠 그림이 환상적이.

호수라기보다는 갈대숲이 빙판에 듬성듬성 있는 기다란 개울 같은 모습이다. 빨강노랑파랑 삼원색의 화려함과 눈 덮인 흑과 백, 원근의 춤이 점점이 세밀하다. 피겨 스케이트로 춤을 추는 커플 댄스를 그린 작가의 상상력에 크게 고무되었다. 우리 같은 취미로 하는 부부댄서들의 왈츠 취향에도 잘 맞아 프린팅 그림 몇 점 구입했다.

지난번 예술의 전당에서 고흐 전시를 볼 때에는 줄이 길었고 내부는 더욱 혼잡했다. 한 개의 그림조차 사람들 머리 위로 힘겹게 보다 못해, 차라리 앱을 깔고 이어폰 설명을 듣는 게 나았다. 작품에 다가서면 해설에 집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을 통해 보는 좋은 점로서, 전시장소를 떠나고도, 아쉬운 대목은 다시 듣거나 가족들과도 함께 일정기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어렵사리 3,000원을 제하며 앱을 통해 해설을 들으니 아내도 더없이 기뻐한다. 색칠하기와 발레를 배우는 손녀에게 TV 미러링으로 앱을 보여주면, 할머니와 손녀는 나눌 이야기가 더욱 많을 것이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 파리 14구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낸 파리지앵 화가로, 현재는 노르망디의 도빌 근처 전원주택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941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미셸은 일곱 살이었고 이 시기에 친척들이 살고 있는, 파리 근교의 시골 마을 이보르(lvors)에서 피난 생활하며 전쟁을 겪어냈다. 그는 이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으로 꼽는다. 미셸은 1970년, 37세부터 미술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그 무렵 전쟁 이전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고 지금의 화풍을 정립했다. 그는 1990 년부터 35여 년간 전업 화가로서 지금까지 작품을 그려오고 있다. 미셀은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와 같은 미술 정규교육을 수료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 왔으며, 자신 화풍에 대해 순수한 본능을 살려 그림을 그리는 유파인 '나이브 아트(Art Naif)'보다는 '시적인 과거 회화(Peinture passé poetigue)'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2악장, (모데라토*) 파리, 나

두 번째 악장부터는 미셀이 90세(2023~2025년)가 되고 나서 그린 작품을 모아보며, 그중에서도 화가의 터전인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933년 파리에서 태어난 화가는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끝인 독일군의 입성, 독일군의 퇴각부터 또 파리의 역사를 수놓은 모든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살아낸 화가는 자신이 유년기를 보낸 1930년대 1940년대의 풍경을 섞어, 자신만의 파리의 인상을 만들어낸다. 이번 악장에서는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혹은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명소와 오스만 양식의 건물, 카페와 상점에서 일상을 보내는 시민의 모습을 배경으로 재미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낮에서 저녁으로 그다음 한밤중에 이르는 순서로, 파리라는 도시에 활기가 채워지고, 다시 고요해지다가 빛나는 밤을 맞이하는 구성으로 빛의 도시인 파리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전시장에는 파리의 어둡고, 다소 침체된 분위기를 담은 작품 연작들도 전시되는데, 추운 계절을 보내며 화가가 느낀 심경이 이런 작품 속에 묻어난다고도 볼 수 있다.

3악장, (안단테*) 여름날의 추억

세 번째 악장에서는 미셸이 매해 방학을 보낸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이보르(lIvors)의 여름 풍경으로 초대한다. 아흔셋의 미셀은 여전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그때의 이보르로 돌아가고 싶다고 회상한다. 여름방학을 이보르에서 보낸 환상적인 기억-마을에 도착해 수레 마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간 일, 가족들과 함께 버섯을 채집하거나, 함께 숲 속을 산책한 일, 사랑하는 이와 남몰래 연정을 주고받았던 기억,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그 마을에서 옛 추억들을 회고한 모습까지, 그해 여름이 남긴 소소하고 행복했던 잔상들을 살펴본다.

캔버스에 의미 없는 듯 듬성듬성 붓칠을 시작하며 말한다. "그림에 눈이 올지 봄이 올지 알 수 없죠. 강에서 낚시하는 어부와 같아요. 무엇이 잡힐지 알 수 없죠. 오래된 파리의 풍경을 그리며 다음 생에도 더 나은 화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94세 들라크루아 옹(翁)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죠. 그중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그립니다."라고 한다. 제가 천국에 간다면 그림을 그릴 때 늘 입는 앞치마와 세상을 떠난 아들이 선물한 이 성화를 갖고 가고 싶어요. 저 대신 제 앞치마를 한국으로 보냅니다. 한국 친구들이여, 저에게 보내준 응원과 지지에 늘 감사합니다. 다음 생애가 있다고 해도 저는 영원히, 화가일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화가이길 바라며. 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현대백화점에서 가볍게 들른 전시회에서 얻은 뜻밖의 수확이다. 신미라 큐레이터의 솜씨들이다. 생존해 작업 중에 있는 94세의 노화가를 한국에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먼저 기획된 것을 한국에 이식해 온 것 일터이다. 미셜 들라크루아처럼 좋아하는 것에 천착하여 오래 묵혀가면, 그리고 94세까지도 작업을 계속할만한 은총을 신으로부터 얻는다면 오래 살았다는 것도 자랑이요 감사한 일이다. 노화가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 차츰 나의 글들도 나이를 더할수록 편안하고 따뜻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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