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기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by 그래용

수현이가 태어난 해부터 작년까지는 아이들을 위해 자아를 잠시 내려두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게 다였다. 육아가 그 무엇보다 숭고한 일임을 알면서도 고된 노동에 지쳐 하루를 간신히 버틴날도 허다했다.

난 매일 아침 녹화된 새벽예배 설교를 틀고 아이들 밥을 짓는데 오늘은 소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귀에도 흘러갔고 수안이에게 엄마의 소명이 뭔 것 같냐고 물었더니 자신과 수현이를 잘 케어하는 것이라 답했다. 그 말을 들으며 두 가지를 깨달았는데 소명은 직업보다 큰 개념이라는 것, 현재 나는 내 소명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에선 각자의 소명에 따라 살라고 한다. 꿈이랑 소명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꿈은 능동적이라면 소명은 수동적이다. 20대 말미에 30대 목표를 '내어 맡기기'라고 적어뒀다. 이전의 인생은 주체적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삶이 내 계획과 달리 흘러가도 평안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내가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겸손을 배운다. 올해도 예측불허한 나날이 이어지겠지만 하루하루 깊은 신뢰 속에 평안함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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