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웃음에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너를 안아주고 싶은 열망이 더 크다. 활짝 핀 꽃보다 그늘진 뒷면이 좋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당신보다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가는 네 뒷모습에 더 크게 갈증을 느낀다. 그저 나란히 걸으며 고요하게 발걸음을 맞춰나가는 것에 몰입한다. 모두가 웃는 와중에도 슬퍼하는 너 하나가 마음에 걸려, 차라리 모두 슬펐으면 한다.
삭막한 겨울을 뒤로하고 티 없이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봄을 선물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나는 그들이 뒤로 한 겨울에 남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봄내음 나는 사람이 아닌지라, 밝음을 내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이 사실을 밀어내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되는 게 괴로웠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깨끗하고 쨍한 빛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정답이라고 여겼다. 다름의 영역이 아닌 옳고 그름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나는 틀린 사람이었다. 변화해야 하는 건 그 누구도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변화를 강요하는 것도 나였다.
틀린 게 아니라 그저 각자가 다른 역할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은 해가 지고 난 뒤였다.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 빛과 그림자는 엉겨 붙어 있다는 것. 나의 쓸모는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드는 데에 있었다. 이는 곧 빛을 더 밝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추위가 두려워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었다. 그저 들어주었다. 그 어떤 말로도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되받아 떠들어줄 '입'이 아니라 꿀꺽 삼켜먹어 줄 '귀'가 필요했다.
밝은 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인다. 봄이 왔다는 사실에 함께 전율하기 위해. 하지만 어두운 사람들은 흩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난도질할 뿐이라는 걸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봄을 품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이 가진 빛이 강해질수록, 뒤로 멀찍이 늘어나는 그림자도 비대해지고 짙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주황빛이 도는 가로등에 날파리가 꼬이는 것처럼, 해가 떠있는 중천에는 켜켜이 쌓인 그늘 속에 복잡하고 도저히 풀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들이 한 데 모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