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곤히 잠들어 있던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에 다다르는 순간 불빛이 들어오는 우연을 마주하면 괜스레 영화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서 말한 기분을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사실 가로등이 없더라도 우리는 걸어갈 수 있다. 눈은 어둠에 금세 적응할 테고 당장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면 나아갈 수 있다. 물론 가로등 불빛이 있다면 더 편하고 수월하게 갈 수 있겠지만, 역할이 단지 그뿐일까. 아마 그보다 더 중요한 가로등의 임무는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당신이 걸어가는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안심시켜 주는 일 아닐까.
내 안의 가로등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켜져 있지만, 요즘 나는 굳이 굳이 불빛이 거의 닿지 않는 길을 따라 꾸역꾸역 헤쳐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톱니바퀴처럼 일정하게 맞물린 하루. 그 리듬 속에서 마음이 가장 고요해진다. 세상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 것처럼,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을 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할 때, 쉽게 몰입하고 만족감을 얻는다. 소위 (부정적으로) 말하는 쳇바퀴 같은 삶이 나와 잘 맞다. 이에 들어맞는 경험들은 각각 하나의 가로등이 되어 길을 밝힌다. 그래서 그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이라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보면, 길을 따라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로등들이 줄을 지어 놓여 있다.
그러나 그 많은 불빛을 무시하며, 힘없이 깜빡거리는 가로등만이 이따금씩 보이는 외딴 길로 향하고 있다. 안정감은 무료함이 되고, 편안함은 안주한다는 불안감이 되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철로 위에 내가 나 스스로를 세워두기 시작했다.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하는 것, 너무나도 두려워서 생존의 문제까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일들에 자꾸만 도전하게 된다.
그 도전은 예술과 창작의 길로 이어졌다. 언제든 다 녹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초 하나만을 들고 전전긍긍하며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타고난 미적 감각도 없고, 천재적인 영감을 떠올릴만한 구석도 없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평범하게 자랐으니까. 그래서 애써 쓰고 있는 이 브런치도 나에게는 꽤나 버겁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보이게끔 각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이 길을 가는 걸까? 결국엔 '사랑과 관심'에 다다르기 위한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창작물들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열쇠가 되어주고 싶다는 열망도 있지만 더 깊숙이 차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런 열쇠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명목으로 사랑받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이게 건강한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받은 사랑 속에서 나는 과연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되려 공허함만이 몇 배로 크게 들어차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혼란과 불확신 속에서도, 창작이라는 일 자체가 나의 삶과 존재를 더 소중히 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왔지 않을까 하며, 곁눈질로 나를 속여본다. 그러니 언젠가는 나의 걸음들이 누군가의 가로등 같은 존재로 환하게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