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구의 추천으로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님의 '룩백'이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왔다. 이전에도 같은 작가님께서 제작하신 애니메이션인 체인소맨을 즐겁게 봤었는데, 디테일하고 짜릿한 작화에 압도당했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ost는 지금까지도 찾아서 들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릿한 여운을 남겼다. 이렇듯 액션신이 가득한 화려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영화였던지라, 보고만 있어도 나른하고 어딘가 애틋한 룩백의 표지에 마음이 더 요동쳤다.
자신의 그림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던 후지노는 어느 날 학교 신문 4컷 만화에 그려진 쿄모토의 압도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그림만화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쿄모토를 뛰어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지만, 6학년이 되고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재능의 차이에 벽을 느끼고 도망치듯 그림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졸업식 날, 후지노는 은둔형 외톨이였던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건네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그녀에게서 듣고는 벅차오르는 뜀박질을 힘껏 내지르며 환희에 차오른다. 이후 그들은 함께 정식적으로 만화를 연재하게 된다. 과연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건네었던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나름 여태껏 꾸준하게 글을 적어왔다. 일기든, 남에게 내보이는 에세이든, 생각 없이 휘갈기는 아이디어 노트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써내려 왔다. 그중에서 특히나 에세이는 주기적으로 글을 써내는 게 쉽지 않았다. 문장을 써내는 그 자체가 버겁기도 하지만 지속성을 흩뜨려 트리는 건 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달여 문장을 끌어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썼을 게 분명하다. 반대로 글감이 많고 문장이 문장을 서로 만들어내며 술술 써진다고 하더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쓰지 않을 테다.
그럼 그 마음을 결정짓는 건 무엇일까? 그건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속삭였던 말과 마음이었다.
너의 팬이야.
그려줘서(써줘서) 고마워.
나는 너의 그림(글)이 너무 좋아.
앞으로도 그려줄 거지?(써줄 거지?)
나는 특히 이 그림(글)이 너무 좋았어.
왜 이제는 안 그리는 거야?(안 쓰는 거야?)
지금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그림(문장)이야.
홀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가던 중, 한 줄기 빛처럼 내리쬐었던 건, 그저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말과 마음이었다. 결국 나는 사람 덕분에 쓰고 사람 때문에 쓰지 않았다. 하나의 글을 20개의 문장으로 쪼개보고, 하나의 문장을 10개의 단어로 나누어 본다. 그 단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뭇잎에서 맺히는 이슬같이 짜낸 나의 소중하고도 짤막한 표현들을 꺼내 보이며 너무 사랑스럽다고 말해준다. 난 그들에게 더 많이, 더 풍부하게, 더 아름다운, 더 마음에 와닿는 것들을 써내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쓰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글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 번, 혹은 두 번이 최대치이다. 그래서 내게 '진심'이라는 건 굉장히 야속하고 미운 표현이다. 반짝 빛나고는 소리 소문 없이, 마치 원래 없었다는 듯이 사라지니까. 그렇게 나는 쓰지 않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최근까지도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쓰고 싶지 않았다. 써봤자...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시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하나 둘 올려놓고 두드리게 된 이유는 또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나를 봐주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봐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어딘가에는 존재할 나의 문장들을 아껴줄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가며 나의 '쓰는 삶'을 조금씩 연명해나가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