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때가 되면 필히 피어나고, 때가 지나면 필히 시든다. 그러니 내 삶이 꽃다발이라면, 곧 피어날 준비를 하는 봉오리와 이미 활짝 피어난 꽃들의 수보다 이미 시들어 죽어버린 꽃들의 수가 훨씬 많을 테다. 아마 삶의 끝에는 꽃다발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꽂혀있을 힘도 없는 시든 꽃들만이 누워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치열할 수 있었고 다양한 꽃들을 피워낼 수 있었던 순간들에 감사하며 잠들고 싶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한 송이가 아닌 한 다발이다. 순간 스쳐가는 작고 사소한 것부터 크고 무거운 것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 무수히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저문다. 하지만 이 당연해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다.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이 삶의 순리라지만, 내려가는 그 순간에는 어디까지가 바닥인지 몰라 두려워하고, 올라가는 그 순간에도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몰라 불안해한다. 넘어졌을 때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어 그저 누워만 있기도 해 보고, 신나게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봤지만 매번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오르내리는 삶의 곡선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지금까지 살고 있게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살아있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무언가에 열렬히 도전하고 상승세에 놓여있지만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내려올 것이다. 뜨거운 사랑은 이내 식어버릴 거고,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는 저 태양도 몇 시간 뒤면 저물기 마련이다. 이게 우리가 찬란하고도 비극적으로 피워내는 삶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언젠가 죽기 때문에 살아있는 시간들을 소중히 하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설레고 두근거리는 감정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편안함에 녹아들 것을 알기에 심장이 터질 듯이 당신을 사랑해 본다. 찬 기운을 달래주고 있는 저 햇빛이 얼마 뒤면 사라질 것을 알기에 매번 이맘때면 듣던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게 공원을 걸어도 본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겠지.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더욱 마음껏 살아내 본다. 피워낸 꽃들이 시드는 시기가 되면, 새롭게 피워낼 꽃에 들여야 할 각고의 노력들을 하기 위한 쉼이라 생각해 본다. 그렇게 다시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고 마음을 쓰며 소중히 대할 여력을 충전하는 동안에는, 이전에 화려하게 개화하고 시들어버린 꽃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보려 노력해 본다. 그렇게 우리는 크기도 모양도 향도 다양한 꽃들을 피워내며 각자만의 특별한 꽃다발을 마음에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