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웠나

by 윤슬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었지,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이것만, 아니 저것까지만 끝내면 행복할 거라는 흔한 희망고문의 대상은 언제나 '자유'였다. 내게 자유라는 것은 그 누구로부터도 구애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업가였다. 필연적으로 닿게 될 미래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과거에 스스로를 옥죄던 족쇄들을 모조리 깨부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될 거라 추측했다, 아니 거의 확신했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도 어리석은 낙관은 애초부터 잘못되었음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그건 대학교 3학년,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머물던 때였다.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시작한 타지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동시에 자유롭다는 감각이 조금씩 몸과 마음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마음을 뒤덮고 있던 두텁고 불투명하던 막이 전소되고 있었다.


아, 자유롭다.

누군가 교환학생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여전히 생생해. 집으로 돌아가던 늦은 밤거리 안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닳을 때까지 들을 거라 다짐한 노래를 틀고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처럼 몸을 비틀고 흔들며 달려가던 순간이야."


그 순간을 길게 잡아 늘어뜨려 곱씹어 본다. 과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걸까. 몇 백 킬로미터 반경으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는 편안함? 매 순간 뭐라도 해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의 해방감? 몸을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에서 오는 실체적 자유로움? 이 중 어느 하나만을 무 자르듯 선명하게 골라낼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내듯, 뿌리가 다른 이유들이 감정이 닿는 끝에서 다시 하나로 엉겨 있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그저 내가 나인채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감각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 술에 취해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미쳐 날뛰는 주정뱅이로 보더라도, 낭만에 취해 있는 힘껏 순간의 기쁨과 벅차오름을 느끼고 있는 푸릇한 대학생으로 보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무엇으로 비치든 상관없었다. 어딘가 있어 보이고 잘난 사람으로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냥 때론 저러기도 하지, 라며 무심하고 흐뭇하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넘길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이런 믿음과 시선은 유럽에서 살다 보면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게 된다. 각자가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품고, 자기 세계에 몰입한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나 역시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잠수하게 된다.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무언가 해야만 얻어내는 성취가 아니었다. 그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할 뿐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자유로울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의 시선이 따가운 눈총이자 cctv로 느껴지는 것이 한스럽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몸짓과 표정을 지닌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 어쩌면 자유라는 건,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한 삶을 일궈내는지에 달린 것 아닐까. 하지만 이조차도 해내야 하는 과업 같은 것임을 알기에 자유가 무엇인지 찾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야속하게도 더 뿌옇게 흐려지기만을 반복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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