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대상에 과도하게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대상의 의미와 정의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게슈탈트 붕괴. 어딘가 있어 보이는 심리학 용어 같지만, 사실 일본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글을 쓰고 글자를 좋아하는 나는 이 붕괴를 종종 경험한다. 같은 뜻이라도 어떤 단어를 엮어 표현하면 좋을지, 매번 쓰던 단어만 쓰는 건 아닌지, 누구나 조각할 수 있는 뻔한 문장은 아닌지 하고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돌다 이내 이질적이고 어색하다고 느껴진다. 가장 최근에는 '마음을 쓰다'라는 말에서 붕괴가 일어났다.
나이프를 사용하다,, 나이프를 쓰다..
휴대폰을 사용하다,, 휴대폰을 쓰다..
그래 알겠는데..
마음을 사용하다..? 마음을 쓰다... 마음을... 마음...은 왜 '쓰는' 걸까? 마음은 왜 사용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걸까? 어쩐지 ‘쓴다’라는 표현에는 더 다정한 결이 있다. 왜 그런 걸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찾아보니 '사용하다'라는 말과는 달리 '쓰다'라는 표현은 대상이 무형적인 것에도 사용가능하며, 비공식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더 자주 쓰인다고 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어느새 마음이 그 논리 바깥에 머물고 있었다. 단순한 설명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묘한 고집이 피어올라서는 괜히 토라졌다.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은 유한성에 있었다. 시간에 대해 떠올려보자.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참 소중하고 벅찬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나의 시간을, 바꿔 말하면 나의 수명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상대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개념을 나처럼 유한하고 기꺼운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종종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유일무이하게끔 느끼도록 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개념과 마음을 고백해서 함께 공유하기도 한다. 그제야 나도 상대도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해 같은 마음에서 더 많은 품을 들이려 노력한다.
마음도 이런 시간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꼭 빼닮았다. 쓰면 쓸수록 닳아버리고, 끝내 텅 비어버리는 유한한 것이라 믿는다. 배스킨라빈스에서 패밀리 사이즈를 시키면, 선택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조금씩 담을 수도 있고, 정말 좋아하는 맛으로 조금만 담을 수도 있다. 몇 가지 맛으로 어떤 맛을 고를지 고민하는 이유는 돈이라는 건 쓰면 사라져 버리는 무한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누군가의 돈에는 유한함이라는 특성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각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한정된 시간, 그리고 마음을 누군가에게 또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민한다.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시간을 쓸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도 결국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마음을 쏟을지 신중히 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디선가 찾아오는 만남의 약속을 단호히 거절할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귀중한 일이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그 말이 서로가 서로를 더 반짝이는 존재로 만들 테니까.
이런 게 바로 마음을 '쓴다'는 뜻이 아닐까.
한정되어 있는 귀한 시간을 소중한 당신에게 쓴다는 그런 담백한 고백, 쓰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유한한 여러분에게 글과 마음을 쓴다.
이제서야 붕괴가 고요하게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