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에게, 안녕. 잘 지냈어?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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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듯이 무표정한 웃음을 짓는 Y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은 것만 같았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건지, 몸 안의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걸 단순히 외면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 밖을 나서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누구에게나 '무난하고 괜찮고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했기에, Y처럼 살아야만 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나를 죽이거나 나의 감정을 죽이거나. 어느 누구라도 감정을 죽이는 걸 택했을 테다. 하지만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 게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잘 지내냐는 질문에 잘 지냈다고 답한다.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흘려낼 안부인사 같은 형식적인 질문이 나에게는 온 힘을 다해 입꼬리를 올리며 받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잘 지내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지긋해지기도, 미워지기도 했다. 마치 자기는 잘 지내니까 너도 당연히 잘 지낼 거라고 확신한 채 답변을 강요하는 듯했다.


안다. 내가 꼬인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또 안다. 자유롭게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날 꼬이게 만들었다는 걸. 또, 또 안다. 사회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환하고 비타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그러니까 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까 Y처럼 죽은 듯이 웃어내야 한다. '비정상적'이게 보이지 않으려면, 하하 호호 원만한 대화를 하려면, 누군가의 감정을 나로 인해 오염시키지 않으려면.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후, 입었던 옷가지를 하나씩 던져두며 목까지 차오른 억압된 감정들을 하나씩 삼켜본다. 게워내는 법을 몰랐던 탓에, 어디론가 배출될 수도 없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놓을 수 있게 아주 잘게 썰어내어 빈틈없이 마음속에 쌓아둔다.


출근 전에 지갑을 두고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탓에 회사에 지각하게 된 일, 지하철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틈을 찾아 비집고 몸을 맞대며 들어오는 사람들, 냉소적인 웃음으로 나를 밀어내고 깎아내리는 회사 직원들, 괜한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 혼자 먹던 점심밥, 나한테 일을 던져두고 먼저 퇴근하는 상사, 오랜만에 만난 행복한 친구의 끔찍한 안부인사, 막차 버스를 놓쳐 택시를 타고 지불한 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갈 때 소리 없이 들어와 자려고 누우니 소리 내는 모기.


이상하게도, 죽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은 오히려 점점 더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부터 예민해지고 몸집을 키우며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냥 나 혼자 죽어가고 있었다. 감정이란 족속들은 먹어서 없애면 음식물처럼 위산에 녹아 말끔히 소화되는 게 아니었다. 온전하게 크기와 형태를 유치한 채로 늘어나기만 하고 있었다.


하하. Y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 죽은 듯이 웃고 있던 게 아니었다. 이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채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척 웃고 있어야만 했던 것뿐이었다. 이제 보니 Y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것 자체가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애초에 Y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을 테니까. 그러니 이제는 거울 앞에 서서 Y에게 묻는다. 적어도 너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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