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어서 그만하기로 했다

by 윤슬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것들이 있다. 같은 극을 가진 자석은 끝내 맞닿지 못하는 것처럼. 가령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행복도 그러하다. 행복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행복하기 위해 집착한다. 행복이 삶에서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아가는 동시에, 행복을 느끼지 않는 순간에 대해서는 더 크게 좌절하고 우울해한다. 또,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의 크기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세워진 행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쉴 새 없는 발길질을 하게 만든다. 24시간 365일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흐름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 채로 말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무엇으로 정의하냐도 중요하겠지만 애초에 왜 정의를 내려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정의를 내린 순간, 내가 세운 기준에 맞지 않는 그 외의 것들은 행복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 맹목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주변의 소소하고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은 놓치기 마련이다.


오늘의 글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에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돈, 사람, 행복, 꿈. 모두 갖고 싶은 것들이지만 잘못하면 실제로 갖지는 못하는데, 갖고 싶다고 바라기만 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잘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그것들로부터 더 멀어지게, 아니 더 나아가 그만두게 만들어 버린 일에 관한 글이다.


이전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취미 두 가지는 글과 사진이다. 지금 연재 중인 포토에세이 브런치북은 소중한 것이 한 데 모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잘 쓰고 싶고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큰, 욕심 있는 취미이기도 하다.


글의 시작은 가벼웠다. 중학교 때부터 글을 끄적이던 친구를 보고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따라 쓰기 시작했다. 낯선 표현들을 마구마구 집어넣고 어딘가 심오하고 깊어 보이는 글을 써냈다. 어딘가 사연 있고, 신비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이상한 고양감에 빠졌던 것 같다. 고심하며 적었던 단어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글이 됐다. 그리고 그 글을 뜯어보며 감탄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질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나를 속이며 글을 쓰고 있었다. 있어 보이는 표현들로 떡칠을 해가며 그럴듯해 보이는 의미를 전달하는 껍데기 같은 글들을 말이다. 회의감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면서도 깊이 있으며 사람들의 심장을 헉! 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나에겐 그럴만한 이야기도 없었고, 그럴만한 문장을 쓸 노련함도 없었다. 삶은 너무나도 평범했고 그에 따라 당연하다는 듯이 평범한 문장들이 삶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2022.07.27 썼던 글


한동안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올리더라도 모니터의 흰 여백에 검은 잉크가 묻는 일은 없었다. 쓸 게 없었고, 쓰더라도 어린 문장들뿐이라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순환은 반복됐다. 열심히 쓰다가도 한없이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런 흐름 덕분에 나는 그속에서 내 글에 담을 서체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어렵고 낯선 말들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말고,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들로 사람들과 친해지자.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한 것은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평범해서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라 신선한 충격을 줄 수도 있을 테다. 나한테 당연하다고 남에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되뇌었다.


이런 방향성을 더 확고히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책을 종종 읽어왔던 나는 좋아하는 유튜버의 책 출간 소식을 듣고는 바로 구매했다. 문상훈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라는 책이었다. 책 안에는 우리 모두가 흔히 쓰는 단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든 조금은 낯설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했다. 과장이 아니라 모든 문장들이 아름다웠다. 낯섦은 어려운 단어 속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쉬운 단어들을 골라 쓰되 낯설게 조합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상훈이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하면서도 평범한 솔직한 글이기에 진심 어린 담백한 문장들이 담길 수 있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거짓 없는 글이니까.


그렇게 나의 방향성에 조금 더 확신하게 됐고 지금은 평범한 생각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쓴 글들을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그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글들. 쓰고 멈추고, 다시 쓰기를 반복해 오며 갈피를 잡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더 잘 쓰고 싶다. 그러니 나는 언젠가 또 쓰는 걸 포기하고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언젠가 또다시 쓸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항상 행복하기만 할 수 없고, 항상 행복할 필요도 없다. 모든 순간이 행복한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행복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또 망원동에 있는 피자 맛집이 항상 문을 열고 있을 수는 없다. 사장님도 쉬어야 맛있는 피자를 다시 만들 수 있을 테고, 우리는 항상 그 피자를 먹을 수는 없다는 사실에 그 피자가 더욱 먹고 싶어지는 거니까. 그러니 이제 나도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마음껏 포기하고 괴로워하고 회의감을 느끼고 좌절하며 그만둘 테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 허망한 흰 백지를 채워나갈 테다.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가로등은 무엇을 밝히려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