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지구가 멸망하면 좋았을 텐데

by 윤슬


기분 좋게 몸속을 관통하던 공기 냄새가 숨을 죽이고,

끊임없이 유혹하려 드는 화려한 빛깔들이 등을 보이는 날이 있다.

유난히 채도가 낮고 소름 끼치게 조용하고

사무치게 향을 품지 않은 그런 날들이 있다.


이리도 따분한 나날이 지속되기도 하구나 싶다.

요즘 사는 게 재미없다는 건 앞으로의 삶에

재미있는 것들로 예상되는 무언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너에게 유채색 물감을 붓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지구를 멸망시켰다.

날아오는 소행성을 바라보던 너의 경악스러운 표정을 보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심장이 두근대고 미치도록 쨍한 색깔들이 내비치고 어지러울 정도로 쾌쾌한 향이

네 삶의 마지막에라도 남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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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면서 써온 모든 글을 통틀어 가장 아끼는 친구예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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