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에서도. 나를 찾아서.
<미망>, 박완서, 2024.
박완서 선생님의 <미망>은
민음사의 ‘<미망> 함께 읽기’ 오픈채팅방에서
3일 동안 1장을 함께 읽고 느낀 점을 나누는
온라인 독서모임을 병행하며 읽었다.
작품을 읽고 읽었음을 인증하며 올렸던 다음은 짧은 감상평들의 모음이다.
처음엔 캐주얼하지만 뒤로 갈수록 어쩔 수 없이 자못 진지한 내 스타일이 우다다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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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을 읽고. 의 요약
태임이가 미망하던 것은 자신에게 면면하게 흐르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요요한 꿈이었고, 참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꼿꼿하게 세우는 품격이었다. 인간과 닮은 외양으로 긴 세월 푹 익으면서 인간을 먹여 살리고 기운을 북돋던 고려 인삼과 그것이 자라던 샛골이었다. 개인적, 민족적인 의미에서의 얼과 임진강에 도도하게 흐르며 얼을 잉태한 진실들이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땅, 새로운 세대로. 인삼장을 탈출해 새로운 개성을 향해 달려가는 고려 인삼의 뒷모습에 개성은 힘껏 돌팔매질을 한다. 나를 잊지 마라. 너의 등 뒤에서 언제까지나 기다릴 테니. 세상이 넓어지자 진실은 더 찾기 힘들어졌지만, 그만큼 더 널리에 머물 것이다.
1.
<미망> 1권 1장 - 전씨가의 사람들
저는 어쩐지 싱아가 등장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박완서 선생님(그분 자체)을 잠깐 떠올렸는데요. 아무래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연상되어서였겠지요 :) <그 많던...>에서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나'가 등장했던 것도 생각났고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처만이 태임을 주기 위해 휘적휘적 꺾어 왔던 싱아는 결국 누가 다 먹었는지 보기 힘들어지고, 미망의 대상이 될 테지만. 싱아가 증인이 되어 지켜본 오롯한 사랑만은 고개에 오래 남아 영영 서려있을 것 같아요. 앞산에는 빨간 꽃요. 하는 태임의 노랫자락이 빙빙 맴도는 4월의 용수산의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할아버지가 싱아 꺾어다 주련?"
전처만 영감은 두루막 자락을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 풀숲을 헤쳤다. 싱아가 연하고 맛있는 철이었다. 싱아는 지천으로 있었다. -73쪽
우리 시골에서는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중
2.
<미망> 1권 2장 - 동해랑의 낙조
보통 우리가 삶에서 미망(未忘)하는 장면들은 마음(心, 忄)과 관련이 깊습니다. 좋은 기회나 큰돈을 놓치는 일도 물론 두고두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되기 마련이지만, 사람의 마음에 만나 원(염원 念願, 원망할 원 怨)이 되는 것들은 머리로 셈하는 것이 어려운 영역에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전처만이 품었던 복수심(心), 태임이에 대한 사랑(愛), 종상이에게 품은 양가적 감정(感情), 며느리에게 느낀 죄책감(感), 아들과 사별한 며느리가 혼외의 관계로 낳은 아기에 대한 애착(愛着). 특히 인과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마음(心, 忄)들이 어지러이 교차하며 인간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파고드는 순간,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강렬한 감정과 그 감정의 대상을 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처만은 곱다하든 밉다하든 정(情)이 많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정이 이끄는 대로 충실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경제활동은 철저히 이익에 따라 그 향방을 결정하지만, 마음의 영역에서만큼은 손익 계산보다 직관을 따릅니다. 동해랑의 낙조(떨어질 낙 落, 비칠 조 照)가 드는 순간, 자신의 세대가 저물기를 앞두고, 전처만은 최대한 멀리 따스하게 퍼지는 붉은빛이 되기를 자청합니다. 애써도 잊지 못해 미망할 바에야 설득력이 낮은 명분이라도 매달아 마음을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전처만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속절없는 낙일과 열정적으로 주변을 물들이는 석양처럼,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마무리이자 용기이자 자긍심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패랭이꽃, 꽈리, 하눌타리, 방아깨비, 무당벌레, 개똥벌레, 들쥐, 말똥구리 따위 미물을 어찌 그리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정겹게 그릴 수가 있을까. 변변히 눈여겨본 적 없이 마구 짓밟고 다닌 풀섶에 그런 예쁘고 정다운 것들이 숨쉬고 있다는 걸 이 나이에 처음 알았느니라. (p. 137)
저는 이번 챕터를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와 성장기(주로 종상의)로 읽었습니다. 일기장에 길게 끄적인 글은 그냥 재미로 봐주세요 :)
태임이가 활짝 웃었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종상이는 태임이의 얼굴과 신식 공부가 함께 눈부셔서 둘 다 직시 할 수가 없었다. (p. 364)
3.
<미망> 1권 3장 - 묵은 것과 새로운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한다. 동시에 그 환경에 끊임없이 영향받고, 또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설사 사회를 구성하고 또 그에 적응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모든 사회적 변화에 아무렇지 않게, 효율적으로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뛰어난 존재도 변화하는 시류에 적응하기 위하여 내재적, 외재적으로 자신의 일정 부분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민하게 사회의 변화에 반응하더라도, 매몰비용이 달라질 뿐 적응에 필요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부동(아닐 부 不, 움직일 동 動)한다.
<미망>의 1권 3장, '묵은 것과 새로운 것'은 서양의 의술을 몸소 경험하고 신문물로 가득한 한양을 목격하며 어렴풋이 개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종상이, 폐쇄된 채 쇠락해 가는 송도와 전처만의 죽음으로 실체화된 세대교체를 대면하면서, 이 땅에 개화가 왜 필요한지, 새로운 시대에서 자신이 맡고자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구체화해 가는 짧은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종상은 스스로에게 변화와 삶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며, 화두뿐만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스스로에 대하여도 끝없이 고민한다. 아직 성치 못한 다리를 이끌고 정처 없이 송도를 돌아다니면서, 그는 자신 안에 여러 모순과 마주한다. 그는 신문물과 서양문화의 개방성을 동경하면서도, 자신에게 하게체를 쓰는 태임의 태도에 분개한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면서도, 자신이 전처만의 상(잃을 상 喪)에 오지 않았음을 호통치는 태임이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시대에 휩쓸리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은 어떤 선택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다. 요컨대 그는 본질적 자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규명하고 실존에 다다르는 복잡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한다.
이는 태임이 타고난 기질과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긴 세월에 걸쳐 스스로를 능동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방적이며, 사회와 타인의 가치판단에 구속되지 않는 독립적 존재로써의 자신을 서서히 확립해 온 것과 확연하게 대비된다. 이 대비는 두 사람의 현실적인 여건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봉건적 사회 구조가 근대적 자본주의를 만나 조선에 가져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설명한다. 동시에 사회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자본의 유무에 얼마나 크게 의지하는지를 축약한다. 무엇보다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두 사람의 실존에 있어서, 각자의 실존 확립 과정이 상대가 다면적 존재로 완성되도록 촉진하는 장치로 기능하리라는 가능성으로 읽힌다.
종상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임은 목표의 실현을 종상에게 위임한다. 사랑은 광범위한 것이며, 자연스럽게 상대의 흠결을 안아주게도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상대의 강점을 내 흠결을 치유하는 데에 사용하게도 한다. 사랑이야말로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찰나나마 완벽하게 한다. 태임과 종상은 눈부심을 견딜 수가 없어서 모르는 척한다. 그러나 모르는 척하는 그 순간에도 부지런히 사랑은 깊고 광활해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회는 변하고, 시절은 흐르며, 시대(때 시 時, 대신할 대 代)는 교체하고 교체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격동의 순간에도 부동하는 것.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들은 그에 대답하기 위해 걷고 있다. 묵직한 이 이야기가 늦여름 밤의 소슬한 바람처럼 청량한 이유였다.
4.
<미망> 2권 4장 - 풍운 속의 화촉
"난 자네 말귀를 도무지 못 알아듣겠네. 때가 안 보이라고 미리 검정 물을 들여서 입는 게 때 탄 것보다 더 깨끗하다니 참말로 해괴한 소리가 아닌가." (p.15)
... 출세에의 집념이 이렇게 보잘것없어질 줄이야.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비하면 그건 구질구질하고 징그러운 욕심에 불과했다. (p.137)
풍운(바람 풍 風, 구름 운 雲) 속에서 밝히는 화촉(빛날 화 華, 촛불 촉 燭)은 위태롭지만 더 맑게 타올라 더 멀리 비춘다는 것을. 부성과 부성 형제, 부성이 댁과 이성이 댁, 후성이, 그리고 어떤 누구보다 태남이까지. 시대는 사정없이 변하고 있지만, 태임이와 종상이의 결합으로 인하여 태임이의 친가와 외가, 그리고 부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화합으로 안정되거나 불안정한 관계를 정리하는 수순을 밟는다. 인상적인 것은 풍운의 시절답게 종상이와 태임이가 근현대적 방식으로 연애감정 교류, 프러포즈 끝에 결혼에 당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머릿방 아씨와 재득이의 관계는 각각이 남편과 사별한 여성, 청년이었음에도 파탄에 이르렀던 것과 대조되며, 재득이의 말마따마 이들의 관계 또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괜찮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본작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환경의 시류 속도를 짐작하게 한다.
축복 속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풍운 속에서 밝혀진 화촉들은, 그들이 잠시나마 이 땅에 어렸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새끼들에게 또렷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어렸을 때는 기질(기운 기 氣, 바탕 질 質)에 대하여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유전적으로 외모, 지능, 기력, 체질 등이 부모와 닮을 수는 있어도, 성격, 능력, 소질이 부모에게서 유전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기분 탓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고 자랄 때 전적으로 엄마 손을 탔던 나는, 커갈수록 외모, 체질뿐만 아니라 화낼 때 찡그리는 미간, 활자에 매달리는 성정, 겉으로는 굽혀도 속으로는 절대 굽히지 못하는 확고한 가치관까지, 닮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따라 해 본 적도 없는, 아빠의 기질들을 물려받았다. 전처만의 기개를 그대로 물려받은 태임, 재득의 고집과 머릿방 아씨의 교만함 뿐만 아니라 그들이 층하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극까지 물려받은 태남, 전처만의 기지와 해주댁의 현명함을 물려받은 후성. 어쩌면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겠다는 생리적 욕구보다, 기질을 대물림하겠다는 이야기의 자체적 욕구가 더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묻던 태남은 나는 누구의 소생인가의 대답을 찾은 후에 잠잠해졌지만, 아버지 재득과 대화하고 그의 임종을 지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 의 대답에 도달한다. 재득이 토사곽란으로 인하여 전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재득이 태남에게 전한 메시지의 대부분은 태남 스스로 도달한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남은 후성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이고, 자신의 삶의 향방을 가늠한다. 내 유전자보다 나의 기질이,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오래 인이 박혀 있으리라는 것은 이야기의 힘을 생각해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토록 힘이 세던 승재의 출세욕이 사랑 앞에서 맥을 못 췄던 것처럼, 명예, 부, 출세 등으로 이름을 떨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남는 것이 이야기이고,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묻던 태남처럼 가끔은 짐승처럼 오줌통 위에 이지러지는 그림자에 대고 소리 지르고, 울면서 산을 넘던 소년시절의 전처만처럼 나는 누가 될 것인지 가늠하겠다고. 그래서 훗날 내 속에 도사리는 무엇과 만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잠깐이나마 머물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되겠다고.
5.
<미망> 2권 5장 - 어머니의 아들
"... 너도 알쟈? 올가을에 안중근인가 허는 사람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 쏴 죽인 거. 그 일이 있고부텀 왜놈들 인심이 어찌나 흉흉한지 쪼금만 수틀려도 약이 머리끝까정 올라서 팔짝팔짝 뛰는데 볼만허단다." (p. 266)
종상이 내외가 오로지 양말 공장 때문에 근심하고 기뻐하고 이만하면 성공을 했다고 자족하는 동안 태남이는 늠름하고 불가해한 청년이 돼 있었다. 그는 이제 관옥 같다든가 망나니 같다든가 남이 함부로 찧고 까불 수 없는 그 자신의 표정을 획득하고 있었다. (p. 315)
"... 니가 증말 원하는 게 뭐냐?"
"그건 매일같이 제가 저한테 묻는 물음이랍니다, 누님." (p. 318)
태남이는 덮어놓고 존경하고 우러러 마지않던 선생님의 위대한 사업의 다른 한 면인 잔혹성을 엿본 것 같아 문득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p. 336)
먹고사는 일만큼 생(生)에 중대한 일은 별로 없다. 배우지 못해서, 듣지 못해서, 도저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는 이들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역사가 휘몰아치는 비극 속에서 생계라는 질긴 일보다 대의를 우선시했던 사람들을 영웅(꽃부리 영 英, 씩씩할 웅 雄)이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명백히 힘든 길이기 때문이다. 전처만이 양심의 가책으로 말미암아 집착하고, 그의 정신을 물려받은 태임 또한 천착했던 '관옥 같은 아이' 태남이는, 모두가 그에게서 관옥을 보지 못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스로 관옥 같은 아이가 된다. 말로는 층하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타고난 부의 영속을 우선하고 아녀자라는 태생적 특징을 한계로 삼은 태임과 달리, 태남은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매일 헤매면서도 신분의 한계와 눈앞에 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이상(다스릴 리 理, 생각할 상 想)을 탐구한다. 태임은 그런 어머니의 아들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기질을 발견하고, 그가 대의를 꿈꾸다 결국 평범한 삶을 택한 종상의 평범한 삶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을 예감한다. 그리하여 태임에게 어머니의 아들의 야반도주는 싱겁게 다가온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같이 자신에게 묻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임을, 이부(異父) 동생만큼 똑똑한 태임이는 어렴풋이 짐작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6.
<미망> 2권 6장 - 풍진세상
태남이가 침울한 얼굴로 월남 망국사를 읽던 그 자리에서 여란이는 낭랑하게 일본말 국어책을 읽고 있었다. (p. 401)
"우리들의 어머니요?"
갑자기 태남이의 목이 메었다.
"그래, 우리들의 어머니!"
태임이의 목소리도 젖어 왔다. (p. 453)
"난 자네가 자랑스럽다네. 할아버님께서는 핏뎅이 적에 벌써 자네의 사람됨을 알아보셨지. 그 아이는 관옥 같더라고 허셨거던. 그 어른이 나한테 조금이라도 해로운 걸 물려주실 리가 없다는 게 이제사 확실해졌어." (p.457)
종상이는 손때 묻은 비단 쌈지를 쌈지째 태남이의 검정 양복 주머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태남이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지만 밀어내진 않았다. (p.464)
그때였다. 안채에서 짝짝 장작 패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느닷없이 장작을 팰 리도 없었지만 그 울림이 하도 장중하고 비통해서 해묵은 거목이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 싶게 가슴이 섬찟했다. 사랑의 두 남자는 안색이 변했다. (중략) 태임이가 작살내려는 건 돈궤가 아니라 오랜 음산하고 요요한 소문의 시대인지도 몰랐다. 짝. 마침내 도끼날이 그 장대하고 유들대는 몸체를 찢었다. 지켜보던 두 사내는 사내답지 못하게 오싹 소름이 끼쳤다. (p. 465~466)
풍진(바람 풍 風, 티끌, 세속 진 塵) 세상, 음산하고 요요한 시절이어도, 삶은 계속된다. 사랑은 먼 타국에서도 맺어지고, 새 생명은 동토에서도 움트며, 가난한 형편을 꾸리는 평범한 사람도 정의를 꿈꾼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국어로 배우다가도 좋은 선생을 만난 덕분에 자주의식에 눈을 뜨기도 한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인간은 모두 다르고, 모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꾸려 간다.
본작의 6장은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진동열 선생과 그의 뜻을 지지하고 함께 활동하고 있는 태남, 달래 부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풍진 시국과 조국의 독립에 대하여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임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 관옥 같은 동생에 대한 천착으로 말미암아 태남이 하고 있는 일이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독립운동에 금전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종상은 태남이 송도를 떠나면서 양말 사업 지분 중 자기 몫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채무감에 기대어,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조선에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을 갚고자 태남에게 지원금을 건넨다.
대의(클 대 大, 옳을 의 義)는 거대한 의도를 가지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신하는 위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기도 하는 사적인 이유에 의존하여 행동양식을 선택하는, 그러나 진솔하게 삶을 대하는 범인(보통 범 凡, 사람 인 人)의 것이기도 한다. 세상에 완벽한 옳음(義)은 없다. 그것의 규모와 뜻이 크다면(大)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옳음 아래 모일수록, 옳음은 조금씩 더 온전해지기 마련이다. 그 그늘 아래 모인 명분이 무엇이든.
태임은 달래를 해산 구완하고 관옥 같은 조카아이를 받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신바람 나게 천과 비단을 끊고 배냇저고리, 포대기, 기저귀, 이불을 만들었다가, 그 솔기를 뜯어 금붙이를 욱여넣는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집착하고 그 꿈마저 상속받았고, 실상은 태남이가 관옥 같은 아이여야만 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태남이의 독립 ‘사업’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지지하지만, 그녀의 지원은 결국 대의의 실현으로 향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송도의 거상들이 모여 결의한 내용을 종상이 명문으로 옮겨 적은 사발통문보다, 왜놈에게 설 곳을 주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비싸더라도 우리나라 상품을 소비하는 여염집 아낙의 행동이, 대의에서 먼 곳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그 본체만은 대의에 훨씬 가깝다. 아, 그러니까. 풍진세상은 오로지 서로 다른 우리 모두가, 그 모진 바람과 뼈마디에 속속 스며드는 티끌에 함께 맞서고,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순간들이 모여야 견뎌내고 지워낼 수 있는 것이다.
7.
<미망> 3권 7장 - 적선정 나으리 댁 사람들
아직 어린 나이에 그건 아무리 곱씹어도 물리지 않는 감동이었고,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적이었다. (27쪽)
그동안 가만히 죽어지낸 게 부끄럽고 원통해서 제각기 나 여기 살아 있다고 외치고 나서는 데 그 힘에 천지가 진동하고 고목나무도 살아나 춤을 추는 것 같더라고요. 난 그때 당장 독립이 될 줄 알았어요. (45쪽)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뜻이 남달라서 만주 땅으로 간 사람들이 호강을 하고 있으리라고 여긴 것은 아니었지만 도처에 씩씩한 기상과 서슬 푸른 정신이 살아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10쪽)
그때는 적진처럼 비장한 각오를 강요하던 현해탄 너무 땅이 매혹적인 퇴폐비 같은 걸고 아주 지척에서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 (118쪽)
세상에 어떤 마음도 완전히 순수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어떤 선의는 그 크기와 무관하게 스스로 어질기 위하여 한없이 모질어지는 때가 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는 가장. 사랑을 지키기 위해 조국을 배반하는 누군가의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 반대로 어떤 악의는 그 목적이 옳음을 위할 때가 있다. 어떤 독립운동가는 가족을 외로이 두고 멀리 떠난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을 배신한다. 물론 종종 부정적인 정념에서 잉태된 악의는 순수하기도 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부자의 연을 이어가기로 한 얕은 약조도 기속력이 있는지, 승재와 규서는 순수하게 백해무익한 악에 가깝다.
우리 삶은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르기에 이어지지만, 그렇기에 이토록 전쟁과도 같다. 동시에 한 존재 안에도 여러 가지 자아가 존재하고, 그 자아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진다. 우리 존재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원하는 것이 다르고, 행복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가. 인간이 다면적이라는 사실은 안 그래도 속 시끄러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더 복잡하게 하는가. 그러면서도 이토록 다양한 우리와 우리들의 관계는 이 전쟁 같은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가. 본작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담백하게 조명한다. 태남과 달래 부부의 비극은 그들이 품은 선한 대의를 무색하게 할 만큼 가혹하다. 하늘이 허락한 승재의 부는 그의 악의에 비해 자애롭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작품은 필연적으로 다층적인 우리에게 묻는다.
8.
<미망> 3권 8장 - 아들딸의 시대
그녀가 정말 벗어나고 싶은 건 민족정신에 투철해야 된다는 그 고장 특유의 집단적 강박관념이었다. (181쪽)
여란이는 다니던 복장 학원을 흐지부지 그만두고 아이 기르고 상철이 시중드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 공부에 그닥 미련은 없었다. (209쪽)
나도 살아 숨 쉬는 인간이에요. 아무리 잘못 맺어졌어도 육례를 갖추고 맺어졌는데 헤어질 때도 최소한의 예절이라는 게 있어야잖아요. 안 그래요? 왜 나하곤 말 한마디 안 하고 피하는 것만 수로 알죠? 자기 인생만 인생이고 내 인생은 인생도 아닌가요? 자기가 새롭게 시작했으면 나에게도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녜요? (215쪽)
이끼 낀 적요 (219쪽)
여란이는 자신을 스쳐 간 세상과 인간에 대한 무상함, 아니 무엇보다도 삶에 거는 자신의 꿈의 속절없음에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뿐이었다. 울기엔 그녀의 평안이 너무도 단단했다. (231쪽)
달래의 오랜 실성과 배냇병신으로 태어난 딸 등 나을 가망 없는 질병의 재난에다 생활고까지 겹쳐 태남이는 먹고사는 데 여념이 없는 비천한 생활인으로 전락해 갔다. (232쪽)
아무도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 특유의 허망한 짜증이 치밀었다. (246쪽)
승재는 자신의 일관된 친일 행각은 자긍하면서도 마도섭의 일경의 앞잡이 노릇은 개만도 못하게 여겼다. (254쪽)
마도섭은 인정과 이해관계를 얼마든지 한 저울에 놓고 달 수 있는 위인이었다. 윤리적인 갈등 없이 그럴 수 있다는 게 그의 밀정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이자 인간으로서의 한계였다. (260쪽)
그건 구질스럽지만 마도섭에겐 매우 정다운 광경이었다. (265쪽)
혜정이가 화로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던 불돌을 인두로 밀어 놓고는 재를 헤치자 뜬숯은 물론 눌렸던 재까지 장밋빛으로 살아났다. 혜정이가 그 위에다 삼발이를 놓고 찌개 뚝배기를 얹는 걸 보면서 태남이는 명주 이불에 맨몸으로 파고들 때처럼 따습고 포근한 가정의 평화를 느꼈다. (288쪽)
그러나 행복했던 시절은 순식간에 가고 고통은 길었다. 다시 행복해지고 싶은 갈망을 탓할 수는 없었다. (289쪽)
내가 헌 일이라곤 때를 기다린 것밖에 없시다. 과일도 선 걸 섣불리 따려면 무뜯어야 허지만 농익으면 툭 건드리기가 무섭게 떨어지지 않던감요. (296쪽)
박경리 선생님의 글은 실제로 오감하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와 지극히 문학적이면서도 생생한 표현들, 실제 대화를 옮겨놓은 듯한 현실적인 풍경들이 달변 하면서도, 속도감이 굉장하다. 상기한 특징들이 몰입도를 유인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속도로 실감함이 배가된다. 아들딸의 시대는 템포가 유난히 빠르게 느껴진다.
특히 어버이의 시대를 주도했던 태임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화해 가는 여란의 모습이 눈에 띈다. 혼란스러운 시대, 변화하는 속도가 벅찬 현실에서, 깊은 고민 없이 무턱대고 대의에 투신하려는 것이 기특하고 대견하지만, 고민 없이 정립한 가치관은 뿌리와 중심을 흔들리게 할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완전하게 순수한 악의나 선의가 존재할 수 없듯이. 어떤 가치관도 완벽할 수는 없다. 인간은 다층적인 존재고, 변화하는 존재다. 완전한 가치관을 정립하려고 들다가 어떤 행동도 하기 전에 시대가 저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심점이 없는 인간은 쉬이 흩어진다. 양말 공장 일을 하면서 번뇌했을 태남과 달래에게 한철 상큼한 영향을 받았을 뿐이었던 여란이, 이토록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다.
9.
<미망> 3권 9장 - 인삼장의 연회, 종장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개성 사람들은 그때 미제 사탕을 안 받아먹었답니다. 사탕발림을 거부한 거죠."
그러나 그 전에 기생들이 부민을 대신해서 겪은 치욕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428쪽)
세상이 뒤집힐 때마다 이웃끼리 이간질하거나 고자질해서 목숨을 잃는 젊은이가 전쟁의 포화로 죽어 가는 목보다 많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436쪽)
태남이는 광부터 돌아보고 혼자서 헛헛하게 웃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돌멩이를 하나 줍더니 동구 밖으로 사라져 가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팔매질을 했다. 경국이는 귓뿌리를 스치는 채찍 같은 바람에 머리끝이 쭈뼛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449쪽)
태임이가 숨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건 일본 놈 인삼 도적을 추적하는 소년 종상이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450쪽)
샛골이 고향이었던 사람, 샛골이 고향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샛골과 연이 닿은 사람들이 다시 샛골로 모여드는 것은 뒤숭숭한 시국에 대한 반증이다. 동시에 전처만과 이생원의 선천적으로 내재된 기질 혹은 후천적으로 발달한 성미를 물려받거나 그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샛골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이 거대한 귀향이 본능적 뿌리 찾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존재의 시작, 성장 환경, 물려받은 유산 등은 그의 현재 모습과 깊은 관련은 없지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다. 때문에 내외부적인 환경이 혼란하여 구심점이 없을수록 나는 어디로부터 왔고 원래의 나는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나는 어떻게 살 것이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른바 생존전략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향 요인은 진심은 못되더라도 객관적으로 진실인 경우가 많다.
유행처럼 번진 일본 유학 문화 때문에 무턱대고 유학을 결정하거나, 청운의 꿈을 안았지만 그 꿈의 실체는 전혀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로 대처로 나가는 것은, 되려 인간으로 하여금 풍파에 맥없이 흔들리게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전한 계획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의지할 무게중심도 없이 속절없이 흔들리는 지대를 디딜 수는 없다. 본작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비극을 인삼과 개성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인삼과 개성을 이야기의 중심축뿐 아니라 인간의 무게중심의 은유로 활용하고 있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견인하지만, 인물들이 존재적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반면, 세대가 교체되어도 고려 인삼과 개성은 건재하게 남아 다음 세대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고려 인삼은 오랜 세월 다듬고 가꿔 키운 얼을 표상하고,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품격을 은유한다. 개성은 고려 인삼을 6년간 품어 키우는 참을성을 가진 종주도시이고, 배신 행위로 지어진 조선과 그 수도인 한양과는 달리 묵묵히 인간의 도리로서의 의리를 지키는 고도로, 사농공상을 운운하며 업을 기준으로 인간의 층하를 나눈다거나 개화의 대가로 나라를 배신하는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도시라는 점에서 고려 인삼과 마찬가지로 고고한 정신과 최소한의 품격, 그리고 그것이 보존될 수 있는 환경을 은유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고려인삼과 인삼이 고려인삼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인 개성이라고 할 것이다.
전처만은 샛골을 떠나 개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인삼을 중국에 밀매하여 큰돈을 얻는다. 이성은 샛골에서 인부들이 뼈 빠지는 노력과 정성으로 키운 인삼을 부당한 방식으로 일본인들에게 편취시켜 역시 큰돈을 번다. 종상은 인삼을 훔쳐 가는 왜놈 도적들을 쫓아가다가 큰 화를 입고 만다. 태임은 농사의 흉함에도 불구하고 삼포를 포기하지 않고 정성껏 돌본다. 태남은 정성스럽게 가꾼 인삼들이 개성 땅에 남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경우와 경국은 늦은 밤 뗏목을 타고 월북하여 다시는 만나지 못할 어버이의 얼굴을 뒤로하고 묘삼 한동이를 훔쳐 달아난다. 태임은 마지막 순간에 인삼을 훔치는 일본인 도둑들을 추적하는 종상의 소년 시절을 생각하다가 숨을 거둔다.
누군가는 인삼을 중국과 일본에 팔아 돈을 좇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빼앗긴 인삼을 되찾기 위하여 목숨을 건다. 누군가는 인삼의 작은 터럭 하나라도 상품화하기 위하여 머리를 싸매면서도, 인삼밭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들이 묘삼을 훔쳐 가자, 그 뒷모습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돌팔매질을 한다. 누군가는 목숨 걸고 묘삼 한동이를 얻고자 월북하고, 끝내 그것을 훔쳐 달아난다.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에 인삼과 연관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다. 고려이자 조선이었다가, 조선이자 일제의 점령지였다가, 남이었다가 북이었던 땅은 여전히 고려이고, 그 모든 곳이며, 그 땅을 거쳐간 모든 진실의 총합과 같다. 잊으려고 애써도 차마 잊어지지 않는(아닐 미 未, 잊을 망 忘) 꿈에도 아련한 고향의 다른 이름은 진실이다.
진실이라고 해서 어떻게 늘 옳을 수 있겠는가. 어떤 진실은 불편하고, 어떤 진실은 더럽고, 어떤 진실은 부정(아니 부 不, 바를 정 正)하다. 그러나 그런 이면(속 이 裏, 얼굴 면 面)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또 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 것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의 의미가 되게 한다. 고유의 얼을 만든다. 태임이 샛골에 머물고자 한 것은 신변의 위험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미망하던 것이 샛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그녀가 긴 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남아있는 짧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표식 한다. 태임이가 미망하던 것은 자신에게 면면하게 흐르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요요한 꿈이었고, 참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꼿꼿하게 세우는 품격이었다. 인간과 닮은 외양으로 긴 세월 푹 익으면서 인간을 먹여 살리고 기운을 북돋던 고려 인삼과 그것이 자라던 샛골이었다. 개인적, 민족적인 의미에서의 얼과 임진강에 도도하게 흐르며 얼을 잉태한 진실들이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땅, 새로운 세대로. 인삼장을 탈출해 새로운 개성을 향해 달려가는 고려 인삼의 뒷모습에 개성은 힘껏 돌팔매질을 한다. 나를 잊지 마라. 너의 등 뒤에서 언제까지나 기다릴 테니. 세상이 넓어지자 진실은 더 찾기 힘들어졌지만, 그만큼 더 널리에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