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 구병모, 2025.
1.
한줄(로) 요약(하는 연습)
모두가 어린 조각처럼 살고 있지 않나.
낮 동안 애써 조각낸 것들을 밤 동안 홀로 그러모아 붙이고.
다시 또 조용히 깨어지고 부서지면서.
2. 에세이
[파쇄 - 구병모] 깨뜨려 부서져야만이
<파과>는 구병모 작가 특유의 선혈이 낭자하는 파격적인 세계관과 완벽히 허구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언행을 구사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삶의 단면들을 다층적으로 조망했다. 그녀의 작품은 독자 입장에서 '이런 세계와 이런 사람은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만약 이런 세계와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겠다'라고 직관(直觀)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쇄(깨트릴 파 破, 부술 쇄 碎)>는 그녀의 전작 <파과>의 전사를 다룬 작품이다. 파과는 열매가 흠집이 나 파손되는 파과(파괴하다 破, 과일 果), 여자의 나이 16세를 이르는 말이자 참외, 오이, 모과 등 열매의 파괴, 처녀성의 상실을 의미하는 파과(파괴하다 破, 오이 瓜)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그리하여 열여섯의 나이에 세상에 외따로 떨어져, 영혼이 파괴된 채 벌써 세 번째 인생을 맞이하는 조각의 삶을 축약한다. 나아가 우리 삶이 싱싱한 과즙을 머금어 생명력이 가득한 동시에 죽음을 향해가는 부패의 과정에 있음을,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음을 상징한다.
본작 <파쇄>는 열여섯 나이로 홀로 서야 했던 그녀가 어떻게 '조각'이 되었는지, 그 탄생기를 짧고 박진감 넘치는 속도의 언어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 조각(손톱 조 爪, 뿔 각 角)은 짐승의 발톱이나 뿔처럼,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물건을 비유하기도 하지만, 재료를 깎거나, 재료에 새기거나, 재료를 빚어서 특정 형상을 만드는 미술 행위인 조각(彫刻), 방해하는 어떤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조각(阻却), 무엇보다도 어떤 것에서 따로 떼어 내진 작은 부분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조각과 동음이의어다.
이로써 그녀의 이름은 손톱이라는 활동명만큼이나 날카롭게 방역을 실시하는 그녀의 업을 상징한다. 동시에 살기 위해서, 혹은 사랑받기 위해서. 꽃의 시간이 이제 막 아른아른 멀어지는 어린 열매의 시절에 줄기로부터 떼어지는 삶. 필연적으로 흠집이 남고, 그 순간부터 끝없이 파열하는 그녀의 생애를 응축하기도 한다.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앗는 생을 선택한 그녀의 첫 모습은, 예상대로 치열하고 그래서 더없이 처연(悽然)하다.
선택을 하면 응당 책임이 따른다는 인간의 오랜 숙명은, 아직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 방법을 가르쳐줄 어른이 없어 배우지 못한 그녀에게도 여지없이 닥쳐온다. 그녀의 삶은 차라리 투쟁이 되고, 실존은 눈꺼풀 아래에 까끌거리는 티끌이 되며, 유일한 어른인 류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말없이 목 너머로 삼켜야 할 생선가시가 된다. 결과를 이루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행동과 생각을 가다듬고, 끝내는 제거 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그의 곁에 있기 위해서. 그녀는 잡념을 소거하고, 흔적을 삭제한다. 킬러로서의 기능이 최적화된 상태로 스스로에게 장착되는 데에, 오로지 조각(阻却)에 집중한다. 그러나 아무리 조각이라도 조각조각 깨어지고 부서지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시취만큼이나 오래 맴돌며 잊은 듯하다가 어느 적막의 순간에 탄착점을 찾을 불가해한 감정'마저 없애지는 못한다. 아니, 오히려 불가해해서 떨쳐내지 못한다.
인간은 대부분의 일들을, 완전히 해석하지 못한 채로 흘려보낸다. 그러나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흘러가지 못하고, 영원히 그 안을 맴돌며 흐를(流)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원했는가와 같은 필생의 난제들처럼. 조각에게 생각은 생활을 이루는 습성과도 같다. 그리고 인간은 생리(날 생 生, 다스릴 리 理)에서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본작은 비워지지 못해서 결국 깨뜨려 부서지는 것을 돌파구로 삼은, 한 소녀의 애처롭고도 처연(凄然)한 생존의 역사, 그 발단이다. 계절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차오를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깨어져야 했던 이야기. 살아남기 위하여 존재했던 순간들이 키워온 생각이 잘잘이 부서져 흩어져야 했던 이야기. 그래서 끝내는 흘러가야(流)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소담했던 어린 망울이, 얇은 껍질을 스스로 찢고 새살이 돋길 기다리는 모습을 생각한다. 자꾸 커지려는 자아를 막기 위해, 두꺼운 껍질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웅크린 등을 생각한다. 어두운 산속의 밤, 영문도 모르고 버려냄으로써 벼려짐을 얻고자 피 흘리는 작고 연약한 손톱을 생각한다. 죽어도 상관없고 생명을 품는 일은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강아지를 키우고 그에게 무용이라 이름 붙이는 노인이 되는, 섭리를 생각한다.
어쩌면 사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어린 조각처럼 살고 있지 않나. 인적 드문 산속에서, 낮 동안 애써 조각낸 것들을 밤 동안 홀로 그러모아 붙이고, 다시 또 조용히 깨어지고 부서지면서. 끝끝내 남는 조각(조각 편 片)들이 모여, 비로소 어떤 조각이 될지. 자기 자신조차도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