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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l 07. 2020

엔니오 모리꼬네 그의 음악을 추억하며

별세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스로 쓴 부고를 읽고

이탈리아 출신 영화음악 감독, 엔니오 모리꼬네 님의 별세 소식과 함께 그가 스스로 썼다는 부고를 보았다. 사무칠듯 그리운 정서를 때로는 수수하게 때로는 황홀하게 묘사한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의 음악이야 워낙 유명한 영화음악이니 한 소절만 들어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으나 작곡가로 그를 알게된 것은 EBS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방송 통해서 였다.


2005년도 였던것 같다. 대학 2학년이던 나는 서울 신길의 반지하 투룸 자취방에서 25살의 둘째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언니와 대학 입학 후 쉬어본적 없는 알바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나 - 누구하나 형편은 뻔했다. 허덕이는 시골 출신의 자매에게는 생음악을 듣는 공연이라는 건 그림의 떡! 그런 떡을 처음 맛보아 본 곳이 바로 EBS 스페이스 공감이었다. 당시 관람 신청을 하면 무료로 볼 수 있는 2장의 티켓을 주는데다, 40명 이내의 소규모로 코앞에서 악기 연주를 생으로 들을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였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첫 공연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 연주회였다.


그가 작곡한 곡들을 들었던 처음 그 느낌을 잊지못한다. 묘하게 슬퍼지고 행복한 곡들이었다. 사무치게 그립고 낙담하다가도 밝은 희망을 기다려보자는 메시지가 들리는 음악들... 슬픈듯 애처로운 곡들 바탕에는 늘 차오르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가 스스로 썼다는 부고를 읽으니, 왜 그가 그런 음악을 그려낼 수 있었는지가 알 수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곁에 있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고 끝에 아내에게 남기는 두줄의 문장에서 눈물이 난다. 나의 헤어짐보다 나의 헤어짐으로 아파할 당신을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이 아파 못내 떠나는 길을 머뭇거릴 그가 보인다. 짧은 부고가 큰 울림을 준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가고있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또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



*부고 원문 출처 --> Ennio Morricone ha scritto il suo necrologio: “Sono morto, a Maria il mio più doloroso addio” (https://music.fanpage.it/ennio-morricone-ha-scritto-il-suo-necrologio-sono-morto-a-maria-il-mio-piu-doloroso-addio/)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사망했다. 나의 부고를 늘 가깝게 지냈던 모든 친구들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모든이들에게 전한다. 깊은 애정을 담아 인사한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언급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생 죽마고우였고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곁을 지켜준 Peppuccio와 Roberta의 이름은 꼭 언급하고 싶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은 내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번거롭게하고 싶지 않다.

나와 나의 가족과 더불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해준 Ines, Laura, Sara, Enzo, Norbert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

내 여동생 Adriana, Maria, Franca, 그리고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했는지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의 아이들 Marco, Alessandra, Andrea, Giovanni, 나의 며느리 Monica, 그리고 내 손주들 Francesca, Valentina, Francesco, Luca에게 무엇보다 뜨겁고 절절한 작별인사를 전한다. 그들도 내가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했는지 알아주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 Maria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나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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