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일의 세계로, 다시 예열 중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일년, 살떨리는 인생 첫 육아 입문기가 지나갑니다.
저는 이제껏 과몰입했던 육아맘의 세계에서 다시 일하는 사람의 본분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 돌아간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요. 육아를 하면서 수백번을 느꼈다시피 우리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기차에 탔습니다. 출산 전 나로 돌아가는 티켓은 존재하지 않죠. 육아와 일이 가능한 삶 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다시 이야기를 써내려갈 시간이 도래한거죠.
육아냐 일이냐?
생전 이렇게 사랑해 본 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이 아이를 두고 나갈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육아 휴직이 1년정도 남아있던 시점에도 당장 복직일이 된 것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죠.
수많은 슈퍼맘들의 간증을 읽어봤습니다. 방송과 사회가 찬양하는 슈퍼맘, 눈코틀새 없는 일과에도 굳건히 살아내는 장한 여성들.. 새벽 6시에 나와 버스 안에서 화장을 하고 회사에 가면 소변 볼 시간도 없이 일을 처리하고 6시 1분에 눈치 퇴근을 하고 우는 아기를 엎고 저녁을 만드는 삶.
아이가 둘인 제 동료들도 다 하게된다며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3년만 꾹 참으면 된다지만 그런 능력과 자질이 제게 있는지 판단하기 전에, 일단 저는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무리 칼퇴를 하더라도 평일에 출퇴근을 포함하면 10-11시간을 못볼텐데 그 긴 시간을 어린이집과 이모님으로 돌려막기를 한다해도 아기에게도, 제게도 너무 박한 것 아닌가?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우리들인데 말이죠. 남편이 육아에 더 참여해주길 기대도 했지만, 일 욕심이 저보다 100배는 많은 남편과 사는 제가 주양육자가 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독박같은 슬픈 운명... 한 많은 st.
사실 저는 시험관 시절부터 임신 막달까지 괴롭히면서 꾸준함의 정석을 보여준 보스덕분에 사직서를 안주머니에 품고 살았었거든요. 이때가 기회다 싶어 때려쳐야겠다 생각도 했습니다. 이 생각이 잠시나마 쏙 들어간 건 출산 후 넉달 채 안된 시점이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선택지 중에 직장이 있다면 바로 복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힘든 게 육아더군요. 많은 알바와 직장을 다녀봤지만 이보다 힘든 일이 없었습니다. 청소기를 어깨에 짊어져야했던 사무실 청소 알바도 육아보다 쉬웠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육아의 고됨을 차치하더라도 나를 소개해야할 때마다 가장 먼저 뭐 하며 먹고 사는지가 일번 이었던 제 삶에 일이 없다는 건 상상하기 쉽지 않았어요. 나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무언가가 없어서 생기는 내 불안과 무기력을 아기가 먹고 자란다면 더 끔찍할 수가 없었죠.
매일의 고민과 번뇌를 거쳐 결국 육아를 나의 일과 떼어내는 건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와 아기 그리고 일과 육아는 이제 한 몸이라는 것을 인정한거죠. 이미 하나가 된 것을 둘로 쪼개 볼려고 했으니 어느 걸 선택해도 괴로운 면만 보였던 겁니다. 이 걸 인정을 하고나서부터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새로운 일의 기준
첫 구직활동을 하던 때가 떠올라요. 첫 직장의 기준은 '직장인가?' 였어요. 2009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직후, 족히 100군데는 서류에서 떨어졌으니, 잦대라 할 것도 없었죠. 사대보험만 해준다면 감사했습니다. 처음 한 일은 핸드드라이기를 파는 일이었는데, 큰 박람회장에 가서 내 몸보다 큰 핸드드라이기를 손수레에 실어 미팅이 쉬는 테이블을 돌았어요. 25살에 맞춤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부지런히 핸드드라이어가 몇 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는지를 설명했죠. 수습기간 중 이었는데 제 뒤에 보스가 있다고 생각하니 주저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간절함이 용기를, 용기가 자신감이 되던 시절.
다시 소박해진 저를 팔려고 다시 재정비를 시작합니다. 제 뒤에는 보스도, 클라이언트도 없어요.
그보다 더 무거운 존재, 제 아기가 있을 뿐이죠. 아기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삶 이게 이제 제 가장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 지속가능함을 위해 기존직장에 복직해 아이를 덜 보고 사는 워킹맘이나 일을 포기하고 육아에 올인하는 전업주부 등의 양자 택일을 버리고 아닌 아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합니다.
일을 찾기위해 해야할 일은 우선 육아에서 일로 다시 중심을 옮겨야해요. 새벽 첫 수유부터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 등원만 하면 늘어져있던 제 몸과 습관도 다시 일으켜야해요. 인스타그램에서 넋놓고 남의 이야기를 보다 박탈감을 느끼는 악순환도 자제해야 하고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엄마는 다시 예열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