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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Oct 08. 2020

나는 왜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나

그간 통 글을 쓰지 못했다. 1일 1 글의 엄숙했던 결심이 무색하게도 지난 며칠은 깃털처럼 지나갔다. 반성할 겸 무얼 하느라 생각을 남기지 못했나 자문해본다.


떠오르는 상념 속에서 끄적여보고 싶던 것들은 물론 있었다. 아기와의 아침 전쟁 속에서, 오후 볕 속에 혼자 즐기는 산책 중에서 생각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그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 글 뭉치가 되기도 전에 늘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이름하야, 건망증과 게으름- 둘은 다른 이름의 같은 핑계 같다. 몽글몽글한 반죽덩이가 되기도 전에 새하얗게 잊혀졌다. 기록하는 습관이 이토록 중요하다. 바로 어제의 생각도 망각하게 되는 요즈음, 마음만 바쁜 시간을 보냈나 보다. 조금 더 나를 다잡아 보기로 결심해본다.


지난달에는 둘째를 가져볼까 하고 시험관 이식을 시도했다. 두 번째로 해보는 시험관이었다. 아이를 무척 사랑하는 우리 부부는 육아의 과정에서 서로와 삶을 새롭게 발견해왔다. 현실적인 제약과 한계를 논하자면 끝도 없지만 역시나 아이는 사랑이다. 우리는 이번 생에 아이를 통한 행복과 사랑이 최우선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과연) 감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과는 실패였다. 시험관이 그러하듯 하루 종일 주사와 약을 달며 이렇게까지 꼭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이식 이후로 숱한 상상임신의 징후를 경험하고 홍양으로 막을 내린다. 이 따위 생체실험 다시는 안해를 외치다가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첫째 숲이와 또 다른 아이를 생각하면 다시금 의연해진다. 그게 사랑의 힘? 모성애? 자손번창의 DNA? 모르겠다. 그냥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쨌든 빨간 한 줄을 뒤로 한채 다른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퇴사 절차를 다 밟았다. 인사팀과의 속전속결의 서류 절차를 통해 다음 주가 되면 무소속의 백수가 된다. 운이 좋은 건지 퇴사 전에 추석과 한글날 연휴를 다 누리고 떠나게 되었다. 직원가 구매로 사던 커피 캡슐도 대량으로 구매해두고 쏠쏠했던 혜택들과도 안녕을 고했다. 이제는 오롯이 나의 통장과 얄팍한 실력, 그보다 더 나만의 성실함과 실행력을 믿고 살아야 할 때가 온 게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대답은 나만이 알 수 있다.


인생 2막,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데에 더 단단한 마음과 실력이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단히 나의 지난 경험과 능력치를 잘게 자르고 다시 재조합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내가 해왔던 일들을 돌아보니 좋은 조각들이 많았다. 쓸모가 있어서 좋은 것들, 내가 참 좋아해서 좋은 것들- 그 조각들을 매만지며 어쩌면 나는 직장이라는 구획 안에서의 형식과 목표에 지쳤을 뿐, 완전히 다른 일을 쫓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1일 1 그림의 목표는 열심히 지켜내고 있다. 나 같은 초보자에게 그림의 완성도는 실력보다는 엉덩이의 힘에서 나온다. 디테일의 힘은 성실함에서 나오기 때문- 나 같은 비전공자도 승부 걸 수 있는 디테일의 힘으로 처음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 그래도 해보고 싶다고 상상만 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좋은 점들을 찍다 보면 몇 년 후 제법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이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 세상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다음 주에는 온라인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 왔던 워크숍을 들으러 간다. 나흘간 새벽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이 시간을 벌기 위해 쩔쩔 매야했다. 주말까지 이모님에게 맡기는 건 아기에게 미안해서 가족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이것저것 애써서 가는 만큼 기대도 걱정도 많다. 모처럼 휘몰아치는 적극적인 마음에 열정도 설렘도.. 그만큼이나 우려도 되고..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무소속의 프리랜서라는 새로운 나- 이 모든 생경한 풍경 속에서 나는 또 어떤 장면을 맞이할까.

 

어쨌든 36살의 진로 찾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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