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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an 18. 2023

간밤의 꿈 이야기

안쓸인잡을 보다 인상적인 문구를 듣는다. 내가 인간임을 알리기 위해, 내 존엄을 위해 인간은 글을 쓴다는 것. 그렇다- 내가 피로 다른말로는 게으름을 핑계로 그간 떠오른 글적영감들을 무수히 날린 것은 나의 존엄을 스스로 낮추는 일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오늘은 필히 하나의 글이라도 남기겠다는 결심으로 간밤의 꿈을 소환해본다.


 이따금씩 영화같은 장면이 나온다. 그 내용은 보통 자고 일어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가끔 간밤의 잔상이 너무나 획기적이고 놀라워서 남몰래 대박의 꿈을 꾸기도 한다. 분명 나는 이 꿈들을 모아서 영화나 소설의 시나리오로 대박을 낼거다- 그러고야 말거다. 추륵 혼자만의 상상을 하며 천재 작가인 척 갓 깨어난 손가락을 더듬더듬 꿈 조각을 끄적여 본다. 물론 일어나서 읽어보면 99%는 영 씨알도 먹히지 않는 무언가 지만 말이다.


 간밤의 꾸었던 꿈은 어찌나 생생하던지, 한낮이 된 지금까지도 잔상이 남았다. 출산의 기억이 없는 나는 누런 벽지로 둘러싼 반지하의 작은 자취방에 살고 있었다. 거실이자 방이자 부엌 같은 큰 방안에 나는 아기 코끼리와 함께 있었다. 나는 그것이 (현실에서 내 아이가) 가지고 노는 대형 코끼리 인형이라 생각해서 입과 눈을 찰흙용 칼로 열심히 꾸며주었다. 열을 다해 꾸미다 보니 코끼리가 제법 더 귀여워지긴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말이지. 인형이 아니라 살아있던 코끼리 였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급 호러다. 코끼리는 내가 칼로 낸 모양과 구멍에 상처가 깊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가 철철 넘치는데도 내가 좋다며 미소를 띄어주는 코끼리 녀석- 미안한 마음에 얼른 지혈을 해주고 이불 안에 뉘였지만 마음속 깊히 녀석이 금방 죽을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취집은 반지하- 한겨울 찬기가 가득 차있었다. 가뜩이나 아픈 코끼리가 차가운 방에서 더 앓을거라는 생각에 부리나케 최근 구입한 샤오미 라디에이터를 가까이 놔주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그 때 한켠에 뉘여둔 코끼리를 덮은 이불이 보였다. 아뿔사- 꿈이 아니었구나! 이 코끼리가 정말 죽었나? 살아있나?걱정반 두려움반으로 이불 바깥으로 살짝 튀어나온 코끼리의 발을 만져보았다. 새끼 코끼리 발이 무척 앙증맞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살결- 사랑스러운 발이었다. 반가운 따뜻한 온기까지 느껴져 아직 잘 살아있구나 안도했다.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새벽녁 일어나보니 18개월된 둘째 아들의 오동통한 발이 내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다. 사내 아이의 투박하지만 아직은 한손아귀에 들어오는 작은 솔이의 발을 만지작거리다 꿈을 떠올린다. 아기코끼리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꿈속에까지 작은 코끼리를 보호는 망정 섣불리 다치게 했다는 생각에 잔뜩 걱정과 불안이 스쳐갔다. 그 감정에 짙은 데자부를 느낀달까. 때려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새끼때문에 산다는 내 이 지독한 모성애 탓인가. 그 아이가 아직 따뜻한 체온을 유지했다는 생각만으로도 안도하기도 하고 육아로 점철된 나의 일상에서 나의 고민과 존버하는 하루를 코끼리로 승화한 것인가? 코끼리는 얼굴을 덮은 큰 귀에 비해 너무나 작은 코와 발 작아빠졌지만 그래도 나는 코끼리야 라는 야무진 모습이 예뻐서 안아주고만 싶었는데, 그 예쁜 걸 나는 왜 상처는 낸건지 말이다. 있는 그대로 완벽한 코끼리였는데 말이지.


오늘의 개 꿈, 아니 코끼리 꿈 끝 :)


올 겨울 내내 애들이 끌고다니는 대형코끼리인형
이제 보니 코끼리를 닮은 내 둘째아들 솔, 선하고 조용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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