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 김밥
갑자기 남편에게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고 했는데, 나는 아주 강렬하게 엄마가 싸준 우리 집 김밥이 먹고 싶었다.
엄마가 싸주신 김밥은 사실 특별한 건 없었다. 노릇하게 잘 구운 햄, 시금치, 잘게 썬 당근과 연근, 계란 지단, 맛살이 들어간 속 재료에 찰진 밥이 싸이고, 김이 싸이고. 방앗간에서 짜온 기름이 촤르르 발리고. 한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엄마가 싸주신 김밥엔 계란지단이 한번 더 둘러졌다. 계란물은 입은 김밥, 엄마의 김밥은 예쁜 노란색 옷을 입은 김밥이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 대표로 그림그리기 대회를 나갔을 때 도시락을 지참하라는 준비사항이 있어 엄마가 김밥을 싸주셨다. 도시락을 꺼내기 전 같이 대회에 나간 6학년 언니가 “여기 김밥 싸온 애 있냐? 우리 엄마는 그냥 밥 싸줬는데. 김밥 진짜 정성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김밥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하늘 같은 6학년 언니들이 내 김밥을 보고 “우와~ 너네 엄마 최고다”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그날은 뭔가 기운이 펄펄 났다. 입상은 못한 그림 대회였지만 나는 왠지 우쭐한 기분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엄마는 엄마가 어린 시절 소풍을 가면, 외할머니가 그렇게 고대로 김밥을 싸주셨다고 했다. 그 예쁜 노란 옷을 입은 김밥을 풀면, 다른 친구들이 “와아-!” 했다고. 당신은 그게 그렇게 기쁘고 자랑스러웠다고 하셨다.
고XX김밥, 바XX김밥 등 맛있는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30분이면 뚝딱 배달이 가능했지만 그냥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결국 직접 김밥 먹으러 친정집에 가야지 마음까지 먹었을 무렵, 내가 임신을 했음을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임신이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들었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나는 아직 신혼을, 청춘을 즐기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태 한번도 엄마가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결혼을 했으니 나중에 아기가 자연스레 생기려니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갑자기 새 생명이 찾아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덧이 찾아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자 배우가 “욱-” 하는 걸 보고 구토만 몇 번 하는 줄 알았지 이렇게 힘든 시기를 지내야 하는 것임은 몰랐다.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는 냄새도 맡기 싫었고 한 입 먹으면 마치 걸레를 씹는 것 같았다. 밥 짓는 냄새를 한번 맡으면 울렁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워도 서 있어도 울렁거리고 뭘 먹어도 울렁거리고 안 먹어도 힘들었다. 차갑고 신 것을 먹으면 좀 괜찮을까 싶어 먹은 아이스크림은 다 토해냈고 임산부들이 신 것을 찾는다는 것은 이 강렬한 울렁거림을 그나마 누를 수 있는 것이 신 맛이기 때문이고 임산부가 뭘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단순히 먹고 싶은게 아니라 그나마 그거라도 입에 들어갈 것 같아 남편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거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티도 안 나는 초기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했다. 우울해서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다. 인간에게 미각은 참 중요한 감각이구나 느꼈던 때였다.
엄마가 오셨다. 늘 그렇듯 바리바리 반찬을 들고 오셨다. 나를 낳고 30년 세월을 길러 대학을 보내고 시집을 보내도 늘 밥 먹었냐며, 반찬을 해다주는 엄마. 엄마가 김밥과 오이냉국, 도토리묵을 직접 해오셨다. 그 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무언가를 먹었던 것 같다. 딸의 입덧이 잠잠해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서였을까, 너무 신기하게 속이 편안했다. 김밥이 역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때 나에겐 엄마의 김밥이 어느 유명한 셰프의 음식보다 더 맛있었다.
나는 입덧을 꽤 오랫동안 했다. 심한 시기를 지나도 여전히 밥과 고기는 못 먹었고 겨우 과일만 먹었다. 그래서 종종 친정집에 가서 엄마의 김밥을 먹었고 맛있게 먹었다. 엄마의 음식으로 태교를 했다.
아기가 태어났다. 진통에 지쳐서 내가 아기를 낳은 건 맞는지 비몽사몽 실감을 못하다 처음으로 나의 아기를 안아 봤다. 너무 작고, 작아서 소중한 그 느낌, 아기의 향과 따뜻함, 말랑함이 한번에 와락 느껴진 그 순간. 눈물이 엄청나게 퐁퐁퐁 떨어졌다. 너무 보고 싶었고 나에게 건강하게 와주어 정말 고맙다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사실 아기는 아무것도 안하고 태어나기만 했는데 나는 그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했다.
우리 엄마도 나에게 그런 사랑을 느꼈겠지. 엄마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이해가 안될 적도 많았는데 아기보다 내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나의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과 손길을 보며 엄마가 나를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사랑으로 품어주고 길렀을지 그 사랑을 35살이 되어 비로소 느꼈다.
지금도 종종 엄마의 김밥을 찾는다. 김밥을 먹을 때 마다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고슬고슬 따뜻한 밥을 지어 소금간을 하고 김을 굽고 햄을 부치고 시금치를 데치고. 연근과 당근을 썰어 볶아 넣고. 노란 계란 지단을 예쁘게 입혀 터지지 않게 말고. 김밥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임을 서른이 넘어 아기를 낳고 나서야 느꼈다.
나도 나중에 우리 아기에게 노란 옷을 입은 예쁜 김밥을 싸주어야지. 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엄마랑 아기랑 같이 김밥을 싸들고 피크닉을 가고싶다. 나에겐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맛있는 김밥을 싸주는 엄마가 계시고 보기만 해도 배부른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다.
내 사랑들과 맛있는 김밥이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