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유버튼이 상처가 아닌 응원 버튼이 되기를

by 윤선생

나는 오랫동안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평범한 나의 하루에 있었던 일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일기 쓰기는 잡생각이 많은 나에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자, 힘듦을 분출하기보다 삼키는 편인 내성적인 나에게 스트레스 해소 출구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매일 일기가 숙제였고 그 숙제를 제출하면 담임선생님께서 맞춤법을 교정해 주시거나 일기를 읽고 느낀 점 등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나는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께서 내주시는 일기 숙제를 매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일기 숙제를 제출하면 다음날 일기를 돌려받을 때까지 선생님이 나의 일기를 어떻게 보셨을까 두근두근했고 혹여나 칭찬 말씀을 적어주시면 그게 그렇게 기뻤다.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누군가가 보아주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어린 시절에도 좋았었던 것 같다. 그런 좋은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 매일은 못쓰더라도 꾸준하게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느낌을 글로 남기는 멋진 취미가 되었다. 블로그는 자칫 하면 흘러가버릴 수 있는 나의 하루하루를 그 시절 나의 시선으로 기록하여 새겨 남기는 나의 소중한 보물창고이다. 창작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평범한 사람의 사소한 일기이지만 이것도 나의 생각이 담겨서일까, 일기를 쓰면 나의 일기가 너무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으면서도 어느 누구는 나의 일상을 봐주고 위로든 조언이든 비판이든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모순된 바람이 있어서 늘 댓글창을 열어두게 된다. 개인적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힘든 수험생 시절을 블로그에 털어내며 버텨내곤 했는데 그때 같은 처지의 임용준비생과 비슷한 시절을 거쳐 교직에 계신 교직 선배분들이 진심 어린 응원 댓글을 남겨주었었다. 온라인 상이기에 어디에보다 더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녹아낸 일기를 쓸 수 있었고 얼굴 한번 못 본 사람들이지만 비슷한 처지를 경험해서인지 어느 절친한 친구의 위로보다도 더 큰 위로를 온라인상의 그들에게서 얻었다. 그렇게 나의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웹서핑을 하다가 나의 일기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글을 발견한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똑같은 문장들, 그리고 그 글에 수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라며 댓글을 달고 있다면?

처음엔 당혹스러운 감정이 들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 있지?' '내 생각이 이렇게 흔한가?' 하는 생각에 잠시 혼란스러울 것 같다. 내 글을 퍼다가 퍼뜨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을 거라 매우 고민하며 괴로울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물체가 아니고 누구나 언제든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심을 계속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나의 일기를 복사 붙여 넣기를 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나 자신이 송두리째 갖고 놀아진 느낌이 들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일기라는 게 사소한 글로 보일지 몰라도, 나의 시선으로 내가 경험한 하루를 곱씹고 나의 시간을 투자하여 써 내려간 나의 엄연한 창작물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아무런 허락 없이 훔쳐 가 마음대로 퍼뜨리고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며, 심지어 내가 받아야 할 위로와 공감을 가로채고 있다면? 나는 아마 나 자신의 일부를 도둑맞은 듯한 깊은 상실감과 가슴이 뻥 뚫린 듯한 큰 슬픔에 빠질 것 같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이렇게 쉽게 복제될 수 있구나 한탄하며 내 마음이 마치 조롱거리가 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을 슬퍼한 뒤, 아마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될 것 같다. 또 누군가 내 생각과 감정을 훔쳐갈 수 있다는 두려움과 허탈감 때문에 모든 것을 비공개로 돌리고 나의 일기로 타인과 공감하는 소통의 창구를 닫아버릴 것 같다.

내가 상상해 본 이 끔찍한 감정이 창작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을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고통의 미니 사이즈 버전이 아닐까? 저작권은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저작권이란 시, 소설, 음악, 미술작품, 영화, 영상처럼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모든 '저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갖는 법적인 권리이다. 이는 창작자의 노력과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고 타인이 그 결과물을 함부로 도용하거나 모방할 수 없도록 보호한다. 이러한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단순한 창작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 창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손실시키는 것뿐 아니라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사기를 꺾고 그들의 영혼을 잠식시키는 행위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블로그, 유튜브 SNS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쉽게 즐기고 공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양질의 콘텐츠를 쉽게 접하고, 또 누구나 쉽게 ‘창작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어 마치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나의 밈(Meme)이 유행하면 그걸 활용한 비슷한 영상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모습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소중한 창작물을 쉽게 복사-붙여 넣기 하며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한 장, 글 한 줄, 음악 한 소절이라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창작의 어려움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창작(創作)의 ‘창(創)’은 ‘비롯하다’, ‘시작하다’의 뜻과 함께 ‘(칼에 베어) 다치다’의 뜻도 포함한다. 나에겐 이것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독창적으로 어떤 것을 지어내거나 만드는 행위는 마치 칼에 베어 다치는 것처럼 쓰라린 고통을 수반한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처럼 창작과 고통은 같이 동반되는 것이다. 이렇게 창작자들의 피와 땀이 설긴 창작물을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콘텐츠가 곧 돈이자 힘이 되는 요즘 세상에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사회적 질서가 무너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창작자들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다시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수개월간 공들여 만든 영상이 출처 없이 쉽게 복제되고 공유되는 것을 보면서 허탈감과 상실감에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정보의 홍수, 대 콘텐츠의 시대에는 우리 모두의 올바른 저작물 이용 습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를 정확히 표기하고 사용 허가 범위를 확인하는 작은 습관이 유지될 때, 창작자는 동기를 잃지 않고 또 다른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으며 콘텐츠의 시대 또한 계속 지속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콘텐츠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저작권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인격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 존중은 창작을 위해 창작자들이 흘린 피와 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이다. 오늘 우리가 무심결에 한몇 번의 클릭과 공유 버튼이 창작자들에게 상처가 아닌 응원이 되는 버튼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학창 시절 선생님의 일기코멘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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